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에서 수다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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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5월 20일 00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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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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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RE: 리플 감사합니다. 하지만...
비교적 차분한 답신글 고맙습니다. 비난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런 리플을 받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군요.
다만 저는 님의 의견이 적절한 리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글을 잘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제 문제제기는 님의 글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말씀 드리면 개론적인 설명을 듣고자 한 것이 아니며, 그런 정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도 않고, 또한 취지에 성(性)적 편견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몇몇 나라에서는 姓에 대한 강박이 매우 희박해서 존경하는 사람의 성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더군요. 좋습니다. 저도 그런 사회가 된다면 님의 의견처럼 부계성을 쓰건 모계성을 쓰건, 또는 쓰지 않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실은 만약 그렇다면 저 역시 姓을 쓰지 말자는 주장을 궂이 부모성함께 쓰기운동의 대안적 형태로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에 따라붙는 한국적 강박의 문제일 테니까요. 따라서 저는 이상적인 형태로서의 어떤 아이디얼타입에 관한 설명을 듣고자 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운동형태로서의 유의미성에 대해 말씀 드린 것입니다.
이런 전제 하에서 말씀드린다면 저는 님의 의견과 확연히 갈라지는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무엇보다 어떤 姓을 써도 상관 없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姓이라는 것이 권력관계를 담지하는 관습적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姓의 사용자체의 폐지라는 형태를 띄어야 한다는 점이며, 이는 자유로운 사회라는 님의 이상태에 대한과도기적 일형태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나중에 그것에 대한 강박이 사라진다면 그때는 어떤 형태의 姓을 사용해도 상관은 없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상태는 한 단계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물론 첫째와 연관되는 부분이지만 부계성의 사용=가부장제로 보는 시각이 저는 협소한 시각이라는 점입니다. 부계성의 사용은 분명 가부장제와 연관되어 강력한 남성권력의 일부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남/녀의 대립구도 이상의 권력상징으로 작용하는 姓에 대한 외면은 실질적으로 姓에 담지되어 있는 권력관계의 해체를 방해하고 결국은 그것을 고리로 이루어지는 많은 운동적 에너지를 모아내는 데에 있어 매우 취약한 부분을 보이게 된다는 점입니다. 즉, 남성권력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남아있는 권력적 상징체를 해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그 공간 - 姓이라는 권력투쟁의 공간 - 을 여전히 남겨두는 것이고 이는 언제나 회귀가능한 불완전한 형태의 운동에 불과한 것으로 남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그 공간상의 대립지점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요? 사실상 남/녀의 대립구도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입니다. 물론 님은 많은 남성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하게 들여다봅시다. 아직껏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들입니다. 저는 한겨레신문이나 다른 단체들에서 이 운동에 동참하는 몇몇 남성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 여성들의 많은 호응에 비해 남성들의 호응이 저조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요. 이런 예가 적절할 지는 모르지만 가장 진보적인 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청진당 분들께는 죄송^^) 게시판에 들어가봐도 양성쓰기 운동에 동참하는 분들은 찾기 힘듭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이 운동을 매우 자기만족적이고, 여타 진보진영과의 연대에 있어 실패한 운동이고 계급적으로 한계적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전 군가산점 문제 이후 여성단체사이트 등에 들어와보는 편인데, 여성사이트 게시판에 들어오며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답답함입니다. 게시판을 보면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참으로 관심이 없는 것 같더군요. 정치는 핵심적인 권력현상이며, 이것을 외면한 운동을 생각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물론 저 역시 문화권력이나 미시적 권력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미시적 권력에의 집착은 자칫 핵심적인 영역을 놓칠 수도 있다는 점 - 핵심이 뭐냐고 묻는 포스트주의자가 계실지도 모르지만서두 - 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어느 게시판에서도 이번 총선에 대한 평가 등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은 아쉽고 답답한 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을 부모성 함께쓰기 운동에 대한 실패와 연관짓는 것은 무리한 것일까요?
정말 마지막, 님께서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 의구심이 들어 두가지 덧붙입니다.
첫부분에 보면 모계성을 쓸 수 없는 것처럼 쓰셨는데, 성을 쓰지 않는 것은 가능하지 않지만, 모계성을 쓰는 것은 가능합니다.(入夫婚-한자가 맞는지 모르겠네요)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관습적 권력의 문제겠지요.(물론 부계성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는 있습니다.)
뒷부분에 가면 호주제 폐지에 관한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호주제 폐지에는 전적으로 동감을 하며, 이미 서명도 한 상태입니다. 다만 호주제에 대한 폐해를 말씀하시면서 독소조항이 700여개라고 하셨는데, 잘못 아신 것 같습니다. 제가 공부한 것으로 보면 민법상 호주제에 의한 독소조항이라 할 것은 혼인에 의한 부가입적 정도입니다. 물론 친족회 등을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호주제와 직접 관계를 갖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여타 관련법률이라고 해도 호적법 정도일텐데, 독소조항이 그렇게 많을 리는 없습니다. 오히려 호주제 폐지는 유명무실한 호주제를 통한 권력투쟁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것이 의미하는 남성위주의 사고방식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실질적인 문제인 것이지요. 호주제에 의한 부조리한 행태들에 대해서는 다른 사이트에서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독소조항(조항이 아닙니다)이라고 하면 안돼쟎아요. 비판과 설득은 엄정한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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