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기

헤 마    

무기(武器): (전투에 쓰이는 기구의 총칭. 병기(兵器) ¶ 화학~/~를 휴대하다. ((일정한 목적을 이루는 데 쓰이는) 효과적인 힘이나 수단. ¶ 눈물은 여자의 ~이다.
--금성 뉴에이스 국어사전 94년판에서 인용.

여성의 무기를 생각했을 때 난 왜 은장도를 떠올렸나. 심장을 찌르고 죽기에도 너무 작아서 목 부위의 급소를 찔러야만 죽을 수 있었다는 물건. 요즘에는 그것이 자살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아들을 낳기 위한 남근 상징의 물건이었다고 말들 하지만, 전설의 고향에서 보았던 은장도로 자신을 찌르는 여인의 모습만은 지울 수가 없다. 왜 은장도는 자신을 덮치는 그 시커먼 짐승의 몸이 아니고 여인 자신의 몸을 향해야만 했던가.

골목길은 아직 개발이 되기 전 한옥 주택들 사이에서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공간이었음에도 이젠 혐오와 공포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웬만하면 돌아가게 되는 곳. 꼭 지나야 한다면 있는 힘껏 뛰어가든지 그 힘도 없다면 머릿속에 온갖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생각해 내야만 하는 곳. 그 때 난 생각하곤 하지. 은장도를....

되돌아 보면 골목길만이 아니었다.
난 싸움을 원하지 않았지만 내가 가는 곳 어디에서나 싸움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사춘기 때부터 시작된 부모님과의 그 지리멸렬한 싸움.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들과의 싸움. 대학에 와서는 대통령, 정부, 자본주의, 전경, 교수, 그리고... 남성동지들. 회사원이 된 친구들은 이제 과장님, 부장님, 입사동기들과 싸운다.

언제부턴가 주먹으로 치고 받는 싸움을 못하게 되었고, 또 언제부턴가는 의견이 달라도 포용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적자생존이 어떠한 원칙보다 앞선 제 1의 원리인 이 야만의 한국사회에서 물리적인 힘을 쓸 줄 모르고 역사의 적자가 되는 길은 태어날 때부터 막혀 있었던 내가 그리고 네가 그래도 살아 남자고 발버둥쳐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개발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우리는 바로 이것에 대해 쓰고자 한다. 약한 자가 강한 자와 게임이라도 한 판 해보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무기이다. 처음엔 살아 남기 위해 개발했던 것. 지금은 나의 일부가 되어 나의 성격과 육체를 형성한 것. 나는 그것을 꼭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이 침 튀기며 주장하고 있는 핵 보유 문제처럼 위협으로만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젠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것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나만의 방식인지도 몰라.

달나라 딸세포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의 무기에 대해서 쓰기로 했다.
여니는 <밤길과 나의 무기> 에서 밤길의 공포와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딸기는 <크고 단단한 숄더백 혹은 쌕> 에서 바로 그 밤길을 걸을 때 여성에게 유용한 핸드백 속의 무기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우오기는 살아오면서 자신의 무기가 <오기> -절대 이름 탓은 아님-였다고 쓰고 있고, 동이와 별족은 여성의 <저주> 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그들의 편지를 통해 제시한다.
그러나, 모두가 남들과 대항에서 싸울만한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난다는 <유기체의 신비> 에서, 윤희는 <친절과 무관심> 에서 각각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있다.
한편, 헤마는 역사 속의 집단적 싸움에 등장했던 여성의 무기들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마지막으로 딸기와 승진이 웹에서 찾아 번역한 글 버자이나 덴타타(vagina dentata: 이빨달린 질) 는 여성의 질에 대한 남성들의 공포에 관한 이야기로 프로이드적인 남근선망의 환상을 뒤집고 있다.

내가 가진 무기들은 사람을 헤치거나 사람을 밟고 올라서려는 그들의 총과 칼이 아니었으면... 피는 피를 낳는다. 그 끔찍한 피와 피가 교환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이젠 생명을 창조해야 한다. 앞에서 한 말을 정정하겠다. 우리가 정녕 쓰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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