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은 여성의 몸이다

 

集娼은 여성의 몸이다.
- 일제시대 매매춘경관을 답사하며..

야옹이

 

우리나라에서 매매춘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매매춘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모 르기 때문에, 이는 우문(愚問) 내지는 난제(難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매매춘을 지각하게 된 것은 공창이 드러선 일제시대부터가 아닐까? 물론 그 이전에도 관기니 하는 기생이란 신분이 존재했었다. 기생은 '예(藝)'를 전수하는 일이 주업무였기에 매춘직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는 바는 아니지만, 기생을 매매춘과 동급으로 놓기에는 무언가 남는 점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남사당과 같은 유랑패들이 매매춘 행위를 했다는 기 록이 있기는 하지만, 그 당시 법률로는 이들이 3일을 넘게 동네 안에 머물면 유 랑패뿐 아니라 동장까지 곤장 10대를 맞았다고 하니 일상적인 경관으로 드러나 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학자들은 공창이 선포되어 매매춘 여 성이 국가에 의해 관리되었으며, 공간적으로도 집창을 형성했던, 일본제국주의 시대를 매매춘의 시발로 삼는다. 물론 여기에는 '그래 일본이 들어오기 전에는 조선은 성에 대해서 순수했었어' 라는 식의 반일감정이 결부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서구만큼의 철학적 기반은 없더라도 '보다'는 '알다'와 연결되어 있음을, 즉 인식에 있어서 시각의 우월성을 상기한다면 매매춘에 대한 인식론적 출발은 집창(集娼)에서 찾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일본은 을사조약을 체결하기 이전부터, 일인지역에 집창을 조성하였다. 이는 식 민화 과정에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식민대상지역으로 이주시켰던 것과 관련이 깊다. 1940년대 폐지되기전까지 일본에서는 국가가 이 른바 '품질을 보증해주는' 공창제도가 존재했었으며, 여러 홍등가가 '합법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어떤 제국주의 국가에서도 식민지로의 자국민의 이주를 설득 하는 것이 어려웠기에, 지금의 미8군처럼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을 이주시키 는 것이 가장 실효성이 높았다. 조선에 들어온 수많은 낮은 계급들의 사람들 중 에는 상당수의 포주들이 끼어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인지 당연한 것인지 이 러한 유곽은 낯선땅에 정착한 일본인 남자들이 인맥을 넓혀나가는 장소로서 유 용되었다고 한다. 단 국제적인 안목을 고려, 인천에서만은 때늦게 유곽지역이 조성되었다.

1908년 %%%%% 법이 일본에서 제안되며, 실권이 없기도 하거니와 이미 매매 춘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이를 공식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한 조선왕조는 이를 용인한다. 이 법에 따라서 일인 거주지역 즉 개항항과 경성을 중심으로 유 곽지역이 본격적으로 조성되었다. '**마치(町)'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규 모는 현재의 '동(同)'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입지는 다음과 같다. 지금의 서울 즉 경성부에는 모두 2개의 (이 이름쓰자) 마치가 있었으며, 인천의 ** 마치, 부산의 ##마치가 유명했다. 특히 부산의 @@마치와 용산의 ##마치는 지금까지 홍등가 로 유명하며, 부산의 @@마치는 입구에는 남근석이 세워져있다. 특정 장소에 부 착된 정체성의 관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어떠한 장소라도 현재의 모습은 역사 와 구체적인 사회적 특질이 제거된 허공위에서 세구성된 것이 아니니까. %%%%법은 포주와 소위 창기에 대한 관리 뿐 아니라, 유곽지역에 관한 구체 적인 지침까지 내리고 있다. 창은 크기는 어느 정도이며, 부엌과 마루가 반드시 있어야하며, 화장실의 위생상태는 어때야하며, 길의 크기는 몇 척이며, 반드시 문 앞에는 일련번호를 붙여야 하며 등등.. 사진과 문헌으로 더듬어 보는 그 당 시 유곽지역, 즉 집창의 경관은 다음과 같다. 크게 무슨 무슨 마치라고 쓰여있 는 길 어귀의 문을 들어서면, 일련번호가 붙어 있는 같은 규격의 일본식 목조 건물이 넓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길 중앙에는 벚꽃과 일장기가 나부끼고 있며, 거대한 창문이 도열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여자들이 아니 여성 들의 육체가 들어 있다. 한번은 '보기가 그렇다며', 유곽지역의 쇼윈도우식 창문 에 대한 규제를 내린 적도 있다. 포주들은 이 법령을 피해, 닫힌 창문 위에 다 른 식의 쇼윈도우를 구성했다. 즉 창기들의 사진을 도배한 것이다. 물론 아주 잘나가는 이들의 사진은 아주 크게 뽑아서 붙여졌다. 집창은 단지 성교와 같은 매매행위를 할 뿐 아니라, 보행자인 남성의 여육에 대한 감상장소이기 때문이 다.

일차적으로 유곽거리는 여기를 지나는 남성들에게는 감상(?)의 장소였지만, 반 일의 감정이 강한 조선남성들에게는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거봐라' 식의 거리 이기도 했다. 지금의 용산에는 일인지역 즉 유곽 수요자들이 많아지면서, 또한 유곽에 종사하는 조선인들이 증가하면서 공급자가 전원 조선인인 조선인 전용 유곽이 생겨나게 되었다. 민족과 조국은 종종 어머니인 여성 혹은 (여성의)순결 이라는 메타를 업는데, 조선인 전용 유곽의 출현과 유곽지역에 포진한 조선인 창기들의 모습은 바로 '짓밟힌 민족의 순결성'을 보이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당 시 신문에는 종종 일인지역의 유곽과 창기들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이 쓰 여져 있다. 공론의 장소에서 '그녀들의 허옇게 드러낸 허벅지'에 대한 시비는 끊 임없이 이어졌다.

눈요기 혹은 수치심의 경관이 남성들에게 비쳐진 집창의 공간이었다면, 여성에 게는 감시와 두려움의 공간이었다고 하는 것이 올바를 듯하다. 이는 그 안에서 매매춘에 종사하는 여성뿐 아니라 그 바깥에 존재하는 여성들에게도 그러하였 다. 법적으로 매매춘은 전문지역 즉 유곽에서만 합법적이었으며, 창기들은 그 지역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창가들이 늘어나면서 매매춘 여성들은 통 제가 심한 공창지역을 벗어나려 했기에, 포주들은 담합하여 사람을 사서 24시간 감시체제를 형성하게 되었다. 당시의 신문들은 '.... **지역의 창기 아무개가 유 곽지역을 벗어나려 시도하다가 매를 맞다' 내지는 '자살을 하다'라는 기사가 상 당히 많이 등장했다. 이러한 폐쇄된 공창지역에 대한 집단적 대응으로 '창기들 의 파업'까지 있었다. 또한 파업관련자의 숫자는 당시의 노동쟁의 수준으로 보 았을 때, 비공식적으로 1-2위를 다툴 정도이다. 남성들의 시선은 유곽의 창을 통해서 여성의 몸을 더듬고 지배했을 뿐 아니라, 골목 어귀 어귀에서 매매춘 여 성들을 감시 통제하였던 것이다.

유곽 바깥에 있는 여성에게는 다른 종류의 집창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였다. 이는 집창이란 존재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 고착능력과 관련해서다. 공창의 대표적인 특징은 성병검진을 통한 매매춘 여성에 대한 관리, 혹은 이를 사용하 는 남성들에 대한 안도감의 제공이다. 즉 정기적인 성병검진이 주요한 국가의 업무였으며, 이는 생각보다 '비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포주들이 단체적으로 관 리하는 여성들을 이끌고 검진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검시관이 유곽지역으로 들이닥쳐 거리에 포진하고 지나가는 '창기처럼 보이는' 여성들을 검사하는 것이 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체적인 자료를 찾을 수 없었지만, 일본에서는 유곽 인 근을 다니는 아무 여성이나 잡고 '성병 검사'를 명목으로 나체를 드러내게 하는 등 상당한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이보다 조금 더 전에 공창을 실시한 프랑스에 서도, 성병 검진을 명목으로 지나가는 아무 여성이나 모욕적인 검사를 해대고 난 후, 그 당시 거의 문맹이었던 여성에게 공창에 등록하는 서류에 서명을 하게 하는 등의 해프닝이 있었다. 유비해보자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성폭력에 해 당하는 성병 검진이 그 근방을 다니는 여성들의 발걸음을 재촉 혹은 멀리 두르 게 했었을 것이다. 집창지역의 근방을 지나간다는 사실만으로 그 장소에 고착될 까봐 두려워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집창은 그 존재 자체가 (남성에 의하여)'정복당해야만 할' 여성의 몸을 상징한다. 공간 속에서의 여성의 몸인 것이다. 그곳을 지나가는 보행자 남성에 게는 감상의 대상으로, 반일주의자들에게는 여성으로 은유되는 민족의 유린된 몸으로, 그 안의 여성들은 물론 바깥의 여성들에게도 자신의 몸과 등치되는 그 러한 공간이다. 시각이 앎을 좌우하거나 조금 적게 보더라도, 앎에의 지평을 바 꾼다고 할 때, 집창으로 드러나는 여성의 몸은 젠더의 경계를 설정하고 더 나아 가 젠더의 질서를 바꾸는데 기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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