| 1135 번 글: 왜 종묘를 택했을까? |
| 글쓴이: lol |
글쓴날: 2000년 10월 04일 00시 29분 |
읽은수: 436 |
2000년 새로운 예술의 해 미술축제의 하나로 선정된 '아방궁' 종묘 점거프로젝트가 9.29~10.1까지 종묘 공원에서 열리기로 되었으나 전주 이씨 종친회와 성균관 유림들의 행사저지로 무산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주최 측의 입장과 간단한 경과보고를 보내드립니다. 그간 일부 언론에서종친회와 유림의 입장만이 일방적으로 부각됨으로써 여성예술가들의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여성계와 미술계의 의견들이 있었읍니다. 참고하시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주시길 바라며 이후 활동에 대한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아방궁' 종묘점거프로젝트 무산에 대하여
우리는 합리적인 대화나 의견을 조율하는 민주적인 절차 대신 일방적인 강요와 물리력을 동원하여 예술활동을 저지하고 작품을 훼손한 전주이씨 종친회측과 성균관 유림에게 심한 분노와 더불어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종묘시민공원은 적절한 절차와 규칙에 따라서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장소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공공장소에서 작업하는 것은 새로울 것도 없는, 이미 현대예술에서는 상식회돤 관행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종묘공원이 자신들만의 것인양 주장하며 예술은 예술전용공간으로 들어가서 하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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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어떤 기독교인 집단이 절에 들어가 절 앞마당에 불교에서 부정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을 잔뜩 늘어놓고, 고기 구어 먹으면서 소리를 질러대고, 자기네 끼리 놀다 가겠다고 한다면 절에계시는 인덕 높으신 스님들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실까요 ? 아니면 고발하고, 경찰을 불러서 쫓아내실까요 ?
반대로 교회 건너편에 절에계신 스님들이 잔뜩 몰려와서 불상을 가져다 놓고 교회 앞에 온갖 부적을 그리면서 비오면 지워지니까 걱정 말라고 하고, 교회에서 부정하게 여기는 온갖 일들을 저지르려고 한다면 인자하신 교회 목사님께서는 교회 앞 길은 공유로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고 구경만 하실까요 ?
종묘는 님들께서 규탄하시는 할아버님들 께는 성지 입니다. 성지 결코 범해서도 안되고 범하게 내버려둬서도 안되는 성지 입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님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장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다른곳에서 해도 눈살을 지푸리고 달아날 만한 일을 그곳에서 하겠다고 하시면 님들은 용납하시겠습니까 ?
님들의 창작의욕을 나타내는 것은 님들의 자유고, 표현의 자유니 만큼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님들의 의도가 좋았다면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얻을 수 있었겠죠.
자유란 남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계 내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겁니다. 님들이 다른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걸 파괴 하면서 까지 님들의 자유를 표현 해야 겠다면, 님들의 그런 자유행동을 막는것도 자유라고 부르실 수 있었을 겁니다.
그곳에서 님들의 행동을 보셨던 분들은 아마 강간당하는 느낌을 받으셨을 겁니다. 단지 별것 아닌 상징적인 일이라고 말씀 하시겠지만, 그 자체가 그분들에겐 견딜수 없는 고통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시지는 않으셨는지요 ?
만약 님들이 종묘가 아닌 대학로나 이대 앞 같은 장소에서 그일을 하셨다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으셨을 테고, 호응도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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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적인 권리에 대한 오해와 예술활동에 대한 무지는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과연 이런 태도가 그들이 말하는 전통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이번 종묘프로젝트는 그들이 주장하듯 전통을 무시하고 훼손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다. 현장에서의 욕설과 비난, 작가들의 핸드폰으로 쏟아진 차마 옮길 수 없는 말들, 작업하는 여성작가들을 몇 겹으로 에워싸며 위협하는 태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품의 탈취 및 훼손 등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전통만 존경한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님은 강간 당할 입장에 처했는데 부드럽고 점잖게 대응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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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시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프로젝트를 계획대로 진행하려고 했으나 행사기간 내내 실력행사를 할 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중단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힌다. 정당한 절차에 따라 진행된 8명의 젊은 여성예술가들의 프로젝트가 막강한 조직력과 물리력을 앞세운 집단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중단됨은 심히 유감이다. 오랜 준비기간과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 진행한 이번 프로젝트를 저지하고 작품을 훼손하며 작가들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입힌 점 등에 대해서는 적절한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며, 또한 무산된 종묘점거프로젝트는 장소를 이동하여, 취지가 훼손된 과정을 알리는 도큐멘트들과 함께 새로운 맥락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우리는 세계 여성미술사에 하나의 추문으로 남게 될 이번 사건이 부디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하나의 씨앗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그렇게 되도록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2000년 9월 30일 페미니스트그룹 입김
<경과보고>
9월 27일: 모 언론 기관에 보도된 기사를 보고 '종묘점거'라는 제목에 발끈한 전주 이씨 종친회측은 "행사 장소를 바꾸어라, 그렇지 않을 시는 어떠한 무력행사로도 이 축제를 저지하겠다"는 일방적 통고만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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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씨 종친회 측에서 이미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사 장소를 고수한 데에는 단순한 감정적인 문제였습니까 ?
아님 별 힘도 없는 사람들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신겁니까 ?
님의 부모님 --살아계시다면 죄송합니다--묘 앞에서 벌거벗고 뛰어노는 사람들을 님은 용납하시겠습니까 ?
하물며, 님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귀신을 모으는 굿을 하겠다면 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시겠습니까 ?
아니면 '그러면 내 사랑하는 사람이 미쳐버리니까 그러지 말아주세요'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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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이미 6개월전 행사기획 단계에서부터 종묘공원을 선정해 현장 구성도와 설치작품 등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낸 우리로서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 종로경찰서에 신변보호 요청을 하고 계획대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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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남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짓밟는 오만한 행동이란 말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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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우리는 아침 7시부터 모여 행사 준비를 위해 작품들을 설치했고 종친회는 9시부터 우리의 설치물들을 뜯어내며 행사를 중지하라고 압력을 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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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지만 님이라면 님의 집 앞에 붙여놓은 추잡하다고 생각하는, 하지만 상대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포스터를 그냥 붙여 두시겠습니까 ? 더더우기 목적을 가지고, 소란을 피우기 위해 붙여둔 포스터인데 ?
땅따먹기 놀이를 위해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마르고 나면 떼어 낼 수 것) 장소에 와서 물감통을 발로 차며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풍선길을 만들고 있는 장소에 와서는 색실을 끊어내고, 여성의 신체를 쿠션으로 제작한 작품들 중 일부를 들고 가서 성적인 폭언을 하며 작가들을 모욕하였다. 우리는 작품과 짐을 들고 종묘 공원 여기저기를 피해 다녔고, 이씨 종친회와 유림들은 우리가 가는 곳을 따라다니며 작품들을 뜯어내고 모아
놓은 작품들까지 들춰내며, 근엄한 종묘를 더러운 자궁으로 모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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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말했지만 그분들께는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장소입니다. 그런 장소에 부끄럽다고 여기는 것을 그리겠다고 하는데,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도록 놓아둘까요 ?
이 과정에서 종묘공원을 치마형태의 깃발로 장식한 상징물들이 찢어지고, 몇 개의 작품은 그들에게 탈취당했다. 일단 작품을 한군데 모아놓고 지키면서 대책을 논의했으니 이미 많은 작품이 훼손되고 지속되는 무력 행사와 확성기를 이용한 그들의 잇단 성명서 발표로 인해 오후 3시 우리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 입깁 (정정엽 하인선 김명진 류준화 제미란
우신희 윤희수 곽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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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이 말하는 페미니즘이 '다른 사람의 권리와 감정은 무시하고 하고 싶은대로 하는'거라면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동의를 얻으실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님들이 당한 일은 물론 부당하고, 억울한 일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장소를 아름답게 지키겠다고 하는 그분들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체 무엇이 정말 옳은 일인지
그분들도 결코 강자는 아닙니다. 만일 그분들이 강자 였다면 스스로 나서지 않고, 공권력과 언론을 이용해서 님들이 하는 일을 우리나라의 얼을 망가뜨리는 반 인륜적인, 그리고 짐승같은 행동으로 매도를 했을 겁니다.
님들이 종묘를 타겟으로 삼은 이유를 알 수 는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모두 다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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