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순정만화를 좋아하는가?

--연속극과 순정만화의 차이

신 딸 기

 

많은 영상 잡지에 만화 경시 풍토,( 특히 일본 만화와 순정 만화) 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기고하는 순정 만화 작가 박모씨는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는 결코 이것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하진 않을 모양이다)
'소위 페미니스트란 여자들이 순정만화를 싫어하는 것은 말이지, 자신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구.'

물론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박모씨가 이 글을 본다면 약간 미안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 페미니스트들이 순정 만화를 싫어한다는 것은 통념일 수도 있다. 실제로 페미니스트가 싫어하건 아니건 간에 말이다. 사실, 이 문제는 어디서 외국 논문을 빌어오지 않고서는 해결 되지 않을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불행히도, 외국에는 일본과 대만을 빼면, 순정만화라는 게 없다.
순정 만화는 우리 나라, 일본, 대만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순정 만화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 다들 순정만화 하면 떠올리는 것들이 있을 게다. 바로 그것, 나는 그것을 순정 만화라고 부르겠다. 당신이 순정 만화라고 말하는 그것을 순정 만화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여기선 좀더 진보된 개념이자 훨씬 좋아보이는 개념인 여성 만화에 대해서는 일단 침묵하겠다. (사실, 나도 이 말이 마음에 드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순정만화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순정만화라고 불릴 만한 작품(?)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순정 만화의 많은 작품들이 (혹은 작품이라고 불릴 수 없는 그것들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유포시키고 있으며 연애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여성적인 매체로서의 순정만화를 이야기 하고 싶다.
나는 그런 면에서 순정 만화를 아끼고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들의 드러난 욕망을 가슴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녀들이 새로운 질서에 대한 갈구와 그리움에 경탄 한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순정 만화를 읽고 있는 내게 말한다.(사실 내 남자 친구가 한 말이다)
"뭐 그런 걸 보냐? 재밌어? 재미 없지?"
그러고는 연속극에 푸욱 빠져 버린 아줌마를 보듯이 대한다. 나는 무지 화가 났다,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꾹 참고
"아니야, 넌 순정만화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서 그래. 게다가 얼마나 여성적인데…..."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핏, 그래 봤자 울고 짜는 연애 이야기 아니야? 티비 드라마랑 다른 게 뭔데? 똑같잖아, 어휴, 이 아줌마….."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다.
그래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화가 났지만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사실, 연속극을 보는 사람은 여성이 대부분인 것도 맞고 그 드라마가 주로 연애 이야기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항상 훌륭하다고 주장했던 여성 독자와 여성 작가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에 필적할 만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 졌다. 연속극을 쓰는 작가가 여성인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다. 김수현만 봐도 남자들이 혀를 내두르는 소위 페미니스트가 아닌가…여성 작가들은 페미니스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성 친화적인 혹은 여성에게 우호적인 극본을 쓰지 않는가…

그래도 난 역시 연속극이 싫다.
싫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돌아서면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연속극을 볼 때면 왜, 남성 관객에 대한 로라 멀비의 논문이 생각이 나는 것일까? (로라 멀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 하거나 하자. 답답하면 영화 코너에 물어 보기 바란다) 여성 작가의 문제도 여성 시청자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연출, 요즘엔 감독님이라고 하는 그 남성들과 카메라를 잡는 그 촬영 감독인가 하는 남성들 때문일 것이다.
그래, 연속극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확대 재생산하고 유포 시키는 것이 틀림없다. 매체를 만드는 감독과 촬영이 남성이라면 어쩔 수 없는 여성친화적인 대본이라도 예쁜 여배우에 멋진 몸매를 보여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화편화를 통해 권력관계를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훌륭한 순정 만화는 어던가
완전히 여성의 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가!!!
(내가 좋아하는 체리체리 고고의 김진태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자. 그리고 박모씨, 김준범씨는 일단 제외하자. 굳이 김동화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김동화는 이름까지 여자 인척 하면서 순정만화 그려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되니까 소년지에 만화그리고 있다.)

순정 만화는
(주로) 여성의
(주로) 여성에 의한
(주로) 여성 독자를 위해
여성의 욕망을 표현한 만화
가 아니던가. 그것이 상업이건 예술이건 뭐 상관 없다.
이것은 로라 멀비의 헐리우드 영화의 남성 삼위 일체식인
남성 관객 = 카메라(기본적으로 남성적인 매체다) = 남성 주인공 과도 닮아있다. 그러나 얼마나 다른가…(물론 영화와 만화는 매체 자체의 특성으로 공통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많다.)
일단 그게 상업적이건 여고생의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건 , 그런 문제는 일단 접어 놓고라도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이 얼마나 더 가부장적인 지를 떠나서라도
나는 여성이 주체가 되는 순정만화가 좋다.

여성인 독자들을 위해서
( 주체적인)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여성 작가에 의해 그려지는
그 매체가 나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것이다.

남성이 순정 만화에서 보이는 것, 혹은 보여 주는 것, 시각적 쾌락을 주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이미 발톱이며 이빨이 다 빠진 사자 마냥 오로지 훌륭한 반려자가 되기 위해서만 힘을 쏟지 않던가.
(참고로 하는 말인데, 나는 여성우월주의자는 아니다. 그리고 순정 만화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표현하는 방식은 남성 작가들과는 다르다. 그들의 방식에서 남성을 여성으로 바꿔 놓은 정도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통찰력으로 삶을 관조하며,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새로운 질서라 함은 절대로 황미나나 김혜린을 일컫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말을 할 사람들은 씨네 21의 기자들 뿐일 거다, 아마)

물론 많은 순정 만화가 가부장제적 질서를 수용하고 있으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하이틴 로맨스적이기도 하며, 심지어는 베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모든 순정 만화 각각의 작품이 훌륭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그 새로운 매체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김숙이나 김동화, 한승원 등을 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황미나와 김혜린이 페미니스트 이라거나 였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김진, 이빈, 박희정, 나예리, 이진경, 강경옥 등과 이름은 거론 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물결을 가지고 나타났던 많은 3세대 순정 만화 작가들에 주목한다. (김 진은 특별한 경우이긴 하다. 3세대 작가의 특성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나이도 많지만, 그의 가족에 관한 콤플렉스는 꼭 짚고 넘어 가야 한다) 나는 그들의 세계에 대해서 그들의 세계관에 관해서 그들의 매체에 대해서,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