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4 번 글: 『여인전사』「이름 없는 여자」- 4 |
| 글쓴이: 무넝이 |
글쓴날: 2002년 01월 18일 13시 09분 |
읽은수: 2590 |
고향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녁이면, 때때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긴장한 목소리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무엇인가와 관련된 듯한, "버림받은 이들의 탁자" 이야기를 꺼냈다. 음식이 귀하고
식구들이 한솥밥을 먹는 전통이 있던 고향 마을에서 힘을 가진 나이든 어른들은 잘못한 사람들이
따로 먹게 했다. 일본인들처럼 잘못한 이들이 사무라이가 되고 게이샤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도록 하는 대신에 중국의 가족은 얼굴을 돌리되, 곁눈으로 죄지은 자들을 노려보면서 먹다
남은 음식을 먹게 했다. 분명 고모는 어머니와 한 집에 살면서 버림받은 이들의 탁자에서 밥을
먹었을 것이다. 각각 다른 집안의 며느리인 고모와 어머니는 같이 사는 법이 아닌데 어머니는 마치
습격을 본 듯이 이야기했다. 며느리는 시부모와 함께 살지 친정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다. 중국어로
결혼한다는 말의 동의어는 "며느리를 맞아들인다"이다. 고모의 시부모는 고모를 팔 수도 있었고,
고모를 담보 잡힐 수도 있었고, 돌로 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부모는 고모를 친정 부모에게로
돌려보냈다. 고모의 귀가는 내게는 설명되지 않은, 떳떳하지 못한 무언가를 암시하는 불가사의한
귀가였다. 어쩌면 시집에선 복수하려는 마을 사람들을 피하려고 고모를 쫓아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고모는 외동딸이었다. 네 사람의 오빠들은 아버지, 남편, 그리고 숙부들과 함께 "객지로 나가" 몇
년간 서양식으로 살았다. 가족들 간에 재산이 분배될 때, 고모의 오라비 중 셋은 땅을 물려달라 했고,
막내 오라비였던 아버지는 공부를 더 하게 해 달라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고모를 시집 보냈을
때, 집안에는 더 이상 모험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재산도, 남아있지 않았다. 고모의 남자 형제들은
이제 야만인들 사이에 살며 들키지 않고 전통에서 어영부영 비껴날 수 있게 되었으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고모만은 홀로 남아 전통을 지키라 했다. 무겁게, 땅 속 깊이, 뿌리 박힌 여자들이, 과거를
밀려드는 홍수로부터 막아내어 남자들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우리 가족이
서쪽으로부터 몰아치는 야릇한 욕망에 사로잡힌 것처럼, 고모 또한 경계선을 넘어, 삶의 경계
바깥으로, 허공으로 나갔다.
무엇인가를 지키고 보존하려면 오장(五臟) 안에서 헤엄치는 감정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감정이
벚꽃처럼 피다가 지는 것을 그저 바라보라. 그러나 아마도 느린 삶에 갇혀 있던, 나를 앞서가는
사람이었던 고모는 꿈이 자라다가 다시 희미해지는 것을 내버려만 두다가, 그 꿈이 몇 달, 몇 년을
지나도록 되풀이되자 꿈을 쫓아 간 것이리라. 금지된 극악(極惡)에 대한 공포는 그네의 소망을
가냘프게, 덫에 걸린 듯 무기력하게, 앙상한 뼈대만 남게 했다. 고모는 머리칼이 귀 뒤로 넘겨진
모습이 좋아서, 긴 상체가 어깨에서 휘었다가 엉덩이께에서 똑바로 떨어지는 물음표를 그리는
모습이 좋아서 한 남자를 바라봤을 것이다. 따뜻한 눈이나 부드러운 목소리나 느린 걸음걸이, 그저
그것 때문에, 머리칼 몇 가닥, 하나의 선, 빛, 소리, 한 발자국 때문에, 고모는 가족을 포기했다. 그
남자가 피로해지면 사라질 매력, 바람이 죽으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땋은 머리 때문에 그네는
우리를 제물로 바쳤다. 아, 조명만 잘못하면 그 남자의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은 사라질 것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