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2 번 글: 『여인전사』「이름 없는 여자」- 5 |
| 글쓴이: 무넝이 |
글쓴날: 2002년 01월 22일 10시 16분 |
읽은수: 2363 |
그러나 어쩌면 야성적인 여자였던 고모는 자기 친구에게서 은은한 즐거움을 얻은 것이 아니라 곁에
두고 신이 나서 떠들썩하게 함께 지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고모가 성(性)에 대해까지
자유로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울리지가 않는다. 나는 그런 여자를, 남자를 알지 못한다. 고모가
내 조상이라고 해서 저절로 고모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모의 삶이 내게로 가지를
뻗어와야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랑에 젖어있기 위해 고모는 그 남자의 주의를 끌 빛깔이며 모양이 무얼까 궁리를 하면서, 꼭 맞는
배합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바꾸어 가면서 거울 앞에서 치장을 했다. 고모는 그 남자가 돌아보기를
바랐다.
바닷가 근처에 있는 농촌에서, 외모를 치장하는 여자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결혼한
여자들은 모두 머리를 뭉툭하게 잘라서 늘어진 부분을 귀 뒤로 넘기거나, 혹은 뒤로 당겨서 단단히
쪽을 찌었다. 바보짓을 해서는 안 되었다. 두 가지 모양 중 어느 쪽을 취해도 머리칼은 쉬이
헝클어져 날리며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여자들은 결혼식 날 마지막으로 자신의 긴
머리를 드러내 보였다. "무릎 뒤쪽을 스칠 정도였단다." 어머니는 말하곤 한다. "땋았는데도, 무릎
뒤를 스칠 정도였어."
거울 앞에 서서 고모는 자기 단발에 개성을 빗어 올렸다. 쪽을 지었다면 검은 리본이 길게 바람에
날리게 하거나 얼굴 언저리에 얌전한 검은 리본 매듭을 지을 궁리라도 했겠지만, 우리 사진첩에는
나이든 여자들만이 쪽진 머리를 하고 있다. 고모는 이마로부터 머리를 뒤로 빗어내려 귀 뒤로
넘겼다. 그네는 실 한 가닥으로 둥글게 매듭 진 고리를 만들어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안에
끼우고는 두 겹의 실로 이마를 훑었다. 그림자 놀이에서 거위가 무는 동작을 하듯이 손가락 사이를
닫으면 실의 꼬임새 사이로 잔머리가 잡혔다. 그러면 그네는 바늘로 찌르는 듯이 따끔따끔해서
눈물이 고이면서도 피부 위로 실을 잡아 당겨 잔머리를 단정하게 뽑아 냈다. 손가락을 벌려 실에서
머리카락을 훑어 내고 얼굴 언저리와 눈썹 위를 훑었다. 어머니도 나와 내 누이들과 자기 자신의
잔머리를 그렇게 다듬었다. 나는 예전에 "catch by the short hairs(주)"가 머리카락 뽑는 실로
포로를 잡아 놓는다는 뜻인 줄 알았다. 잔머리를 뽑을 때면 특히나 관자놀이 부근이 아팠지만
어머니는 우리가 일곱 살 때부터 전족(纏足)을 하지는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 했다. 전족을 하는 집
어머니나 하녀들은 밤마다 붕대를 몇 분씩 풀어 발에서 스며나온 피가 혈관으로 되흘러 들어가게
하는데 그럴 때면 자매들은 침대에 누워 함께 울곤 했다고 했다. 나는 고모가 사랑한 남자가 잘생긴
이마를 보면 그 아름다움을 알아주는 사람이었기를, 가슴과 엉덩이만 쳐다보는 남자가 아니었기를
바란다.
언젠가 고모는 운세서에서 복이 나가는 곳이라 표시한 곳에 있는 기미를 턱에서 발견했다. 그네는
뜨거운 바늘로 기미를 파내고는 과산화수소로 상처를 씻었다.
머리를 뽑거나 점을 뽑는 것 이상으로 외모에 신경을 쓰면 마을 사람들의 구설수에 올랐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일할 때 입는 옷과 좋은 옷이 있었는데 좋은 옷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있는
명절날에 입었다. 머리 빗는 여자는 일을 시작할 때 부정(不淨)을 타는 법이니, 고모는 정작 자기
최고로 예쁘게 보일 일이 별로 없었다. 여자들은 거대한 바다 달팽이 같은 모습이었다--그들이
짊어진 밧줄로 묶은 장작 다발이며 아기들과 세탁물은 달팽이 등에 붙은 소용돌이 모양의
달팽이집이었다. 중국인들은 허리가 구부러진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여신들과 전사들은
반듯이 선 자세였다. 일하는 여인이 짐을 내리고 몸을 쭉 뻗거나 허리를 둥글게 구부릴 때면 특히나
평소와 달리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평범하게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보이는 것에 고모는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들
방문해서 집안간에 돈이며 음식이 오가는 정월 초하루부터 정월 대보름까지의 보름을 함께 할
연인을 꿈꾸었다. 그네는 비밀의 빗으로 머리를 빗었다. 보나마나 고모는 새해를, 가족을, 마을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저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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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직역하면 "짧은 머리 카락으로 (누군가를) 잡는다"는 뜻으로 머리카락이 길지 않은데도
머리카락이 붙들려 잡힌다, 즉, 운이 나쁘다는 뜻이다. 머리카락이 짧은 사람이 머리카락이 쥐여서
누군가에게 잡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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