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6 번 글: 펌글)우지사 성추행 사건 관련(오마이 뉴스) |
| 글쓴이: 제주여민회 |
글쓴날: 2002년 03월 04일 14시 09분 |
읽은수: 931 |
아래의 글은 오마이뉴스에서 퍼온글입니다.
제주도청 여성정책과장님께
성추행사건이 보도 되면 둘다 망신이라니요?
이봉렬 기자 solneum@yahoo.com
혹시 '변월수 사건'을 기억 하시는지요. 평범한 가정주부 였던 변월수 씨가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강간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강간범의 혀를 잘랐던 사건입니다.
당시 변월수 씨는 강간범에게 받은 상처 위에 이 나라 법에 의해 또 한 번 상처를 덧입게 됩니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강간범의 혀를 자른 것은 '정당방위로서 인정될 수 없는 지나친 행위'라는 판결을 받았던 겁니다.
피해자가 도리어 죄인 취급당해야 하고, 강간범의 혀가 피해여성의 인권에 우선하는 이 나라 법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에 발생한 '김부남 사건'은 혹시 기억하시나요. 9살 때 이웃집 아저씨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그 후 21년이 지난 1991년 가해자를 직접 찾아가 살해한 사건입니다.
어린 시절 당한 그 일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힘들 정도로 후유증에 시달렸고, 늦게나마 가해자를 고소하려 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법적인 도움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만일 어린 시절 주위에서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줄 수 있었다면, 성인이 되었을 때라도 법적으로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이처럼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위에 소개한 두 사건은 이 나라에서 여성이 성범죄 앞에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또한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분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 받지 않는 남성과 성범죄를 당하면 그보다 더 큰 수모가 두려워 혼자서 그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는 여성이 과연 동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위의 두 사건은 이미 10년 전에 벌어졌던 사건입니다. 두 사건 이후 성폭력 특별법이나 청소년 성 보호법 등 법적인 장치가 보강되었고, 각종 사회단체에서 성폭력에 대한 상담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어 그 당시와는 사정이 달라진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발생한 '우근민 제주도지사 성추행 사건'을 접하면서 과연 10년 전과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건에 대한 법적인 판단이 내려지기 전이라 아직 사건 자체에 대해 말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여성단체 공동기자회견 내용 중 다음 내용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2월 5일
도지사 면담 직후 피해자, 여성정책과로 가서 과장과 함께 민원실에서 대화
여성정책과장, '가슴에 묻어두라', '보도되면 둘 다 망신이다'라고 함.
성추행을 가한 당사자는 법의 심판을 받는다든지, 언론에 보도가 된다면 분명 '망신'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추행을 당한 여성이 피해를 구제 받기 위해 법에 호소하는 일까지 왜 '망신'스러운 일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 말이 피해여성에게 도움이 되고 이런 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귀하(제주도 여성정책과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더 답답하고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제주도청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여성정책과의 업무 내용에 아래와 같이 적혀 있습니다.
7. 요보호여성 발생예방 및 선도 / 8. 요보호 여성 상담전화「여성 1366」운영
성추행 사실이 밝혀지면 둘 다 망신이라고 판단하는 행정관서에 과연 누가 도움을 청하고 상담을 할 수 있을까요. 요보호여성의 발생을 예방하는 것이 결국 요보호여성이 발생되었을 때 '가슴에 묻어두'게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변월수 사건' 때처럼 피해여성이 죄인취급 당하는 그런 험한 꼴이 두려워 성폭력 사건을 가슴에 묻어 두었더니, 결국 '김부남 사건'으로 그 곪은 부위가 터져버리지 않던가요.
'김부남 사건'은 성폭력을 가슴에 묻어두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을 이미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또 다른 교훈이 필요한가요.
얼마나 더 많은 성폭력 행위가 벌어지고, 얼마나 더 많은 우리의 아내와 누이와 딸들이 야만적인 성폭력 앞에 쓰러져야 정신을 차릴 겁니까.
성추행 사건이 보도가 되고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 성추행을 저지른 가해자는 분명 망신을 사게 될 것입니다. 망신 뿐만 아니라 법적인 처벌 또한 뒤따르게 되겠지요.
하지만 성추행을 당한 여성은 범죄자에 의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 불과할 뿐, 망신을 당하거나 죄인 취급을 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한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를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다음은 성추행을 당했다는 K씨의 기자회견문 내용 중 일부입니다.
제게는 두 딸이 있습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제게는 너무도 소중한 아이들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부터 줄곧, 제가 믿는 하느님과 두 딸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사건을 공개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도 바로 딸들이었습니다. '내가 용기를 내지 않으면 내 딸들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저를 절박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성추행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모습을 보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10년 후에도 지금과 똑같은 모습이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불의한 일을 가슴에 묻어두지 않은 K씨의 용기로 인해 10년 후에는 반드시 달라져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K씨에게 망신을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제라도 힘을 보태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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