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여성노조의 출발 지점을 가늠하며...




야옹이


    시장에서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교환된다. 경동시장, 모란시장,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광장시장, 이름 없는 여러시장... 그런데 같은 물건이라도 시장 마다 그 값이 다르다.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동네에서는 수요를 의식한 상인들이 많은 값을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같은 시장 안에서도 물건 값은 다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입구에 위치한 자판은 '대목' 자리인지라, 자리값 때문에 저 안쪽의 동일 품종보다 비싸다. 자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흥정여부에 따라서 가격변동의 폭은 클 수 있다.

    노동력이 교환되는 노동시장도 시장 일반과 마찬가지다. 그 유명한 아담스미스는 노동 시장을 포함한 모든 시장이 동질적인 조건에서 균형가격에 교환이 이루어진다고 했지만, 후학들은 그의 다른 이론적 헛점과 마찬가지로 노동시장은 분절화되어 있다고 반박해왔다.
몇 년 전에 낡은 기계로 인해 숱한 산업재해를 낳았던 원진레이온 사건을 기억하는가? 미국에서 한 15-20년전 사용했었던 화공물질을 뿜어내었던 기계를 수입/ 사용하였던 원진레이온은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에 문을 닫고, 다시 그 기계를 중국에 팔았다. 레이온산업은 기본적으로 값싼 노동력을 경쟁력의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에, 임금이 싸고, 노조가 덜 발달한 그러한 곳을 찾아 입지하게 된다. 결국 자본은 조건이 다른 노동시장의 MAP을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노동시장은 '지역'에 따라 분할되는 것이다.

    같은 지역 내부에서도 노동시장은 결코 균일하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인종, 성에 따라 노동시장은 분화된다. 대기업에서 해고된 사람은 중소기업에 취직되기 어렵다 . 특히 우리나라는 중규모의 기업보다는 마찌꼬바(5-15인이하 영세사업장)와 같은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생각해봐라. 어디 현대, 삼성, 대우에서 '짤린 사람들'이 문래동과 법원 앞에 빼곡히 포진하고 있는 마찌꼬바에 취직할 수 있겠는가? 역으로 마찌꼬바의 인력이 대기업에 진출할 수 있겠는가?
인종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값싼 인력의 섬으로 남아있을 때만 남한에서 고용될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교육수준과 숙련정도는 임금에 고려될 수 없다. 완전히 이민한 상태가 아니라 불법체류하고 있는 상태가 고용주들에게는 유리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성'이다. 김영삼 정권 이하 지금까지 정부의 노동시장관리 정책은 '유연화'로 대별된다. 숙련 정도가 높은 사람들과 대체가능한 저숙련/미숙련 노동자들을 분리 관리하자는 것이다. 물론 숙련-남성, 비숙련-여성이 본질적인 원리이네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현재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수량적으로 유연하게 부리려는 정책', 이를테면 근로제 파견제, 파트타임제 등의 주요 대상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금융계의 대량해고의 여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70%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지지해준다. 특히 파트타임제는 '여성은 가정에도 일이 있다. 따라서 가사노동과 병행할 수 있게 전일 근무가 아닌 파트타임이 유리하다.'라는 논리로 이데올로기적 지지를 받기도 한다. 물론 여성이라고 전통적인 남성 직종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몇몇 슈퍼우먼들이 있으나, 중요한 것은 대다수의 여성들이 숙련도와 상관없으며, 직장에서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언제나 대체가능한' 노동력으로 분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너무 주저리 이야기했는데) 본격적으로 「서울여성노조」의 의의를 가늠해보자. 서울여성노조는 지역-'서울' 과 성-'여성' 이라는 두 개의 바운더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는 분할된 노동시장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조응한 것이라고 본다.
아까도 이야기한 바대로 노동시장은 국지적으로 형성되기에, 전 국가를 범위로 하는 노조가 포괄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만약 경기불황등의 이유로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대규모 해고사태가 발생했다고 하자. 전국적인 노조는 연대집회로 그 부 당성을 제고하고, 협상테이블에 참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동태에 좌지우지될 수 있는 현대중공업의 하청 기업들의 노동자들의 의견은 수렴될 수 없다. 하청기업은 대개 그 규모가 작고 미조직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중공업이 울산 전역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총괄적으로 개입해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민주노총 울산지부도 이와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부는 노조 중앙부의 결정을 이행하기도 벅차기 때문에, 지역에 기반한 정책들을 내기는 역부족이라 생각한다. 지역 바운더리를 설정하는 것 - 즉 지역노조는, 대기업 중심의 기업노조를 너머서 지역 전반의 산업구조를 편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 .
또한 '여성'을 바운더리로 설정한 것 역시 현실의 비어있는 곳을 메꾸는 것이다. 물론 노조는 성별에서 중립적이다. 표면적으로. 이는 노조 자체가 의도적으로 여성을 배척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수량적 유연화의 주대상 노동력이 여성이란 점에서, 그리고 이들이 (주로 남성인) 정규노동인력에게 위험부담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IMF의 대량해고 한파 속에서 가장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그러한 고정관념 속에서.. 노조는 여성에 대해 비의도적으로 배척하거나, 여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대개의 '여성'이 가정과 아이교육이라는 의무로 '이동성(mobilty) '에 제약받는다는 점이다. 아직도 가정은 여성의 책임영역이기에 이를테면 '서울에서 취직이 여의치 않다고 부산으로 이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동성의 제약으로 여성은 특정 지역에, 특정 지역노동시장에 고착되기(stick on) 쉽다. 결국 지역산업구조와 지역노동시장의 흔들림에,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훨씬 더 타격 받기 쉬운 입장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서울여성노조가 발을 딛고 있는 지점이다. 물론 이 분들이 모든 것을 할수는 없겠지만 노동현실의 고질적으로 비어있는 부분을 서서히 메꾸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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