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0 번 글: 「이름 없는 여자」- 3 |
| 글쓴이: 무넝이 |
글쓴날: 2002년 01월 15일 13시 17분 |
읽은수: 2652 |
화려한 옷이든, 평범한 옷이든, 고모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알고 싶으면 나는 "왜, 아버지한테 우물에
빠져 죽은 여동생 있잖아요,"하고 말을 꺼내야 할 것이다. 그런 걸 물어볼 수는 없다. 어머니는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용한 부분을 이야기해 준 것이다. 어머니는 자기 인생을 이끌어 온
'필요'라고 하는 강둑의 인도를 받지 않고는 거기에 아무 것도 더 보태지 않으리라. 어머니는
잔디 대신에 야채를 가꾸는 사람이다. 어머니는 남의 밭에서 못생긴 토마토를 얻어오고, 신들의
몫인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사람이다.
경박한 짓을 할 때마다 우리는 기(氣)를 소모했다. 우리는 연을 높이 날렸다. 부모님이 일터에서
가져온, 녹아 내리는 아이스크림 콘에, 설날의 미국 영화에--한 해는 베티 그레이블의 『아, 예쁜
아가씨』, 또 한 해에는 존 웨인의 『그녀는 노란 리본을 맸어요』에--뛸 듯이 기뻐하곤 했다.
축제는 매번 죄책감으로 마무리되었다. 캄캄한 밤, 아버지는 피로에 지쳐서도 잔돈을 헤아리며
걸어 돌아와야 했으므로.
간음은 사치다. 병아리를 손수 부화시키고, 달걀 노른자와 닭머리를 특식으로 먹고, 닭발을 식초에
끓여 잔치음식으로 먹는, 모래만을 골라내고 모래주머니까지도 먹는 사람들이 타락한 고모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일까? 굶주림 속에서는 여자를 먹여 살리는 것, 딸을 키우는 것은 이미 낭비였다.
고모가 성(性)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한 외로운 낭만주의자였을 리는 없는 것이다. 옛 중국에서
여자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어떤 남자가 고모에게 자기 옆에 누우라고, 그래서 숨겨진
비행(非行)이 되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나는 그 남자가 사람들 사이에 끼어 고모의 가족을 습격했을
때, 가면을 쓰고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아마도 밭이나 며늘네들이 땔감을 줍던 산에서 마주쳤을 것이다. 혹은 장터에서 고모가 그 남자의
눈에 띄었는지도 모른다. 마을에선 낯선 사람을 재워주지 않았으니 그 남자는 낯선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둘 사이에는 성(性) 말고 다른 것도 오고 갔을 것이다. 이웃한 밭에서 일하거나 고모가 지어
입을 옷의 옷감을 팔았는지도 모른다. 그 남자의 요구는 고모를 놀라게 하다가, 겁에 질리게 했겠지.
고모는 항상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으니 그 남자의 말에 따랐을 것이다.
가족이 남편감이 될 젊은이를 옆 마을에서 구했을 때, 고모는 남편 될 사람의 대리물인, 집에서 가장
실(實)한 수탉 곁에 온순하게 서서는, 만나지도 않은 남자를 향해 평생 그 남자의 것이 될 것이라
약속했다. 자기 또래의 남편을 맞아 그 남자의 첫 부인이 되는 것이니, 안전하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니, 행운아였다. 고모가 남편을 본 첫날밤에 둘은 동침했다. 그리고 남편은 미국으로
떠났다. 고모는 남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거의 잊고 있었다. 남편을 그려보려고 해도 남자들이
떠나기 전에 찍은 단체 사진 속의 흑백 얼굴밖에는 볼 것이 없었다.
이 남자도 결국 남편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은 둘 다 명령을 내렸고, 그네는 따랐다.
가족에게 발설하면 두드려 팰 거야. 죽여버릴 거야. 다음 주에 다시 이리 와. 아무도 성(性)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절대로. 만약 그 남자에게서 기름을 사거나 그 남자와 같은 숲에서 땔감을 줍는
것만 피할 수 있었어도 살아가는 동안 강간이 반복되지는 않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고모가
강간을 당하는 동안에만 두려움을 느꼈기를, 그래서 두려움이 마음에 남지는 않았기를, 늘상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성 관계를 가지는 여자는 출산을 무릅써야 했고, 그건
인생을 위험에 내맡기는 것이었다. 두려움은 떠나지 않고 어디에나 스며들었다. 고모는 남자에게,
"임신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남자는 습격조를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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