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3 번 글: 『여인전사』「이름 없는 여자」- 7 |
| 글쓴이: 무넝이 |
글쓴날: 2002년 01월 30일 09시 51분 |
읽은수: 2307 |
그 남자는 한 식구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식구가 아닌 상대와 관계했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은
끔찍하게 혐오스러워 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친척이었고, 모두는 서로의 호칭을
시골식으로 커다랗게 소리내어 불렀으므로 누구든 서로가 친척이라는 것을 잊을 수는 없는 거였다.
만나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사는 모든 남자는 연인이 될 수 없게, 그렇게 중성화(中性化)되었다
--"오래비," "남동생," "오빠," 친척에게 붙는 백 열 다섯 가지의 호칭. 부모가 자식을 결혼시킬 때
사돈 될 집의 가계도를 살펴보는 것은 행복을 점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마도 성(姓)이 백 가지
밖에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팔백 만
명의 친척이 있다. 그러니 이 사람들 사이에서 근친상간을 피하려 하는 일은 얼마나 쓸모 없는
일인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마치 대물려 내려우는 호칭이 사람 관계의 서먹함이나 두려움을 덜어주기라도 하는 양, 나는
남자애들의 이름 뒤에 "오빠," "동생"을 붙이곤 했다. 그렇게 해서 나에게 춤을 청하거나 청하지
않을 남자애들에게 마법을 걸어, 남자애들을 덜 무섭고 더 친근한, 여자애들 만큼이나 친절하게
대해도 되는, 존재로 만들었다.
물론 나는 나 자신에게도 마법을 걸었다--데이트하지 말 것. 나는 일어나, 양팔을 흔들며, 도서관
이쪽에서 저쪽으로 소리쳤어야 했다, "야, 내 사랑을 되돌려 줘!" 나는 어떻게 남다르게 매력적인
여자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만큼의 매력을 발산(發散)할
수 있는지, 몰랐다. 내가 미국식으로 예뻐져서 반의 중국애들 중 대여섯이 나와 사랑에 빠진다면,
다른 애들--백인들, 흑인들, 일본애들--도 나와 사랑에 빠질 터였다. 위엄 있게, 명예롭게,
자매처럼 그들 모두를 대하는 것이 훨씬 더 분별 있는 일이었다.
남녀 사이의 끌림이란 너무나 강해서 막을 수 없는 것이므로 사회 전체가 그 성원들을 어릴 때부터
친척 관계로 묶어 함께 키운다고 해도 남녀유별의 질서를 유지할 수는 없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은 아들을, 비둘기처럼, 수양딸과 맺어주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그나마 자식들에게
약간의 설레임을 허락해서 아들을 위해 신부 값을 쳐주고 딸에게 지참금을 마련해 주어서 자식들이
낯선 사람들과 결혼할 수 있도록 했다. 결혼은 낯선 사람을 가까운 친척으로 만든다--한(漢),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민족.
전통적인 마을에서 망자(亡者)의 영혼은 살아있는 것들 가운데 어렴풋이 함께 있으며, 산 자와 죽은
자는 시간 상 앞서가고 뒤따르면서, 땅을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균형을 이루고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난폭하게 타오르는 한 인간의 열정은 균형과 안정 너머의 검은 심연을 열어 하늘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어킬 수도 있는 것이었다. 서로 균형을 이루며 안정된 "현실세계"를 지탱하던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려, 고모에게 가서, 한 사람 한 사람, 몸을 움직여, 고모가 "둥근 세계"에 불러온
균열을 재연(再演)해 보였다. 간통은 합당하게 대를 이어 현재와 미래를 연결짓는 끈을 싹뚝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치 그네가 자신만의 사생활을 누릴 수 있는 양 행동한 것에
대해 벌을 줬다.
만약 고모가 곡식농사가 풍작이고, 평화로우며, 사내애들이 많이 태어나 집집마다 새 간을 이어 짓는
시기에 가족을 배신했다면 어쩌면 그토록 심한 벌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자들은
배고파 게걸스러워져서는, 메마른 땅에 농사짓는 데 지치고 오쟁이진 채, 먹을 것을 구할 돈을 벌기
위해 마을을 떠나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역병(疫病) 귀신이, 마적(馬賊) 귀신이, 일본과의 전쟁이,
홍수가, 있었다. 중국에 있었다는 내 형제자매는 이름 모를 병으로 죽었다. 좋은 시절이었다면
실수로 넘어갈 수 있었을 간음이 먹을 것이 궁한 마을에서는 죄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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