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갑숙씨에 대한 글을 쓸 때까지



야옹이


서갑숙씨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라는 책을 읽은 것은 꽤 오래 전 일이고, 이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은 그보다 더 오래 전 교보문고의 소위 '기성세대로서 의 책임'있는 모습에 대한 언론의 호들갑이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이야기하기를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많은 논 의가 전개되었다는 시간의 흐름 때문일 것이다. 논의의 충실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 심이 들지만. 그렇다고 입장을 내리기도 쉽지 않고. 그래서 야옹이는 서갑숙씨를 생각 하며 뭉기적거렸던 저간의 일들을 기술함으로써, '서갑숙'신드롬에 대해서 나름의 생 각을 대신하고자 결심한다.

이 책에 대해서, 아니 텍스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서씨의 책을 읽고 이러 저러한 말들이 오갔던 그러한 담론의 구도를 봐야지. 하며 책을 사고 집에 오는 길에 어이없 을 정도로 빨리 다 읽어 버렸을 때. 집에 오니 야옹이의 엄마도 나와 동일한 책을 읽 고 있었다. 다음은 엄마와 야옹이의 당시의 대화이다.

"엄마도 이거 읽어? 어떻게 나 이거 ****원이나 주고 샀는데" (경제적인 야옹이었다.)
"너도 읽었니?(당혹스러운 듯 볼이 빨개져 귀여운 엄마) 왜?"
"글써야되니까. 서평 혹은 문화평"
"(그럼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그렇구나"

(그 순간 몇 년 전까지 같이 영화를 보다가, (엄마 기준에) 야하다 싶은 장면이 있으 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제 눈도 안감고, 말똥 말똥 보네"라던 엄마의 말이 떠 올랐다. 엄마는 가끔 나와 내 이성친구가 뽀뽀를 해보았는지 등에 대해서 궁금해 하신 다.)

"엄마가 산 책이야? (설마하는 야옹이)"
"아니.. 내가 이런 책 사는 것 봤니? 이모가 샀다. 너희 이모는 원래 대중소설류의 것 을 잘 사쟎아 (자신이 나서서 본 것은 아니라는 엄마의 거리두기다.)"
"다 읽었어? 엄마" "아니." "어땠어?"
"생각보다 별로 인데. 이게 왜 센세이셔널하지?"
"너도 읽었다 했지. 이 여자 상당히 솔직하더라." "그치? 근데 왜 센세이셔널하지 못 해?"
"그냥 나 같은 여느 사람보다 경험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야 상대가 하나쟎아. 그렇다고 유별나게 특이하게 느껴지지는 않아"
"이모도 그렇게 생각한데?"
"이모는 그여자 옛남편의 현부인이 웃긴다고 그러던데"
"왜 그래?"
"지금 부인이 길길이 날뛰고 그런데." "무슨 권리로? 그 남자나 시댁식구에 대해서 잘 써줬쟎아." "그러니까. 웃기지."
"왜 쓴 걸까.." "아마 경제적 사정이 많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뭐 그냥 솔직하게 털 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너무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50대의 야옹이엄마를 보면서, 도대체 누가 이 책의 선정 성에 대해서 왜 방방 뜨는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이 책이 잠정적으로 유해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대상, 그래서 이 책에 빨간딱지를 붙여 놓아서 딱지 떼느라 안그래 도 없는 야옹이의 손톱을 힘들게 만들었던 존재, 청소년인가? 인터넷만 뒤지면 더 '野 '한 내용이 즐비한데.. 아니면 신문에서 혹은 책에서 여성들의 혹은 남성들의 성심리 상태에 대해서 일갈 아닌 일축을 하곤 했던 이나미씨와 같은 심리학자, 혹은 자신의 보수적인 성경험만으로 '생식' 이외의 모든 성경험을 자주 일축하곤 하는 구성애씨와 같은 전문가인가? '성'에 관한 모든 내용은 혹은 '여성'에 관한 모든 내용은 '섹스'로 짜맞추려고 하는, 그러면서 청소년들을 성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성을 쌓는 보수언 론들인가? 아니면 인터넷과 PC통신상에 올라와 있는 노골적인 욕설, 대개는 전남편과 자식들 편을 드는 듯 싶으나 '저 외모에∼'라는 뉘앙스나 '색을 밝히는 여자'라는 단 정으로 위한다고 하는 서씨의 전 식구들을 더욱 불쾌하게 만드는 글들의 아이디인가?

모두이겠지. 사실 우리 엄마와 같은 중년 이후의 기혼여성들도 일부 들어 갈거야. 엄 마 경험이 다는 아니니까. 그래도, 엄마는 성에 있어서 보수적인 축인걸.. 답을 알고 싶었던 야옹이는 인터넷을 뒤져서 '서갑숙'이라는 키워드를 쳤다. 대부분은 비슷한 논쟁 구도로 진행되는 신문상의 논지였다.

'갈 때까지 간 무책임한 어른의 청소년에 대한 해악성'과 '11명의 상대자, 동성애, 혼빙간음, 탤런트와의 결혼생활, 9시간 정사' VS

'억압되었던 성담론 속에서 용기 있는 여성의 기치'와 '자유롭고 왜곡되지 않은 성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길 기대' 전자야 말할 가치가 없는 보수적 인물들의 전형적인 무기 혹은 장사술이지. 선정성 여 부로 따지자면 요즘 나오는 프린트 광고 속 N세대 모델의 춤과 이미지가 야옹이에겐 더욱 선정적인걸. 그런 광고가 '세기말 성윤리' 운운하는 보수적 논지의 신문 바로 뒷 면에 실린 것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후자의 논지 역시 책을 읽어본 나로서는 완전히 납득가지는 않는 부분이다. 개 인적인 부분을 (과정이야 어떻든) 정치적 장 속으로 끌어들인데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 만, 이것을 궁극적으로 의도하고 썼는가에 대해서는 미심쩍다. 그러다가 야옹이는 모 여성월간지의 '하재봉과 서갑숙'의 인터뷰를 읽고는 이러한 의 심을 더욱 키우게 되었다. 아마 하씨를 싫어하는 야옹이의 감정이 투영되었을 것이다. 인터뷰는 굉장히 건조하게 서로의 성경험과 성교에 관한 이야기들이 기술되고 있는데 .. 가장 싫었던 것은 동성애에 관한 하재봉씨의 질문이었다. "어느 선까지 었나요?" 도대체 보수적인 시각과 뭐가 다르지? 거기에 대한 서씨의 답변도 너무나 기술적인 것 에 치우쳤다. 시각자체의 한계가 엿보인다.

하씨의 이미지가 서갑숙씨에 드리워져서, '서갑숙씨 글의 정치적 효과에 관해' 썼던 글을 다 지워버린 야옹이에게, '나도 때론~'을 읽고 감격한 헤마의 말은 다시 한 번 글을 시작할 용기를 주었다.

"굉장히 성찰적이지 않니? 우리가 세미나와 제한적인 경험을 짜맞추면서 편견을 깨뜨 리고, 변화시켰다면, 이 사람은 자신의 자연스러운 경험을 통해 바꾸어나갔다는 것이"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개인의 경험차원을 넘어서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자 한다면, 그 공유대상은 같은 또래의 기혼여성으로 맞추어졌어야 하지 않을까? 서갑숙씨는 한 주부 가 자신에게 "이혼한 여자는 사랑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한 것을 자주 언 급하는데, 이때도 같이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적극적 자세보다는 '이해 받고 싶은 자아'가 먼저 언급되었다. 그래서인지 야옹이 엄마 같은 중년 여성들은 사람은 이해는 해도 공유하지는 못하나보다.

아마 이것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겠지 판단한 야옹은, 자신의 글이 그래도 낄만한 한가지 구석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논의의 출발은 한 사람의 글이었을지라도, 쉽게 답이 나오거나, 누구나 쉬이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여러 사람들의 혹은 동물들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논의를 지속하 는 것이 옳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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