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무기

이 난 다    

누구나 싸우고 있나?

다른 사람도 삶이, 언제 어디서 적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정글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이 기획에 대해 약간 주저했다. 왜냐면, 내 정글은 예의로 무장한 자들의 정글이어서, 거기에서는 설사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 해도, 사교적 미소와 평화애호적 제스쳐라는 깊숙한 비밀 주머니 속에 그것을 꼭꼭 감추어 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꼭 까놓고 말해야 하나? 온건함이라는 내 첫번째 방패를 들추고?

넌 뭘 사용하니?

나? 여러가지를 쓴다. 위험이란 다종다양하므로 무기도 당연히 그렇게 분화되어 있지. 예컨대, 아버지가 공격할 때, 나는 운다. 어머니가 해도 마찬가지이다. 가족과의 직접전에서 나에겐 다른 무기가 없다. 달딸 친구들이 언젠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저렇게 <대들었다> 든가 어머니를 놀래켜 <울려버렸다> 든가 할 때마다 나는 놀라움으로 입이 쩍 벌어진다. <운다> 는 것은 사실 내가 선택한게 아니다. 나도 밖에 나가면 나불나불 말도 잘하는 년이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그런거 다 소용없다. 내 마음 속 어디엔가, <아버지가 아무리 비합리적이고 무식한 소리를 한다 해도 거기에 반대할 수 있도록 내가 받은 교육은 바로 그 아버지가 돈주고 사준 것> 이라는 관념이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준걸로 그를 공격할 수는 없지. <운다> 는 건, 부모님에게 내 딸이 아직 나보다 약하다, 는 인상을 준다. 어쨌든 동정심이 들겠지. 내 입장에서 운다는 건, <말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no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지만 절대로 yes라고는 할 수 없다는 거. 여기에는 사실, 내가 나이 스물다섯이나 (쳐)먹고도 경제적으로 아버지에게 기생하고 있다는 쪽팔리는 사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에 대해 나는 방어할 도리가 없다.

또 하나, 언제나 노출되어 있는 내 약점은, 내가 현실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바와 관련되어 있다. (바램을 품는 건 사람을 강하게 하는 동시에 얼마나 약하게 하는가!) 하고 싶지만 못 할 것 같을 때, 나는 그 앞에서 아파버린다. 이것은 양날의 칼이다. 뛰어넘다가 좌절하고 싶지 않아서 몸이 알아서 아파주는 거지만 결국 주저앉게 만들어 버릴 때도 있으니까. 그래서 요새는 벅찬 과제를 앞에 두고, 그것을 해내고자 노력하는 동시에 자주 병들고 마는 내 성벽(性癖)과 싸워야 한다. 이건 사실 자기 몸 속에서 키운 에일리언 같이 낯설고 이질적인 괴물이다. 내가 강해지자고 마음먹는다고, 쉽게 무너지는 내 면역체계와 금방 부어오르는 신경들이 복구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치잇, 써놓고 보니 <여러가지 무기> 는 커녕 비슷비슷한 것들이군. 나를 괴롭게 하는 욕망에 대해 싸워서 그것을 쟁취하는 대신, 욕망을 포기해버리는 것.

그러나 정말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잊혀지지 않는 꿈이 있다. 구체성을 더하기 위해 주저리주저리 쓰겠다. 꿈 속에 나에게 아기가 있었다. 딸이었다.
그것은 팔다리가 길고 말랐고 머리가 크고 피부가 빵껍질같이 바삭바삭 까맸다. 아기로서의 귀염성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아주 추운 날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타월에 싸서 안고 일을 하러 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옆에 아기 아버지라고 줄레줄레 따라오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게 누구냐면...(이걸 말해도 고소 안 당할까?) '강남길'(!) 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반대하는 비밀 결혼을 했기 때문에 더이상 부모에게 도움받을 수도 없었고, 강남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누군가의 '삼촌'이 되는 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내가 강남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한지붕 세가족'의 삼촌이라는 것 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설정이었다.
'이제 나에게는 이제 엄마가 없기 때문에 모든 일이 제대로 되어가지 않는구나. 필요한 것이라곤 하나도 주어져 있지 않구나.'

나는 고 조그만 것의 차갑고 마르고 벗은 발을 만져주며 생각했다. 아기의 발에는 양말조차 신겨 있지 않았다. 나는 아기를 떨어뜨리거나 아기 목이 부러뜨릴까봐 겁이 났다. 또 걔가 감기에 걸려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강남길을 남겨두고 아기와 안은 채 버스에 탔다.
이게 참 무겁고 거추장스러웠지만 아기를 안고 있는 동안은 아기 말고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직장에 가는 동안 아기랑 이것저것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하면서 자세히 보니 아기 얼굴이 주름이 많이 잡힌 것이 몹시 나이 들어보였다. 나는 내 아기가 마음에 들어 미소지었다. 걔한테는 어딘가 인생을 힘차게 살아갈 것 같은 데가 있었다. 나는 우리 엄마의 싫은 부분을 많이 닮았는데 내 아기는 우리 엄마에게 받은 건 하나도 닮지 않았다. 우리 엄마가 보면 분명히 경악했을 거다. 그래서 나는 이것으로 내 조상들과의 유전은 끝이라고 생각했고 이제부터는 새롭고 이질적인 시간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유기체의 신비

나는 스스로 자신이 아주 약한 인간이라는 걸 안다. 약해서 비열하고,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 사람의 머리는 언제나 인과관계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나는 이 끔찍한 형질의 원인으로 언제나 부모를 떠올린다. 왜 나를 이렇게 낳았을까, 왜 나를 이렇게 키웠을까-프로이트도 말한 바 나는 이 두개가 별로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이처럼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이 구별되지 않는 상태에서 나는 유전자에 새겨진 대로 생겨먹었다고 마음대로 생각해버린다. 내 결핍에 애통해 한다 해도 나에게 없는 걸 내가 어떻게 스스로 줄 수 있겠는가? (또 체념.) 그런데 참 이상한 건 나에게 없는 바로 그것을 내가 아기에게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거다. 그리고 내 새로운 아기가 나에게 그의 새로운 힘을 비춰줄 것 같다는 거. 그래서 결국 내 삶을 바꿔줄 거 같다는 거. 이것은 나쁜 상상일까?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기에게 없는 걸 아기에게 주려고 했던 걸까?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안 그랬을까? 결국 우리 부모도 자기들이 못 가진 것을 나에게 주는데 성공했지. 교육과 물질이 제공하는 기회. 없는 걸 주고자 하는 것조차 유전자에 새겨진 진부한 의도라 해도, 나는 여전히 그걸 바란다. 그 욕망은, 내가 주려고 하는 것이 사실은 자식이 바라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어머니가 자기의 욕망을 잘못 투사할 때 나쁜 어머니가 되어버린다는 무서운 사실에 맞서고 싶게 한다.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나는 아기에게 어떤 것을 주고 싶은가? 내적인 강함과 낙천성, 무한한 애정의 능력과 타인에 대한 연대감. 세상에 꼭 필요하지만 많이는 없는 것들. 나에게 없어서 늘 간절하게 상상하는 것들.

無에서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마술이라고 한다면, 그 시간과 유기체의 비밀. 끝없는 향상의 의지. 이게 내 무기함 속에 있는, 가장 비장의 무기다.
당신이 가진 무기를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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