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여성공간에 대한 고찰

헤마       


    달나라 딸세포(이하 달딸)는 <참세상>이라는 사설 BBS에 통신방을 가지고 있다.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참세상은 진보적 사회운동단체와 시민단체, 학생운동조직, 각종 동아리 그리고 민주노총 등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통신공간으로서 하이텔이나 나우누리, 천리안과 같은 기존의 통신공간에 비해 보다 특수한 대중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또한, 이 공간은 주로 순수하게 통신상(on-line)에서 모인 모임보다는 이미 존재하던 공간(off-line)이 정보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통신공간의 필요를 느끼고 방을 개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기존의 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활동하거나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참세상에는 기존의 통신공간과 차별화 되는 두 가지 지 점이 있는데, 하나는 이용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정치적인 이슈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환경, 여성, 노동, 과학기술 등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 는 점과 또 하나는 완전한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글쓰기에 있어 그 만큼에서의 자기검열이 있을 거라는 점이다. 이 조건들은 타 통신공간 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온라인 성폭력과 비속어의 남발 등의 가능 성이 훨씬 덜하다는 점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부분에서 여성이용자들에게 더 많은 글쓰기의 자유를 줄 수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세상에는 98년 1월달에 <여자만세>라는 여 성공간-그것이 여성전용공간은 아닐지라도-이 여성이용자들의 요구에 의 해서 만들어졌다. 사이버 공간이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눈에 띄게 성 적인 차별을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여성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을 필요로 한 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통신계처럼 남성이용자가 월등히 많은 상황에서 여 성들은 작은 글쓰기 하나에도 남성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에 신경을 쓰 게 되고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공간은 여성 이용자들이 좀더 이완된 상태로 글을 쓸 수 있는 쉼터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여성적 이슈들에 대해 남성적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 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이 밖에도 여성공간은 남성 인 사이버 세계에 그 자체로서 여성들이 자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구심 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 나는 참세상 <여자만세>를 중심으로 여성공 간들의 특성과 글쓰기 방식을 살펴보고 이러한 모습이 통신공간 상에서 갖 는 의미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난 이방에 열심히 글은 쓰지는 않지만 열심히 보는 족이다. 하지만 ..요즘 ...이방이 너무 좋아진다. 왜냐면...아직 특이한 건 아닌데..특이하다라고 여기고 사는 성차별에 대한 굴레를 벗어던지고 나 스스로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고.. 바꾸어 말하면 여성 스스로의 눈으로 여성을 바라볼 수 있기때문이다. 그러기에... 여성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대화인 얘기가 남성을 포함한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부끄럽고 어색하기 가리기에 급급했던 얘기들을 같은 여성이라는 이름 아래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들이 나를 정말 편안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아기때 엄마의 품에 포근한 처럼 이곳은 나에게 여자라는 이름으로 규정주어진 모든 것들로 부터 자유롭게 만든다. 하하~ 여자만세가 만세다! (98.2.12)

    <여자만세>에서는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지극히 자연 스러운 일이며 또 그것이 적극적으로 요구되기도 한다. 그러한 정체성 드 러내기는 인용한 글과 같이 직접적으로 행해지기도 하고 문체나 여성적 관 심사의 표출 등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통신공간 에서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논쟁의 상황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상황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사람들이 이미 자신을 여성으로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글쓰기에서 중성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 이 있다. 그러나, 여성공간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인용문에 서 나타난 바와 같이(밑줄 친 부분) 정체성의 긍정으로 이어질수 있는 분 위기가 마련되어 있으며, 여성들은 이 과정에서 강한 연대감을 느끼게 된 다.
    다음은 <여자만세>에 올라왔던 글들의 목차 중 일부이다.

76 02.18 71/6 14 나의 생리통... 75 02.18 71/6 112 [퍼옴] 더러운 피 74 02.18 71/6 81 [퍼옴] 월경전증후군 [PMS] 73 02.18 71/6 17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72 02.18 71/6 28 그깟 육체적 고통... 71 02.18 71/6 54 생리통의 의미 400 05.07 400/3 12 생리전 증후군 5 399 05.07 395/4 13 생리전 증후군 4 398 05.06 395/4 21 생리전 증후군 3 397 05.06 395/4 24 생리전 증후군2 396 05.06 396/3 46 [끄적] 이 길은 너무 위험해 395 05.06 395/4 54 생리전 증후군-나의 경우.

    보는 바와 같이 '생리통' 이나 '생리전 증후군' 또한 이 공간에서는 열등한 여성성으로서가 아니라 나의 구체적 경험으로서 긍정되어진다. '생리통'은 이 공간에서 여성들끼리 연대감을 느끼게 하는 배타적 고리로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공간에서 또 다른 특징의 하나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련 글쓰기 또는 같은 제목으로 글쓰기를 많이 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글 쓰기는 논쟁의 형태나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는 형태가 아닌 주로 전에 글 을 쓴 사람들에 공감하고 자신의 사적인 경험을 나누는 형태로 드러난다. 다음의 인용 역시 <여자만세>에서 발췌 인용한 것이다.

154 03.16 154/6 16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부모의 소유물에서 이제 한 남자에게로 그 소유권을 이전하려는 부모에게서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요즘의 고민이다. 여태 팔아 치우기 위해 기르고 가르켰던 것 처럼 (아니 실제로 그랬겠지만) 그 소유권을 온전히 나에게로 양도(내 몸은 내것이 아니였다니!) 하는 길이 무엇인지 밤낮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을 부모와 어떤 자세로 전투에 임해야 하는가가 요즘에 내게 주어진 임무가 되어 버렸다. 의무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소유권을 아무런 물질적 댓가없이 보낸다는데 한남자를 구원하라고 나를 낳았단 소린지.. .. 162 03.17 160/2 56 [to도솔]결혼이라면... ... 때가 되면 시집을 가겠다고 약속을 해야 적잖이 돈드는 학교 학비라도 대주고 다니라고 허락해 주게겠다는 거였죠. 내가 아무리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해도 시집안간 딸이 행복할 리 없다, 거짓말이다 박박 우기실 우리 아버지.... 163 03.17 154/6 41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2 165 03.17 0/0 44 나를 어떻게 지킬것인가,,,,3 ? ...제목이 재밌어서.... 도용해 본다. .... 요사이의 나도 ....비슷한 말을 하고 싶어서... 166 03.17 0/0 22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4 167 03.17 154/6 42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 나 혼자만이 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이 있을때만이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170 03.17 170/2 86 [나도]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6 171 03.18 0/0 123 나는 나를 얼마나 지켜야 하는가? ...이러한 토양 속에서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사회, 가족으로 부터 또 나로 부터 지켜야 할 나란 무엇인가? 나의 신체와 인격? 내가 살아갈 땅에 자유와 역사? 도솔이 말하는 것은 부모님의 소유권에 대한 압력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인것 같다. ....

    여기서 보여지듯이 어떤 여성이 자신의 구체적 경험-부모로부터의 결혼 압력-에서 느끼는 감정과 억압 등을 서술하자, 다른 이용자들도 같은 제목 을 연달아 붙이며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그의 상태에 강하게 공감하고 그를 위로해 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 공간에서 글을 쓰는 여성들은 자신 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며, 글의 상당수가 '나'라는 구체적 주어로 시작하 고 있다.
    여기서는 여성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만큼, 이곳 에 글을 쓰는 남성들 역시 자신의 성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많 다. 그리고 이러한 드러냄은 특별히 여성운동이나 여성성에 대한 '조언'이 나 '질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많이 있다.

.... 그게 그래요....지금 통신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운동들... 특히 여성 운동은 제가 보기에는 .... 아니, 제가 느끼기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어요. 그 문언가란... 무언가란..... 정말 낮은 사람들을 위한 운동이 전무한 상태에요.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를 보고 분개한다지만... 낮은 목소리의 인물들을 여러분들의 도구로 생각해서는 안돼요. 으흐흐... 여러분이라는 개념이 실수인 것 같군요. .....

    이용자가 잠재적으로 남성일 것이라고 상정되는 여타의 통신공간에서 글 쓰기에 익숙해져왔던 남성들은 여성공간에서 글쓰기에 혼란스러움을 보이 는 것 같다.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을 옳음과 그름의 틀에 가두지 않고 자 유스럽게 이야기하는 데 어느정도 익숙해진 여성들에 비해 남성들은 이 곳 에서도 뭔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또한 그 태도가 항상 일관된 것 은 아니다. 인용문의 밑줄친 곳에서도 보이듯이 일단 자신의 주장을 펼친 다음 자신이 오류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면서 친화성을 보인다. 역시 다음 의 글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드러나고 있다.

혹시 여성운동이 우리는 약자고 피해자이다는 방패뒤에서 절대권력이 되어가고 있지 않는가라는 궁금증을 감히 가져 봅니다. 말이 지나치다면 얼마든지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관성화 되어가고 약자라는 논리로만 서 있지 않는가 반성을 해보란말을 드립니다. 여성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회가 더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여자 만세 !

    언젠가 <여자만세>에서 피임 논쟁이 벌어졌던 적이 있다. 피임약에 대한 온갖 정보가 난무하고 어느 피임약을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각축전이 벌 어졌었는데 나는 이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과정이 이번 웹진 번역글 중 수잔 헤링이 연구한 내용과 너무나도 일치하 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수잔 헤링은 라는 글에서 '.. 이런 발견의 결과로서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다른 독특한 온라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독특한 스타일은 사용자 개개인 들이 각자 가진 고유의 스타일이 아니라 분명하게 젠더화된 스타일이다. 남성적 스타일은 당사자적이고,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하며, 강경하고, 논쟁 적이며, 단언적이다. 그리고 문장이 길고, 매우 글을 자주 올린다. 또, 자신 만만하고 빈정거리기도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은 그 피임약 논쟁 을 제목들만 죽 뽑아 올린 것으로 **,++,!!,$$,&&은 여성이고, ##,@@,^^은 남성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이후에도 피임약에 관한 얘기들이 꼬리를 물 고 올라왔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정보에 관한 거라서 생략했다.

** 433 05.15 433/28 136 [고용안정] 응급피임약 논란 ## 453 05.25 433/28 127 응급피임약-**님 의견에 동의못함 @@ 459 05.26 433/28 46 콘돔사용- ##님 의견에 동의못함 ## 460 05.26 433/28 123 @@님의 반론을 읽고 충격받음 ## 461 05.26 433/28 3 [그런데 변명 한마디 하자면] ** 462 05.26 433/28 42 [고용안정] 섹스와 낙태 ** 464 05.26 433/28 18 [고용안정] 으..저두 아직 입이 다물 ++ 465 05.26 433/28 52 [시뷜레] 이것은 .... ^^ 466 05.26 433/28 24 나가 아는 범위에서 우리나라애들중 ++ 467 05.27 433/28 146 [시뷜레] 다시 이어서 !! 468 05.27 433/28 38 이 명석한 논리 @@ 469 05.28 433/28 18 반론을 읽고 충격받음-해설1 @@ 470 05.28 433/28 49 반론을 읽고 충격받음-해설2 @@ 471 05.28 433/28 43 반론을 읽고 충격받음-해설3 @@ 472 05.28 433/28 56 반론을 읽고 충격받음-해설4 @@ 473 05.28 433/28 22 온김에 조금더...여기서 논쟁에 참여한 ## 474 05.28 433/28 61 논의의 핵심을 비껴가시는 듯. ** 476 05.28 476/3 13 두분다! ## 479 05.29 476/3 119 [476:변명 겸 반박] @@ 480 05.30 476/3 13 질문에 대한 대답.. && 478 05.28 433/28 34 정말 [감상]적 $$ 482 05.31 433/28 121 혹시 콘돔을 사보셨나요? @@ 484 06.01 433/28 11 흡연과 필

    이 목록에서 보면 동일 인물인 남성 이용자가 글을 한꺼번에 많이 올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제목들만 살펴보더라도 남성 이용자의 경우 찬반을 분명히 하면서 제목에 이미 자신의 비판을 담고 있는데, 여성 이용자의 경 우는 간접적이거나 감정이 들어간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한 여성 이용자는 남성 이용자들의 논쟁 때문에 여성 이용자들이 불편해 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물론, 나는 이러한 고찰을 일반화 시키기에는 내가 검토한 자료의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모두 열거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본 글들은 나로 하여금 수잔 헤링의 연구에 어 느정도의 타당성이 있음을 믿게 하였다.
    지금까지 나는 참세상의 여성공간 중 <여자만세>라는 공간을 살펴보았 다. 하나의 공간을 모델로 하여 생각을 펼친다는 것은 어느정도의 위험성 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 작업은 적어도 우리에게 통신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창을 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여자만세>에서 여성이 용자들의 글쓰기가 갖고 있는 경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같거나 비슷한 제목으로 관련쓰기를 하지만 반 론보다는 같은 주제에 대한 동의와 공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이야기 주제는 시사적인 것 보다는 직접적인 개인의 경험이 많으며, 시사적인 문제라 할지라도 개인의 느낌과 감정과 자신관의 연관성을 중요 시 한다.
    셋째, 구어체적 표현이 많고, '나'라는 주어를 빠뜨리지 않는다. 특히, '나 의 경우에'라는 표현이나, '내 생각은'이라는 조심스러운 표현들이 많다.
    나는 이러한 여성의 글쓰기가 지금까지 통신에서 담론을 장악하기 위해 요구되었던 소위 남성적 글쓰기에 비해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 실, 그러한 방식으로 여성의 글쓰기에 접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 한다. 통신 공간 속에 여성공간이 존재하고 그들만의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 그들의 공통적인 경험이 존재하고, 글쓰기 패턴이 존재하고 타인과 소 통하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 이러한 사실 자체가 통신 상에서 개인으로 흩어졌던 여성을 집합으로서의 여성으로 묶어주고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다양함의 관계 속에 여성을 위치시킬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아직까지 통신에서의 여성은 소수이다. 수적으로 소수이면서 동시에 통신 공간의 대부분을 남성이 장악하고 있으므로 해서 파편화 되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들은 아직도 폐쇄적인 그들만의 공간과 열려진 공간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방황이 시간의 낭비가 아니 라 역사를 쌓아가는 과정일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사이 버 공간 속에서 여성이 다른 여성을 알아가는 것, 그리하여 공동체를 만들 고 그 공동체가 사이버 공간에서 힘을 갖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시판       링크 모음       Cafe       목 차       웹마스터에게        과월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