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5 번 글: 설날, 용서할 수 있는 것 & 이해할 수 있는 것 |
| 글쓴이: 혜진.. |
글쓴날: 2002년 02월 12일 16시 15분 |
읽은수: 805 |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 나에겐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우연히 알게된 여권 신장 운동.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차별받는 여자들,
그리고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하는 남자들,
그들에 대해 무관심했던 나,
그들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
크게 변하지도 발전하지도 않는 현실.
그것들에 너무도 화가 났다.
그러나 내가 할수 있는 일이란 없음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난 뭘 할수 있을까? 내가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나의 생각은 세상 모르던 시절의 한 낱 꿈일 뿐이었을까?
맞벌이를 하면서도 여자 혼자만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현실,
오늘과 같은 명절날엔 화투치고 바둑두고 텔레비젼이나 보는 남자들을 위해
밥하고 음식하며 가부장적인 제사와 집안 일에 의해 희생당하는 여자들.
그리고 그 안에서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의 엄마와 아빠.
현실속에서 기쁨을 찾으며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그 때 나는 매우 경멸했다.
용기가 없어서 그렇다고, 현실과 타협하는 거라고,
저런식으로 해서는 절대 세상에 발전이란 없을거라고.
그러나 나는(인정하긴 싫지만) 내 삶이 더 소중하게 생각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부엌에서 일하는 여자들만 알수 있는 행복이 있지 않을까?
살림이라는 건 내 삶속에서 무언가 또다른 것을 느끼게 해주지는 않을까?
왜 그걸 도맡아 하는 것이 꼭 나쁠까?
(이런 멍청하고 스스로도 납득 못하는 소리만 지껄이고 있었다.)
아마 내가 협조하고 노력해서 만든 "평온"이라는 것을 깨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힘겹게 찾아간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사촌남동생이 술을 따르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마치 나는 그 할아버지 할머니의 자손이 아니기라도 한 양.
우리나라 관습이란 그런 거라고,
예전부터 그래왔다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고,
그렇게 난 그들의 소리없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와 타협했다.
그들을 "이해"하자고..
이런말이나 하며 자기합리화 시키는 내가 정말 바보같다.
"넌 끝까지 이렇게 살다 죽고 싶니?"
라는 질문을 던지기라도 하고 싶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
과연 할 수 있을까??
내가 밥먹지 않고 잠자지 않고 지치지 않고
능력과 끈기와 용기와 정열이 있다면 할수 있을텐데..
나에게 가족이 없고 애정어린 친구가 없고 발목을 잡을 무언가가 없다면,
그렇다면 할 수 있을텐데..
쳇.. 바보같다..
황금같은 휴일에 찌뿌등한 기분으로 이런 글이나 끄적이는 나,
이런 글을 읽으며 공감하거나 짜증낼 사람들.
이런 나를 나는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쩔수 없이 이해는 해야할 것 같다..
(뭔소린지..)
모두 새해 福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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