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8 번 글: 아라비안 나이트 혹은 이야기를 은폐하는 텍스트 - 2 |
| 글쓴이: 무넝이 |
글쓴날: 2002년 03월 08일 09시 06분 |
읽은수: 1103 |
이 집은 교주의 시종장의 집으로서, 주인은 땅과 집과 하사품 등으로 톡톡히 재산을 모은
부자였습니다. 그 이름을 하산 샤르르 알 타리크, 즉 '여로의 악귀'라고 불려졌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입보다도 손이 빨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로 맞이한 것은 하툰이라는 아름다운 처녀로서, 알
타리크는 마음으로부터 아내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첫날밤에 자기 외에는
아무도 애첩을 두지 않을 것, 하룻밤이라도 외박하지 않겠다는 등을 남편에게 맹세시켰습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던 중 어느 날 알 타리크는 알현실에 나갔다가 다른 동료들은 모두 벌써
아들 한둘씩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곧 목욕탕에 가서 자기 얼굴을 거울에 비쳐보고
검은 머리가 벌써 흰머리로 덮여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마음속으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내
아버지를 하늘로 불러 가신 신은 왜 나에게는 자식을 주시지 않을까?'
알 타리크는 화가 잔뜩 나서 아내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하는 아내의
인사에 화가 난 주인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 같은 건 어디로 꺼져버려. 너를 만난 이래로
무엇 하나 좋은 일이라고는 일어나지 않았으니." "왜 그러세요?" "너와 백년가약을 맺은 밤에 너는
너 이외에 어떤 여자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맹세시켰겠다. 그런데 나는 오늘 다른 태수들은
모두 아들 한둘씩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나는 죽고 싶은 심정까지 들었어.
아들은 고사하고 딸 하나도 없잖아. 아들을 남기지 않으면 내 위세는 그만 끊어지고 말 거야.
알겠나? 이게 내가 화를 내고 있는 원인이야. 네가 돌계집이기 때문이야. 너와 그것을 하는 것은
마치 바위 구멍을 쑤시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
그러자 아내는 외쳤습니다. "아니 어찌 그리 소문날 소리만 하세요. 아이를 가지려고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세요? 내가 나쁜 게 아니예요. 아이를 못 갖는 것은 오히려 당신 탓이에요. 글쎄
당신 연장은 들창코 당나귀만한 데다 정액은 멀겋고 구석까지 깊이 들어가지 못하니까 아이를 만들
힘도 없단 말이에요." "나는 이번 여행에서 돌아오면 다른 여자를 맞이하도록 할 테요." "마음대로
하시구려!" 이윽고 주인은 아내의 방을 나갔는데, 쌍방 모두 다 서로 독설을 퍼부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망나니 할멈 다리라와 딸 자이나브의 못된 장난」
범우사판 아라비안 나이트 7권 중에서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실제로 구멍 뚫린 커다란 바위와 정사를 나누고 있는 사나이를 상상했으며 그
상상 때문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타리크는 평소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돌과 성생활을 해 온 것 같다는 느낌을 갖는 우스꽝스러운 사내인 것이다! 타리크는 머리가
희어지도록 자기 슬하에 자식이 없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아마도 그는 둔감한
얼간이였거나 삶이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자식이 없어도 늘 즐거운 남자였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태수 정도이면 첩을 두는 것이 당연한 문화 안에서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아내 하나와 함께
살아온 것이다. 아마도 그는 남의 시선에 그닥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뒤늦게 자식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짜증이 난다. 아내에게 되는대로 퍼붓는 것이다.
아내는 과연 그 동안 이 태수를 휘어잡고 있을 만한 배짱이 있는 인물로, "정액이 멀겋다"느니
하면서 되받아 소리를 지른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정액이 뻑뻑하면 임신이 잘 되는
모양이지?
그러나 그들은 싸움을 끝내고 곧 후회한다. 자신이 남과 다르며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가 결핍되어
있다는 느낌은 간헐적으로 오지만, 그 간헐적인 느낌은 대개의 경우,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이기지 못한다. 이 이야기 역시 위의 「가리브와 그의 형 아지브의 신상 이야기」와 비슷한 경우가
되겠는데,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사기꾼 노파인 다리라이다. 서두 몇 페이지가 지나가면 이
이야기는 더 이상 이 흥미로운 부부에 대해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 주지 않는다. 다리라는 태수가
집을 비운 사이 태수 부인에게 사기를 치고 태수는 자식을 낳아줄 애첩을 얻는 대신 다리라를
잡으러 다니는데 정신을 판다. 태수에게 자식이 없다는 최초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화자는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 더 이상 이야기해 주지도 않는다. 태수는 당장 발등에 불이 되어 떨어진
사기꾼을 잡는데 전념한다. 태수는 자식이 없는 일상에 빠져 들어가는 동시에 '자식 없음'을
잊는다. 삶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잊혀진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늘 그런 식이다. 삶의 문제는 일상의 노력으로 인해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이야기와 얽혀 들어감으로서 잊혀질 뿐이다. 등장인물만이 문제를 잊는
것이 아니다. 화자가 그 문제를 짐짓 외면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우리도 문제를 잊는다.
문제는 때로 해결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노력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거나 魔神이 나타나거나 해서 해결되는 것이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계는 태수 부부에게 한
달에 몇 번씩 불임클리닉에 갈 것을 권하는 세계가 아니다. 독자는 등장인물들의 근시안 때문에
매번 웃게 되는 것이지만 화자는 독자들에게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의 우발적 사건들을
선사함으로써 우리 역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든다. 다리라는 우연한 계기로 딴 마음을 품고는
자기 주위에 보이는 사람들 모두에게 사기를 쳐서 한 달여 기간동안 몇 십 명을 우롱한다. 독자를
거기 정신이 팔려 태수를, 그의 불임 문제를, 잊어버린다. 태수 역시 자기 문제를 잊어버리고 다리라
문제 해결에 골몰한다. 사기꾼을 잡고 나서도 기억하지 못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그냥
살아간다.
사람은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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