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8 번 글: 『여인전사』「이름 없는 여자」- 8 |
| 글쓴이: 무넝이 |
글쓴날: 2002년 02월 03일 19시 55분 |
읽은수: 2082 |
마을 사람들은 도리(道理)을 지키라는 경고의 표시로, 둥근 떡과 둥근 출입구, 하나의 둥글음 안에 더
작은 둥글음을 맞추는 여러 크기의 둥근 탁자, 둥근 창문, 둥근 밥그릇 같은 것에서 신비로운 힘을
빼앗았다. 가족이란 충실히 혈통을 이어 아들이 늙은이와 망자(亡者)를 봉양하고 늙은이와 망자가
가족을 돌보는 온전한 것이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고모와 숨어있는 그네의 연인에게 망가진 집을
보여주러 왔다. 고모의 시야가 너무 좁아 고모의 부정(不貞)이 이미 마을을 위태롭게 했다는 것을,
그 결과가 파도가 되어 때로는 지금의 마을 사람들처럼 변장을 한 채 예측을 뒤엎고 고통을 주며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으므로, 마을 사람들은 사건의 순환에 속도를 더했다. 아이를 낳는
날 벌을 주어서, 그 둥글음을 동전 만한 크기로 줄여, 그 원의 둘레가 의미하는 끝없는 사건의
악순환을 고모에게 보여 주어야 했다. 무자비한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라. 매번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 있어 운명이 자신들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은 고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사고(事故)의 흔적을 지우고 하늘의 별에서 오점(汚點)을 지워라.
마을 사람들이 떠나고 각자의 집을 향해 등(燈)이 흩어지자 가족은 침묵을 깨고 고모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아이고, 우리는 죽게 될 꺼야. 저승사자가 온다. 저승사자가 와.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봐. 네가 우릴 죽였어. 귀신! 죽은 귀신! 귀신! 넌 태어난 적도 없는 거야." 그네는 들판으로, 가족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만큼 집에서 먼 곳으로 달려나가,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닌 땅에 몸을
붙였다. 출산이 다가오는 걸 느끼며 자기가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몸이 꽉 죄었다. "저이들
때문에 너무 많이 다쳤어,"라고 생각했다. "이 상처 때문에 죽게 될 거야." 이마와 무릎을 땅에 댄
채 경련하다 아픔에서 놓여나면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웠다. 하늘과 별은 검은 우물이 되어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깊어지고, 그네의 몸도 그네의 혼란도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네는
집도 없고 동무도 없이, 영원한 추위와 침묵 속에 있는, 암흑 속의 밝은 한 점 별이었다. 빠르게, 더
빠르게, 크게, 더 크게 광장공포증이 엄습했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두려움에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텅 빈 공간에서 껍질을 벗기우고 보호받지 못한 고모의 몸에 통증이 칼끝을 겨누고 돌아왔다. 몸
밖으로부터 오는 차갑고 규칙적인 통증으로 몸이 떨렸다. 몸 속으로부터 오는 또 다른 통증에,
산통(産痛)에, 몸이 뜨거워졌다. 몇 시간이고 땅에 누운 그네는 하나의 몸인 동시에 하나의
공간이었다. 때때로 눈 앞에서 현실이 지워지고 평상시 편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젊은이들이
늙은이들의 등을 주무르는 가운데, 가족이 저녁 식탁에 모여 마작을 하는 것이 보였다. 벼 싹이
올라오는 날 아침, 너무 기뻐 서로 축하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환시(幻視)가 부서져 터지고 나면,
하늘의 별들은 점점 더 서로 멀어져 갔다. 검은 허공이 열렸다.
고모는 더 잘 싸우기 위해 일어섰다. 신들은 질투심아 많아 인간의 고통을 흥정거리 삼지만,
돼지새끼는 채 가지 않는다고들 했다는 것을, 구식 여인들이 돼지우리에서 출산해서 신들을
속인다고들 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다음 번 산통이 와서 움직일 수 없게 되기 전에, 한 걸음 한
걸음 허공을 내딛으며 돼지우리로 달렸다. 울타리를 넘어 흙 바닥 위에 무릎을 꿇었다. 홀로 남겨진
부족원(部族員)인 고모를 주위의 울타리가 감싸 주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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