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들의 담론 - 여성해방비평과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미술운동의 궤적

페미니즘 시각의 미술비평과 미술사는 지난 15년 사이에 부상한 최근의 현상이다. 그 짧은 역사 속에서 페미니즘 미술비평과 미술사의 제 1세대가 '여성이라는 존재 의 조건과 경험'을 강조했다면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된 제 2세대는 타 학문분야에 서 이루어진 페미니즘 비평의 영향을 받아 미술생산 및 평가에 관한 연구, 미술가 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통해 미술과 문화에 대해 좀더 복합적인 비평을 제공했다.

미술비평 제 2세대 중에 현대미술 비평가들은 후기구조주의, 기호학 그리고 심리 분석학적 비평에서의 새로운 포스트모던 방법론들을 활용하면서 페미니즘적 시각을 받아들인다.

그 대표적인 글이 바로 크레이그 오웬스의 [타자의 담론]이다. 본인은 크레이그 오웬스로부터 포스트모던 상황에 놓인 여성미술가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럼 일단 본격적으로 이 글을 살피기 전에 페미니즘 미술의 대두와 전개, 논의 과정들을 먼저 둘러보도록 하자.

1세대 페미니즘 미술 운동

전통적인 미술 비평이 제 1세대 페미니즘 미술의 쟁점과 이미지들을 제대로 다루 지 못했을 것은 뻔한 일이다.
제 1세대 미술가, 비평가 그리고 미술사가들은 미술계 안의 차별을 폭로하고, 개 혁을 지지하며, 현대와 과거의 여성미술가들을 보다 폭넓게 조명하는 데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1세대 여성작가들은 여성에 의한 미술 생산물의 본질, 그에 대한 평가, 위치에 관 련된 쟁점들을 다루었고 페미니즘 미술비평 발전의 선두를 달려왔다. 미술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은 1960년대 말에 시작되었는데 이는 1960년대 중반에 일어난 보다 일반적인 페미니즘 운동과 정치적 행동주의로부터 자극을 받은 것이었 다. 미국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의 특징은 서부해안 지역의 미술가들이 미학적인 쟁점 과 여성적 의식을 탐구하는데 보다 깊이 관여했던 반면, 뉴욕의 작가들은 제도적 성차별주의의 비판을 통해 전시에서의 경제적 평형과 동등한 표현의 기회를 모색했 다는 점이다. 페미니즘 미술의 처음 10년간은 분노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의식 그 리고 새로운 감수성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미술을 창안하려는 시도 그리고 페미니 즘 의식을 고양시키고 심지어 그것을 생성해 낼 수 있다는 미술의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 믿음에 의해 부상되었다. 초기의 페미니즘 미술 운동에서 일어난 활동이 도화선이 되어 작가와 비평가들은 새로운 쟁점에 관여하게 되었다. 1970년 전반기에 활동했던 페미니즘 미술가들은 비록 자신들이 던진 질문의 해답을 미처 찾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명백하게 드러나 고 있는 듯한 우리 문화 구조의 부조호와 분열들을 폭로했다. 낸시 스페로와 메이 스티븐스의 작품에서의 가부장적 억압에 관한 쟁점들, 실비아 슬레이, 조안 젬멜 그리고 한나 윌크의 작품에서의 보다 적극적인 신체 감각의 창 안, 미리엄 샤피로, 조이스 코즈몬드의 작품에 있어 '순수미술'에서 '공예'에 이르는 허구적인 위계를 부수려는 시도, 메리 베스 엘델슨의 작품에서 위대한 여신과 같은 여성의 원형에 대한 탐구, 주지 시키거나 여타 페미니즘 미술사가들의 작업에서의 여성의 역사회복 등이었다

제 2세대 페미니즘 미술운동

2세대 페미니즘은 여성이 겪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 이상의 것을 의문시한다. 여성 을 남성과의 관계에서 불가피하게 불리한 위치에 놓는 심층의 이데올로기적 구조들 을 고찰한다. 가부장제가 그 하나의 예가 된다면 사회계약은 또 다른 예가 된다. 의식이나 자아가 주체의 중심이 아니라는 라깡주의적 정신분석의 통찰에 영감받 아 제 2세대 페미니즘은 언어, 법 그리고 철학에서의 성차별(gender bias)에 도전한 다. 여성은 단순히 남성과 동등해지는 것을 목표로 해서는 안되며 새로운, 고유하게 여성적인 언어, 법 그리고 신화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특정하게 여성적인 것의 본질보다는 젠더 차이에서 비 롯되는 효과와 상호작용을 연구하기 위해 여성적 성과 여성적 감수성에 대한 이슈 는 접어두었다. 티크너가 실비아 슬레이에서 한나 윌크에 이르는, 많은 제 1세대 페미니즘 미술가 들의 작업에서 발견했던 '식민화'되고 소외된 여성의 육체를 재구성하는 대신에 바 바라 크루거와 메리 켈리같은 미술가들은 그것을 해체시키고 있다. 제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오히려 '의미화의 특정 체계들 내에서 생산된 고정되지 않은 여성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가부장제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과 재현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비판이 교차하는 지점을 주목하고 있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제 2세대 페미니즘 미술가들의 활동들을 살펴보도록 하 자.

타자의 담론 속으로

라깡의 유명한 언설을 인용한 '타자의 담론'은 미술계 안의 차별을 폭로하고, 개 혁을 지지하며, 현대와 과거의 여성미술가제 1세대 미술비평당시 부상하고 있던 제 1세대 페미니즘 이후 등장한 2세대 페미니즘 미술비평을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와 결 부시켜 풀어 낸 남성의 글이다.

어처구니없는 간과

그는 재현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이야기하며 여성은 오로지 재현되어질 뿐이고 여성은 언제나 이미 재현의 대상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 일반에 관한 논의의 맹점을 지적하며 논의하는 대상에 관 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발화 역시 성차의 문제를 표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마사 로슬러 (Martha Rosler)를 예로 들며 페미니스트들은 모더니즘이 예 술작품에 부여한 특권적인 지위를 폭로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포스트모던 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양상으로 페미니즘을 꼽는다. 그런데 이러한 끈질긴 페미니즘 목소리의 현존을 포스트 모더니즘 이론은 억압하거나 혹은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차이와 비교불가능함을 고집하는 여성들의 주장이 포스트모던한 사고와 양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사고의 한 실례라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을 다원주의에 대한 증거로 간주하며 페미니즘 자체를 단원론적인 것 으로, 그 내부의 다양한 내적 차이들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또한 성적, 인종적, 계급적 차별에 대립되는 모든 다른 형태의 특수성과 함께 함 으로써, 가부장제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의 특수성이 부정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크레이그는 여성들이 도전하는 것은 이론이 그 자체와 그것의 분석대상과의 사 이에 유지하는 거리, 대상을 객관화시키고 그 위에 군림하는 그 거리에 도전한다 고 보는데 여성적 글쓰기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인 뤼스 이리가라이, 헬렌느 식수 를 꼽고 있다. 여성적 글쓰기, 즉 비판적, 이론적 글쓰기를 전략적 개입을 위한 중요한 경합장으 로 여기며 모더니즘 예술가들이 글쓰기를 일차적 작업에 비추어 거의 언제나 보완 적인 것으로 간주하던 것과 비교하고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의 실천을 특징짓고 있는 여러 방면에서의 동시다발적인 활약은 포스트모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모더니즘의 예술적인 실천과 이론 사이의 엄격한 대립구도를 지닌 반면 포스트모던한 페미니스트 실천은 이러한 이론에 의문을 제기 한다. 크레이그는 이러한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메리 켈리의 예를 들고 있다. 메리 켈리는 [산후 기록](1973~79)이라는 작품을 통하여 이러한 이론과 실천 의 엄격한 분리를 흐트러 놓고 있다. 이 작품 전체는 6부 165작품으로 구성된 작업 으로 다양한 양식의 재현매체 -문학적, 과학적, 정신분석학적, 고고학적 등등의 재현매체를 총동원한- 를 사용하여 그녀의 아들이 6살에 이르기까지의 연대기를 기 록한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사료보관소이자 부분적으로는 전시회이고 부분적으로는 사례연구 인 이 산후 기록은 라깡 이론에 대한 기여이자 동시에 비판인 셈이다. 그녀의 [산후기록] 은 라깡식 서사 안에 잠재된 어처구니없이 간과한 것을 궁극 적으로 노출시켜 이론의 절대성을 부정하려 하였다.

잃어버린 서사를 찾아서

크레이그 오웬스는 탈근대성의 출현을 서사의 정당화 기능과 합의를 도출해내는 서사 능력에 대한 위기신호로 본다. 최근 들어 지배력 상실의 증후는 오늘날 문화활동 전반에서 드러나고 있고 이런 현상이 시각예술에서보다 더 잘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기능과 용도라는 합리적 원칙을 충실히 반영, 환경을 변화시키시 위해 권력과 과 학기술을 결합시키려는 모더니즘의 기획은 오래전에 포기되었다고 말하며 때때로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작품은 의도적인 지배력의 거부를 표명해 왔다고 이야기 한다. 그 예로 마사 로슬러의 두가지 부적절한 묘사체계로 본 바워리 거리(1974~7 5) 들고 있다. 이 작품은 표제/텍스트의 관습적인 기능, 즉 이미지가 결여하고 있는 것 을 메꾸는 것으로서의 기능을 거부한다. 그 대신 시각적, 언어적인 두가지 재현체계 를 병치시킴으로써 각각의 진리치를 강조하기 보다 잠식하려는 계산을 깔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오늘날 정치적으로 동기화된 예술적 실천의 핵심적 문제, 즉 '타인을 대신해 발언하는 것의 무례함'을 부정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는 위태로운 재현전략의 빈곤을 드러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시각적인 것과 비시각적인 것

또한 그는 시각의 우월성 주장하는 근대미학을 비판한다. 이러한 논의는 뤼스 이리가레이로부터도 찾을 수 있다. 그녀는 우리 문화에서 냄 새, 취향, 촉감, 청각 위에 군림하는 시선의 우세함은 신체적인 제관계의 빈곤화를 초래했다고 이야기한다. 페미니스트 비평은 이러한 시각의 특권화와 성적 특권을 연결시켜 이야기한다. 프로이드 심리학에서 남근의 존재와 부재를 깨닫는 것은 다름아닌 시각을 통해 서이다. 성차는 시각으로부터 결정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남성은 행동하고 여성은 스스로를 드러낸다. 남성은 여성을 바라다 보는 반면 여성은 자신을 쳐다본다는 것이다...... 여성은 그 스스로의 모습으로 벌거벗고 있지 않다. 관람객에게 바라다보이 기 위 한 모습으로 벌거벗고 있는 것이다. 회화전통에 있어 '벌거벗음'과 '나체'의 차이 - 나체란 회화의 한 출발점 이라기보다는 회화에 의해 이룩된 하나의 '바라다보는 방식'이라고 한다. 여성을 바라다보는 기본적 시각과 여성의 이미지가 사용되는 방식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여성다움이 남성다움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 상적'인 관람자가 언제나 '남성'이라는 전제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으로 작업을 하는 페미니스트로 다라 번바움이 등장한다. 그녀는 TV 방송으로부터 직접 녹화한 비디오 필름을 재편집하는 비디오 작가로 <테크놀로지/변형 : 원더우먼>(1978~1979)이라는 작품에서 남성 욕망의 재현한다. 셔리 레바인이라는 작가는 다른 작가 작품 차용하여 그녀가 전유한 이미지가 언제나 타자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녀는 부권적 권위를 거부하며 타자화된 인물 들을 주제로 삼는다. 또한 크레이그는 신디 셔먼의 작품을 원작자주의를 공격하고 여성성을 가장무도 회로 파악하는, 말하자면 남성의 욕망을 재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정신분석학적 개념으로부터 이끌어낸 행위로 보고 있다. 셔먼의 사진은 안정되고 안정시키는 아이덴티티 속에서 여성을 고정시키려는 남 자의 욕망을 반사하는 거울가면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바바라 크루거를 예로 들며 그녀가 남성성과 여성성 자체가 안정된 실체가 아니라 교환에 종속되는 것임을 드러낸다고 이야기 한다.

빠져나오며

이제까지 크레이그 오웬스의 [타자의 담론]을 따라가며 2세대 페미니즘의 논의와 작가들이 미술 자체와 성, 사회의 고정화된 시각을 어떻게 해체시켜 버렸는지 살펴 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인 메타서사의 해체과정을 목격할 수 있는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