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과 여성] 배란 은폐

 

배란 은폐

신딸기

 

언젠가 가족들과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에 나오는 영장류들을 보다가 얼굴이 빨개진 적이 있다. 물론 아닌 척하려고 애를 썼었다.

"흠흠...."
"야, 거 참 웃기다."
"하하, 그러게.."

같이 텔레비전을 보던 아버지와 남동생, 나는 괜한 웃음을 흘리면서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이쯤 이야기 하면 여러분은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 때 내가 본 것은 원숭이들의 mating 장면이었다. 그렇다, 그 원숭이들은 섹스를 하고 있었다. 한 암컷이 우두머리 원숭이의 눈을 피해 외부에서 온 수컷과 격렬하게 하는 섹스. ( 푸하하.. 사실, 그 커플이 눈치를 보면서 몰래 도둑 섹스하는 모습이 좀 웃기긴 했다.)

아버지와 남동생과 함께 보는 포르노가 어찌 재미있게만 느껴지리오... 그 때 방영된 그 부분은 정말 포르노가 따로 없었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그런 장면은 성교육용으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긴 하다.) 아버지, 남동생, 나 ... 분명히 심기가 불편했지만 그 좋을 것을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끝까지 서로 모르는 척, 재미있는 척하면서 보게 되었다. 결국 소심한 나는 밤에 자려고 누워서 까지 그 원숭이들의 눈치 보며 하는 섹스가 아른거렸고..( 이건 거의 변태 소년만화에 나오는 수준의 장면이로군.. 쯔읍)

어쨌든 그 날 이후 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하는 노래만 들으면 그게 생각나는 거다.

발정기가 되면 암컷 원숭이의 엉덩이가 빨갛게 부풀어 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신호로 작용해서 수컷 원숭이들을 유혹한다. 비단 원숭이 뿐만이 아니다. 암소는 수소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만드는 냄새를 풍기고 암호항이는 수호랑이를 찾으러 다닌다. 쥐 암컷은 발정기가 되면 수컷에게 지분거린다. 포유류의 대부분은 자신의 배란일을 화려한 과시를 통해 자랑하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면 곁에 있는 수컷들의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높아지며 더 자주 교미하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런 표시도 없다.
물론 당신들 중에 '좀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인간 여성은 월경을 시작한 날로부터 14일째가 바로 배란일이며 이때에는 체온이 약 1~2도 정도 상승한다고 한다. 어떻게 배란을 알 수 없다고 하는가?"

역시 이러한 지식(틀린 구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은 '좀 아는 사람들' 밖에는 모르는 거다. 이걸 아는 사람들은 아마 적어도 다른 사람이나 책에서 본 지식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일 거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다른 포유류에서의 발정기는 '좀 아는 수컷'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발정기를 쉽게 알아챈 수컷들은 그 암컷과 쉽게 교미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암컷들은 아무 수컷과 함께 교미하진 않는다. 어찌 되었든, 인간 여성의 배란기는 드러나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배란 은폐라는 말을 쓰면 마치, 여성이 자기는 아는데 남한테 안 가르쳐 주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뉘앙스로 받아들이진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용어를 쓰는 이유는 단지, 학자들에 의해서 그렇게 번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Concealed Ovulation 이나 Cryptic Ovulation 이라는 용어가 배란 은폐, 은밀한 배란 따위로 번역이 되는데.. 은밀한 배란이라고 쓰자니 너무 간지러워 배란 은폐라는 말을 쓰기로 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왜 배란 은폐가 있는 것일까?
사실, 여성의 배란이 월경주기의 언제쯤 일어나는 것인지도 사람들은 잘 몰랐었다. 1930년 경에야 배란에 대한 연구가 시작 되었고, 그 이전의 사람들은 생리 중에 더 임신하기가 쉽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여성이 만일 임신을 하거나 피하기 위해서 배란 시기를 알려면 책을 읽고 계산을 해 봐야 한다.다른 포유류의 암컷과는 달리 인간은 대담한 성적 본능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배란기를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배란이 드러나지 않으나 대신 언제나 성교가 가능하다. 그러나 월경 주기 중에서 임신이 가능한 시기는 극히 짧기 때문에 사람의 성교는 거의 임신이 불가능한 시기에 행해지기 일쑤다. 게다가 여성의 월경 주기는 다른 포유류 암컷보다 개인차가 훨씬 크다. 이러한 배란 은폐에 따른 성교는 수정 자체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월경 주기 내내 성교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진화적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물론 짧은 소견에 내가 이러한 질문에 다 답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의견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서론이 너무 길었던 것 같기도 하다.(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달라)

어쨌든 내가 앞에 나열했던 그러한 질문들에 답하려고 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은 70년대 서구 생물학계를 풍미했던 사회생물학자들이었다. 우리 나라에 잘 알려진 사람으로는 데즈먼드 모리스가 있는데, 이 사람 역시 사회생물학자이긴 했지만 이미 만기된( expired) 늦은 사람으로... 졸라 늙고 고루한, 주먹구구식의 궤변이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 나라엔 이 사람의 뻘소리가 정설인양 받아 들여지고 우매하고 보수적인 사회학자들 사이에 인용되어 여성을 생물학적으로 억압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여성 운동 하는 사람들은 생물학적..운운 하는 남자들을 기피해 왔던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웬지 생물학에 대해선 관심을 가져야 할 것도 같은데 하면 할수록 손해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자연과학에 포함된 생물학이 가치중립적인거라 믿고 남성 생물학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 생물학은 우리 편이 아닌가벼... 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게 사실이지 않은가.

같은 현상을 보고 다르게 해석하는 사회 과학하는 사람들과 생물학자들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일단 말해두고 싶다. 어떤 이는 동물들처럼 발정기를 가지지 않는 여성의 배란이 소극적인 것은 여성의 소극적인 속성 때문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좀 아는 여러분들은 그렇게 까지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여기서는 이 배란 은폐라는 현상에 대해 남성과 여성 사회 생물학자들 사이에 주장이 얼마나 다양한지 보여주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 번호의 기획인 은폐되어왔고 부끄럽게 생각하게끔 만들어진 우리 몸이 잘난 우리 두뇌나 정신과는 상관없이 얼마나 적극적인지 다들 느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못 느낀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 글재주가 없음으로 인한 것일 테니.. 게시판이나 메일로 나한테 항의해 주면 아는 대로 설명하겠음)

 


*데즈먼드 모리스

이 사람은 열라 가부장적인 사람으로 배란 은폐도 그러한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여성은 배란 은폐는 발정기가 아닌 임신이 되지 않을 때도 섹스가 가능케 해준다는 점에 착안을 했다. 그래서 짝결속, 즉 일부일처제 가정을 이루는 것을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자주 섹스를 하다 보면 공고한 일부일처제 가정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며 외도를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혹은 그는 이런 식으로도 말했다고 한다. 여성을 먹여 살리는 남성에게 여성이 보답으로 섹스를 해 준다고...( 좀 있다가 보면 비슷한 말인 것 같은 데도 굉장히 다른, 분명히 차이가 나는 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리는 사실, 오래 전에 깨졌다.
일부일처제인 새들에게도 배란 은폐가 있는데... 외도가 엄청나게 잦다는 것이다. 섹스로 외도를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말이 안 되는 거다. 또, 긴팔원숭이는 일년에 몇 차례 밖에는 교미를 하진 않지만 일부일처제를 잘 유지하고 있다. 이들 집단의 구성은 주로 먹이의 분포양상과 포식 압력에 대한 대응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 도널드 시몬즈

시간이 흘러 사회생물학자들도 자기 멋대로 이야기하는 버릇이 없어질 무렵인가 보다. 이 남성 사회생물학자는 어떻게 보면 비슷한 현상일 것 같은 이야기를 모리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다.

이 사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일단 우리가 점검하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여성과 남성의 생식 전략은 다르다라는 사실이다. 암컷과 수컷의 생식에서의 이해 관계는 일치하지 않아서 상호 보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호 제한적이므로 각자 별도로 취급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양성간에는 근원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이는 포유류 수컷은 가능한 한 많은 수태를 달성해서 자손을 많이 낳게 하려 하는 반면 암컷은 이미 수정된 수정란을 양육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이는 암컷의 생식 전략은 새끼의 양육에 필요한 자원의 분포에 따라 전개되는데 반해 수컷의 생식 전략은 암컷의 분포 양상에 따라 정해지고 암컷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직간접으로 통제함으로써 암컷의 생식력에 대한 접근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시몬즈의 이야기로 넘어가자. 시몬즈는 암컷에게 좋은 유전자를 가진 배우자를 택하고 동시에 물질적인 원조도 확보하는 게 유리하다. 특히 양육기간이 긴 포유류의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일처제 사회에서는 둘다 동시에 가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수컷의 경우, 자신의 유전자를 좀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암컷의 경우에는 위에 이야기한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외도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수컷이 이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 양육에 관심을 쏟는 수컷의 경우, 남의 새끼를 키워주는 것을 손해니깐 졸졸 따라다니면서 감시를 하려고 할 텐데... 배란기가 드러난다면 매일 같이 감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배란기가 드러나지 않으면 언제 외도를 했는지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배란 은폐는 암컷의 외도를 쉽게 해준다는 것이다.

 


* 사라 블래퍼 하디

이제 여성 사회생물학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여성사회생물학자들은 영장류 연구에서 항상 제대로 대접 받지 못했던 암컷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디는 그 중 한 사람으로 꽤 많이 알려져 있다. 제인 구달 만큼 우리 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 번역한 사람이 남자라서 제목도 이상하게 오역되어 있다...원제는 Woman that Never Evolved... 영장류 암컷에 관한 내용이다)라는 제목의 책이 번역되어 있다.

하디는 집단 생활을 하는 침팬지들의 사회에서 유아 살해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에 착안한 하디는 암컷의 배란 은폐는 유아 살해를 막고 남성들의 원조를 받아내기 위해 진화했다고 생각했다.

앞에서 말한 시몬즈와 비슷한 의견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하디는 시몬즈의 일부일처제 사회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의 배란이 은폐되면 그 여성의 아이가 과연 그 많은 섹스 파트너들 중에 누구의 아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여성이 그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남성의 입장에서 그 아이는 내 아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도와주진 않더라도 적어도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하고 물질적인 원조를 해줄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여성과 남성의 생식 전략의 차이에 대해 상기해 보라...

하디와 시몬즈의 의견은 기본적인 감은 비슷한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라는 입장의 차이인지 서로 다른 영장류를 공부했기 때문인지 설명에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는 있다.

이들의 주장을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대입해 보면, 정복자인 남성이 정복당한 남성을 죽이고 그 자식을 죽인 후 그의 아내를 빼앗는다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십자군 전쟁 때는 남성들이 아내에게 정조대를 채우고 그 열쇠를 들고 전쟁에 나갔다고 한다. 그러면 그 여성들은 사랑을 할 수 없었을까? ( 옛날 서구에는 불륜만이 사랑으로 일컬어 졌다고 한다. 자유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은 언제나 불륜...) 그러나 여성들은 그 정조대를 만든 대장장이들을 찾아가 여분의 열쇠를 사가지고 돌아 온다. 대장장이의 수입도 늘고, 남편은 안심하고 여성은 안전한 외도를 즐기는... 배란 은폐는 이와 비슷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낸시 벌리

그리고 또 다른 흥미로운 의견이 있다.
이는 앞에서 말한 성에 따른 생식 전략의 차이와는 좀 다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대뇌화와 관련이 있다... 이 대뇌화라는 무식한 용어는 인간이 머리가 졸라 커졌다는 것을 말한다.

낸시 벌리는 여성의 배란 은폐의 원인을 이 대뇌화에서 찾고 있다. 인간은 다른 포유류에 비해 머리가 너무 크다. 그래서 여성들은 이 머리가 큰 아이를 낳을 때 몹시 힘이 들고 죽기까지 하는 일도 있다. 실제로 내 남동생은 머리가 너무 커서 기계를 사용해서 뽑아 냈다고 한다. 만약 그게 실패했다면 어머니는 제왕절개 수술을 하셔야 했을 것이다. (그 녀석 지금도 한 머리하는 놈으로 자랐다. 그런데 그 큰 머리가 확실히 좋은 건 지는 알 수 없다. 머리 크기와 지능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 해보면 좋겠다.)

이렇게 되자 여성들의 몸은 임신을 기피하려고 ... 아이 낳는 것도 좋고 자기 유전자 퍼뜨리는 것도 좋지만 내가 죽어버리면 어떡하냐구.... 그렇게 배란이 은폐되었다고 벌리는 주장한다. 즉 임신할 확률을 좀더 줄이기 위해 배란이 은폐되었다는 것이다. 배란이 은폐됨으로써 사람들의 임신할 확률은 고작 28% 밖에는 안 된다고 한다. 이것은 발정기가 있는 침팬지의 75%와 비교해 볼 때 굉장히 작은 확률이다. 이 가설은 대뇌화와 아이를 낳다 죽는 암컷을 볼 수 있으므로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가설은 전혀 대뇌화가 이루어 지지 않은, 알을 낳는 새의 대부분에서 배란 은폐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주장은 학계에 널리 퍼져서 정설로 받아 들여지지는 않고 있다고는 한다.

그러나 아이 낳다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 같은 년(귀여운 아이가 아니라)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 같은 년 조차도 못 낳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 그리고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막연한 두려움으로 출산공포증, 임신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나나 내 친구들에게 낸시 벌리는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인가.

 

배란 은폐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의견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보면서, 여러분에게 소개하면서 뿌듯해 진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몸을( 주로 머리는 빼고 이야기 한다, 머리도 몸인데 말이지..뇌에 대해선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더라구)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스러워 하거나 어떤 형식에 맞게 재단해야 한다고 강요받거나... ... 또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남에게 선물하기 위해 가꾸어야 한다( 미래의 남편을 생각하고 몸청결히 하고 처신을 잘 하라고 하시던 고등학교 가정 선생님들을 생각해 보라)고 그렇게 교육 받아오고....... 우리들은 우리의 몸을 부담스러워했지만

우리들의 몸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당당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적절하게 움직이고 변화해 왔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해야 할 우리들의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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