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 마    


   분홍색 헬멧이 뭐냐구? 그거 다방 아가씨들이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쓰는 거 아니냐구? 오우 노!
   몇 달 전 여성영화제에 갔었드랬어. 거기서 난 일본의 여성운동에 관한 다큐멘타리 '후미꼬를 찾아서'를 보게 되었어. 60년대 말 70년대 초 전세계에 학생운동-주로 반전운동-의 바람이 불고 있었을 때 말야, 일본도 그랬대. 그리고 그 때 일본 여성들도 많이 참여 했었대. 그런데 학생운동이 시들해지면서 그 때 참여했던 여성들은 뭔가 공허감을 느낀거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랄까…… 아무튼 가장 진보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학생운동 조직 내에서조차 남녀의 차이와 그에 따른 배제는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된 거지. 게다가 학교를 졸업하고는 선을 봐서 결혼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게 된거야. 여성으로서 받는 억압은 그저 자신의 짐으로 고스란히 남게 된거지. 그래서 그 사람들은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어. 집단적으로 차도를 점거하기 시작했다는 말이야. 한마디로 데모를 하게 된거지. 이제는 반전이 아니라 낙태권을 위해 거리를 행진했어. 그런데 그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아. 여자들 수백명 수천명이 스크럼을 짜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말야. 물론 전경도 있었고 최루탄도 있었고 있을 건 다 있었어. 그녀들 머리 위에는 헬멧이 쓰여져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 장면이 더 절박해 보였던 것 같아. 그 화면이야 흑백이라 헬멧은 하얀색으로 보였지만 나중에 분홍색의 헬멧을 쓴 여자들 어쩌고 하는 자막이 나오는 거야.

   집회에 나가면 도망다니기 바빴어. 결집 장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 역에 내리면 벌써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는 거야. 전경에게 두들겨 맞지나 않을까, 지랄탄은 또 얼마나 괴로울까, 나는 짝으로 발빠른 남자선배를 선택해야 할까 나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을 여자 후배를 선택해야 할까. 사수대! 오, 난 내가 그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합법적인 위치(뭔지 알겠지? 사수대는 보통 남자들만 하쟎니) 에 있다는 것이 처음에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몰라. 그게 끝까지 다행스러움으로만 남았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말야, 그게…… 또 그렇지가 않더라구. 내가 뭐가 그리 특별하다고 몸을 그렇게 사려야 돼? 왜 나는 내 몸만 아껴야되고 항상 다른 사람들 위해서 몸을 내던지는 사람들에게 보호만 받아야 돼? 내 몸이 그렇게 중요하면 다른 사람 몸도 중요하쟎아. 나도 한 번쯤 다른 사람들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거쟎아. 그게 인간의 도리쟎아. 그래, 머리 속으로는 수천번도 더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그녀들은 조금도 겁이 없는 모습으로 당당하게 싸우더란 말이야. 내가 생각만 하던 그게 실제 상황이었던 거야. 그녀들의 손에는 화염병도 없었고 쇠파이프도 없었어. 전경들은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때리고 잡아 끌고, 어쨌든 그녀들은 맨몸으로 그들과 싸우고… 진짜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끌려가고, 또 다시 뒷사람들이 싸우고…… 나는 그 때, 여성들의 집단적인 힘에 대해 생각했어…… 마치 집회에서 내가 남자 선배랑 도망을 다닐 때보다 여자 후배의 손을 잡고 뛸 때에 겁이 없어지듯이…… 그렇게.….. 여성의 … 집단적인… 힘이… 생겨나는 것… 아닐까? 나보다 더 약한 걸 보호해야 한다는 명령 프로그램이 인간 혹은 여성 내부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이 바다보다도 큰 힘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야?
   며칠 전 읽었던 책에 인도의 칩코 운동에 관한 얘기가 나와. 칩코 운동이 뭐냐구? 들어봐.

      히말라야의 산악 지대에서 가르왈의 여성들은 상업적 착취에 대항해서 
     자신들의 목숨까지 희생해가면서 숲을 보호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자
     신들을 보호해주는 살아있는 나무들을 품에 안았던 유명한 칩코 운동의 
     시작이었다. 1970년대 초에 우타 프라데쉬의 가르왈 지역에서 시작된 
     칩코 운동의 방법론과 철학은 이제는 북부의 히마찰 프라데쉬, 남부의 
     카르나타카, 서부의 라자스탄, 동부의 오리사, 그리고 중앙 인도의 고 
     지대에까지 퍼져갔다.(반다나 시바 <살아남기> 솔, 1999,  p125)

   인도에서는 먹을 거부터 시작해서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숲에서 얻기 때문에 숲이 생존의 원천이래. 그리고, 오래 전부터 숲과 사람은 하나의 순환 경로를 가지고 서로를 파괴하지 않으며 같은 자연으로서 살아왔던 거고, 그 중심에 인도의 여성들이 있었던 거고. 그런데 그 숲을 벌목하려고 정부니 외국 자본이니 하는 데서 나선 거야.

     우리의 나무를 끌어안자
     그들을 벌목에서 구해내자
     우리 언덕의 재산인
     나무들을 약탈로부터 구하자.

   수천의 가르왈 여성들은 숲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기 시작했지. 나무의 벌목을 막기 위해 실제로 나무를 끌어안기 시작했어. 그들은 숲 속에서 단식을 하기도 했고 나무를 보호하겠다는 맹세로서 나무에 성스러운 끈을 묶기도 했대. 수천의 여성들이 수만, 수십만의 나무를 끌어안고 지켰어. 나는 여성들의 집단적인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똑같은 종류의 억압이 수백, 수천의 사람들에게 존재한다면, 아니 사회 전체의 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존재한다면 그건 분명히 사회가 잘못된 거고 그 수백, 수천의 사람들은 그에 반대하는 집단적 의지를 가지게 될거고 집단적 의지는 거대한 힘으로 발휘되겠지. 그 때 발휘되는 그 거대한 힘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 때 발휘되는 그 거대한 힘은… 과연… 어떤 모습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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