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딸 9 - 數 :: EDITORIAL
나옹
세상 많은 물건과, 사건과,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수(數)'가 존재한다.
모든 물건은 화폐의 수로 그 가치가 매겨진다. 시간은 12개의 숫자와 60개의 분절과 36개의 더 작은 마디로 쪼개져서 나타낸다. 사람들은 날짜와 요일을 통해서 하나의 사건을 기록하고, 그 날짜와 요일과 시간이 특정한 운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숫자가 들어있다. 부부사이는 '0'이고, 부모와 자식은 '1'로 그 촌수가 표시된다. 학번은 그 사람이 공부하는 전공과 그 전공을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숫자이다. 특히 사람사이의 서열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숫자만큼 효율적인 도구는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중간고사 기말고사, 대학입시, 취직시험, 각종 고시 및 시험의 결과는 등수로 드러난다. 등수 이외에 사람들을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만 같다.
나만을 표시해주는 13자리의 '수(數)' 또한 있다. 태어난 날과 性과 내 가족이 부여받은 수가 조합된 13자리. 13개의 숫자를 일일이 외워서 호명하는 건 번거롭다. 그래서 대개는 이름으로 불려진다. 인터넷의 주소가 4단위의 숫자이지만 알파벳으로 표시되는 것처럼.
내 몸 어딘가에는 13개의 숫자가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모든 변화는, 발전의 정도 역시 '수(數)'처럼 생각된다. 대개의 사람들은 발전은 진보는 태도와 사고의 정도가 강화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변화가 노랑색에서 파랑색 수준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가? 그래서 변화의 정도는 종종 숫자로 확인된다. 숫자로 직접적으로 변환하기 힘들면,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 봐서 얼마의 사람들이 몇 %의 사람들이 발전했다고 답을 했는지를 통해서 제시하면 된다. 사회운동에서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권지수, 권리의식지수, 사회보장지수를 발전의 척도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수(數)'는 세상을 풀어내는 논리적인 창이다. 세상 자체인지도 모른다.
숫자가 같으면 '동일한 것'이다. 15란 숫자는 14보다 크고 16보다 작은 무한한 숫자 중 하나로 정수다. 숫자는 확실하게 정의해주고, 가리켜준다. 정확하게 정의 내리지 못하는 애매 모호한 것은 '통계'가 해결해준다. 사람들은 숫자가 들어가면 모든지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숫자가 언제나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거나 적어도 타당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특히 숫자는 주민등록 시작 숫자가 '2'인 사람들에게 비합리적인 태도를 종종 보인다.
여성들은 20대가 가기 전에 결혼을 하는 것이 사회적 규범이다. 30대가 되면 임신을 하기에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9세인 사람이 30세가 되면 호르몬 분비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피부가 쪼그러들고, 자궁에 염증이 생긴단 말인가?
160㎝가 되지 않은 키로는 취직을 하기 힘들다. 160㎝가 넘는 사람들은 아마 업무능력을 뛰어나게 해주는 호르몬이 분비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34-24-36' 여성의 이상적인 몸치수는 우리 윗집 언니를 하루에 50분씩 3번이나 러닝머신을 타게 한다. 경쟁에서 높은 서열을 차지해도 여성은 예외적이다. 서열 밖이다. 등수와 서열은 1:1로 등치하지만은 않다. 혹 절반만큼씩 남녀에게 숫자를 부여한다고 해도, 이 절반이 동일한 '정도'는 아니다. 같은 크기의 동일한 화장실칸이 존재하는 남녀 화장실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같음'은 아니다. 남자
화장실의 경우는 소변용변기가 따로 존재할 뿐 아니라, 남녀의 화장실 사용시간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수(數)'는 나를 우려하게 만드는 배타성도 가지고 있다.
숫자는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을 무섭게 가르기 때문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0과 1은 없음과 있음을 날카롭게 쪼갠다. 근대 이후에 자연/사회, 여성/남성, 감성적/이성적 등등 이원적인 대립항을 만들었던 사회는 디지털 사회에서 결정적으로 완성된 것만도 같다. 0과 1로 사고하는 사람에게서 어떻게 '대립'과 '양분(兩分)'이 외에 조화나 중간이나 스펙트럼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이지.
신문이나 교과서 속의 사진에서 여성의 숫자는 늘 '0'에 가깝다. 특히 중요한 사건의 사진에서 여성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한 교과서와 신문을 보고 자라난 사람들이 어떻게 여성도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우습다.
이번 호에서는 '수'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성격과, 우리들이 숫자에 대한 경험의 글을 기획으로 삼았다. 수로 연상되는 단상으로부터, 수가 대변해주고 있는 논리적인 세계에 대한 나름의 생각까지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수'로 이루어진 세상을 역으로 '수'로 읽어내는 경험은 재미있기도 했고 불편하기도 했다. 그만큼 여성인 우리는 '수'에 무지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마 '수'가 그만큼 우리를 선별해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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