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3 번 글: 오독의 힘 (3) |
| 글쓴이: 무넝이 |
글쓴날: 2002년 05월 13일 18시 54분 |
읽은수: 1089 |
일부러 틀리게 읽기. 사실을, 서사를 읽으면서, 사실기술이나 서사의 기저에 text와 불가분의 관계로
딱 붙어 있는 가부장제를 읽으면서, 그 안에 있는 여자들의 위치를 체스판의 말을 옮기듯이 마구
뒤바꿔놓는 작업, 내 글읽기의 가능성은 거기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여성들은 자기 삶과 인간됨을
완전히 뒤틀지 않고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고는, 어떤 이야기에서도 힘있게 표면으로 떠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표면에 드러난 뒤틀린 여자들과 이면의 흔적 없는 여자들에게 제 자리를
찾아주려면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서술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점잖고 논리적으로 타당한
상상력으로도 이들을 살려내기는 어렵다. 그 여자들의 흔적은 더듬거리면서, 분명하지 않은
거짓말을 쏟아내면서,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뒤섞으면서, 성역할을 뒤집다가, 엎다가, 짐짓
거기 순응하기도 하면서, 전설과 사실을 혼동시키면서, 알려진 정설을 알면서도 딴전부리면서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花木蘭 전설은 애니메이션 영화 “Mulan”의 모태가 되는 전설이다. 이미 유교적 사회질서가 확립되어
가던 漢代에 그런 여자, 흉노족을 향해 칼을 든 여장군이 있을 법한 것이었을까. 漢代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니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아무래도 무리였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고증을
하려고 멈춰서지 않고 花木蘭 이야기를 자기 멋대로 고쳐버린 한 중국계 미국인 이민 2세의
소설(주4)을 읽고 내 멋대로 맞장구를 쳐 버린다. 花木蘭 다시 읽기. 목란을 흉노족이 아니라
부패한 청조의 관료와 군벌에게 맞서게 하는 것. 이 여자에게 무거운 칼과 무거운 갑옷만이 아니라
새털처럼 가벼운 걸음걸이와 날렵한 몸놀림을 선사하는 것. 이 여자가 흉노족 대신 식량과 목숨을
앗아가는 권력자들을 향해 칼을 들어 가족을 구하고 마을을 구하고 이 성 저 성의 땀 흘려 농사짓는
이들 하나하나를 구하게 하는 것. 이 여자가 이끄는 군대, 그 안에서도 이 여자가 아이를 가지고
낳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여자에게 그 아이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가줄 남자를 선사하는 것.
북경의 황제에게 상을 받게 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구한 후에 미련 없이 한 마을의 주민으로, 한
사람의 농부로, 자기 아이의 어머니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주5). 나는 여장군 목란을 女農
목란과 등치시켜버리는 이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에 매료된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측천무후가 가졌던 욕망과 청나라 말기, 평범한 농민의 딸이 가졌을 법한 가족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행복하게 만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표면과 이면을 살았던 여자들이 행복하게 화해할 수 있겠는가.
--------------------------
(주4) Maxine Hong Kingston, “White Tiger,”The Woman Warrior--Memoirs of a Girlhood
Among Ghosts.
(주5) 목란이 귀향한다고 해서 이 소설이 가부장제에 순응하고 있다고 함부로 결론지을 일은
아니다. 북경이 삶의 현장인 것과 마찬가지로 고향 마을도 삶의 현장이며, 마을에서도 수로 관리며
농사 품앗이로 의사결정할 일이 있으면 모여 의논하는 “정치”도 있을 터이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