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0 번 글: 『여인전사』「이름 없는 여자」- 9 |
| 글쓴이: 무넝이 |
글쓴날: 2002년 02월 12일 23시 23분 |
읽은수: 2284 |
출산: 그네는 뱃속에서 커가며 이물(異物)스런 종양처럼 하루하루 자신을 병들게 하던 자기 아이를
드디어 밖으로 내보냈다. 그네는 뜨겁고 축축하게 젖어 움직이는, 하나의 사람이기에는 분명 너무
작은, 아기를 만져보려고 손을 뻗었다. 손가락, 발가락, 손톱, 코--아기도 결국 한 사람이었다.
고모는 아기를 아랫배 위에 올려놓았고, 아기는 엉덩이를 쳐들고 한쪽 발을 다른 발 밑에 정확히
접어 넣은 채 거기 웅크리고 있었다. 느슨한 윗도리를 열어 안에 넣고 단추를 채웠다. 아기는 쉬고
나더니 꿈틀거리며 몸부림쳤고, 그네는 아기를 가슴 쪽으로 밀었다. 아기는 젖꼭지를 찾을 때까지
고개를 이리로 저리로 돌렸다. 젖꼭지를 찾고는 조그맣게 킁킁거렸다. 송아지처럼, 돼지 새끼처럼,
강아지처럼,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기 때문에 고모는 이를 악물었다.
고모는 마지막으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돼지우리로 갔는지도 모른다: 아기 아버지를 보호했듯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고모가 죽으면 아기는 양식(糧食)을 무덤으로 가져다주며 고모의 영혼을
돌볼 것이다. 하지만 가족도 없는 이 조그마한 아이가 어떻게 세상 어디에도, 땅에도, 가족
사당(祠堂)에도, 흔적이 없는, 고모의 무덤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도 고모에게 사당의 한 자리를
내주지 않을 텐데. 고모는 아기를 황무지로 데리고 갔다. 아기가 태어날 때, 둘은 서로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생생한 아픔을 느꼈다. 그건 가족이 둘 사이를 단단히 맺어주어야만 봉합될 수 있는
상처였다. 조상이 없는 아이는 고모의 삶을 편안하게 하기는커녕 귀신처럼 쫓아다니면서 자기
삶에도 의미를 부여해 달라고 졸라댈 터였다. 동이 트면 마을 사람들은 밭으로 가다 말고 울타리에
늘어서서 둘을 쳐다볼 것이었다.
젖을 실컷 마시고, 작은 귀신은 잠들었다. 아이가 깨어났을 때, 그네는 잠에서 깬 아이의 울음을
달래줄 모유를 내어주기 위해 젖가슴을 눌렀다. 아침이 다가오자 그네는 아이를 안아 들고는 우물로
갔다.
우물로 아이를 데려간 것을 보면 고모는 아기를 사랑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기를 버렸을
것이다. 얼굴을 진흙에 엎어놓았을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들은 아이를 데리고 간다. 아마
아기는 딸이었을 것이다. 사내아이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용서했을 지도 모르니.
"고모가 있었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네 아버지는 여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으신다.
그네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거야." 나는 성(性)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언어에는 강한
마력(魔力)이 있고 아버지들은 너무 연약해서 "고모"라는 말을 하면 뭔가 불가해(不可解)한
방법으로 아버지가 다칠 거라고 믿었다. 조상의 땅에서도 이웃이었던 이민자들 가운데에 정착한
우리 가족은 이름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부정한 말은 여기서도 일가 친척들을 성나게 할 거라고,
나는 늘 생각했다. 그러나 이 침묵에는 무엇인가가 더 있다: 가족은 나도 고모를 벌주는데
동참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동참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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