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0 번 글: 최윤, 구직의 체험--1 |
| 글쓴이: 이은숙 |
글쓴날: 2002년 07월 28일 12시 53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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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연구소는 구인 중이었고, B는 구직 중이었다. A 연구소는 상주 연구원이 10명이 채 되지 않는
조그마한 조직이고, 나는 전에도 친구 C를 추천해서 아무 반대 없이 취직시켜준 적이 있었다.
A 연구소가 제시한 조건과 B가 구하는 조건이 잘 맞는 것처럼 보였으므로 나는 별 갈등 없이 B를
A 연구소에 추천했다. 물론 B에게는 다른 경쟁자가 있을 수 있으므로 취직을 보장할 수는 없다고
말했지만, 그건 행여 일이 잘못 되었을 경우에 B를 대비시키기 위한 예의상의 문구……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A 연구소의 소장님은 B의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 B를 탈락시켰다.
나는 두 번 다시 A 연구소에 아무도 추천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한다. 나와 아무 연고가 없는 어떤
회사라면 몰라도, A 연구소에는 아무도 추천하지 않을 거라고, 않을 거라고…….
최윤의 『겨울, 아틀란티스』를 읽는다.
"그러니까, 지금 그녀가 기다리는 것은 Z가 아니다. 그녀가 기다리는 것은, 여러 곳에 써 보낸 구직
편지에 대한 대답. 일단 일을 하려고 결심하고 난 그녀는 그다지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
다양한 얼굴의 수신자를 상상했다. 그리고 그 얼굴에 따라라 경력을 조금씩 바꾸어 이력서를
작성했다. 그것은 여러 장이 되었다. 여러 장의 구직 편지를 작성하면서 그녀는 단순한 기쁨과
정열을 조금씩 되찾았다. 구직 편지라는 장르가 왜 문학사에 들어가 있지 않은가 궁금할 정도로
그것을 쓸 동안은, 특히 처음 얼마 동안은 상당한 희열까지 느꼈다. 충분한 시간이 흘러, 한 장의
답장, 하다못해 거부의 답장조차 오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확실해지기 전까지.
"그녀는 일례로, 자연보호 관계의 잡지 편집실에 야생 조류의 생리에 대한 책의 번역을 제안했다.
그럴 때 그녀는 철새가 많기로 유명한 고향의 강가에서 무르익힌 오랜 사색의 경험을 나열해서
보내거나 했다. 제안한 책에서 그녀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페이지를 골라 시범적으로 번역해
동봉한 것은 물론이다. 그녀가 수신인의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 의역한 부분은 대표적인 나그네새에
속하는, 깝작도요에 대한 것이었다.
"'깝작도요, 너의 이름은 샌드파이퍼. 너는 오늘도 아프리카 대륙의 아수와 강가를 거닐며 먹이를
찾는다. 삐잇-, 뻬잇-, 삐, 삐, 삐, 삐…… 물이 있는 모든 곳은 너의 집, 이십 센티미터의
회흑갈색의 날개를 접고 너는 하얀 배와 황갈색 다리를 내놓고 햇빛 속을 소요한다. 해안의 암초,
호반의 제방, 잡목숲 진자리, 풀 덮인 계류에서 너는 두세 명의 친구들과 꼬리를 까딱거리면서 먼
나라로 떠나기 전 한가로운 며칠을 보낸다. 더운 대륙에서 겨울을 난 너는 머지않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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