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에서 강간으로부터의 도피전략 3: 사랑이라고 믿자, 흑흑

신 딸 기

 

나는 강간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싫어한다. 소위 강간이란, 법적인 용어로서는 하자가 없을 진 몰라도, 굉장히 문제가 많은 단어다....강제로 가해자의 성기가 삽입되어, 사정까지 하는 행위.. 사실은, 성관계와는 다른 폭력임에도, 성관계를 뜻하는 '간' 이라는 말의 쓰임에 대해서, 강간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젠 써서는 안 될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글의 주제가, 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청소년기에 받았던 성교육과, 강박관념, 성행위와 '강간' 의 혼동, 같은 것들을 쓰고 있어서, 쓰고 싶진 않지만, 지금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라 굳이 쓰고는 있다.
게다가 이번 글은 지혜안의 에스할름 이야기가 아니던가..

앞의 글, 풀하우스의 엘리는 참으로 복이 많은 여자라고 그저 게임만 즐기면 되는 복받은 존재라고 시기한 적이 있다. 엘리는 자신의 문제만 극복하면 (모든 오해는 작가가 풀어 줄 테니) 뭐, 다 해결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에스할름 이야기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이도 엘리보다 어린 이본느는 약혼자와 결혼식을 하던 날, 영주에게 강간을 당한다. 뭐, 그 당시의 철학으로 보자면, 처음을 상징하는 것은 당연히 영주에게 바쳐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초야권은 농노가 소유할 만한 것이 아니긴 했다. 그러나, 우리의 이본느, 배운 것 없는 농노의 딸이건만, 생각만은 근대화된 신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농노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초야를 신성하신, 신의 대리인 영주님이 취하신 것이 아니라, 강간 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슬퍼한다. 게다가 바람둥이 약혼자는 그녀를 버리기까지 한다. 결국, 미모로 보나 재산으로 보나 마음씀씀이로 보나, 이본느는 영주의 아내로, 신분 상승할 것이라는 것, 순정 만화 안 보는 남자애들도 알 결말이다.

결말을 보자고 순정만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남자애들 아닌 사람들은 다 알 일이다.그렇지 않은가? 순정만화를 보는 것은 결말을 보자고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것, 순정만화의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라는 것, 결말이 참을 수 없이 궁금해서 만화를 읽는 것은 아니라는 것!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다
'이본느는 껄떡대기 좋아하는 마을 최고의 바람둥이 데인의 약혼녀다.' 라고 이본느를 소개한다면, 이본느는 아마 식칼을 들고 뛰어올 것이다. 이본느는 자의식이 강한 농노였다. 데인은 그런 이본느의 약혼자로, 행운아였다. 그러나, 그는 그가 그렇게도 원하던, 이본느의 육체를 소유하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그의 이 여자 저 여자 가리지 않고 껄떡대기 좋아하는 도덕적인 결함때문이 아니라,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본느와 계급에 있었으므로 자존심 강한 이본느의 '순결'을 도둑질 하지 못 했던 것이다. 영주인 루트는 손쉽게 이본느와의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이본느의 저항 따위는 무의미했다. 영주가 보는 농노는 인격체가 아니었기 때문일 거다. 이본느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흉측한 얼굴에 그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떠돌이 헤센이다. 헤센 만이 이본느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해 주고 감싸줄 뿐 아니라, 그는 이본느의 도움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가.

루트는 비인간적이지도 메마르지도 않은 평범하게 외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영주의 옷을 입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한다, 하고 만다. 그는, 이본느를 처음부터 사랑한다고 믿는다. 자신은 이본느와 강간하는 것이 성관계라고 믿고 이본느의 태도에 괴로워한다. 그는 이본느를 사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본느는 그것을 강간, 성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본느는 그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그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그가 아무리 사랑의 표현을 하더라도 이본느에겐 물리적인 폭력일 뿐인 것이다. 아니, 물리적인 폭력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의 생애에 지울 수 없는 끔찍한 상처로 남는 것이다.

게다가 이본느는 루트와는 달리, 상담할 여자 친구도, 어머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여자는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던 아이를 유산으로 잃어버려도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루트는 조그만 일에도 슬픈 아이처럼 아버지이자 친구인 초능력자 샤이언에게 쪼르르 달려가거나 이성 친구에게 달려가 칭얼대고 도움을 구하기 마련이다. 그는 권력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다 가진 셈이지만, 이본느는 아무 것도, 심지어는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달래는 일이었다.

불쌍한 이본느의 생존 전략
나는 주위에서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너무 순진한 총각이 어떤 처녀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귀가 길의 그녀 뒤를 밟다가 그만, 실수로, 아기를 배게 한다. 상심한 처녀와 그 가족들은, 아기의 미래를 운운하면서, 그 처녀를 그 총각에게 떠 넘긴다. 아줌마가 된 그 처녀는 처녀적을 회고 하면서, 글쎄, 그이가 나를 졸졸 따라다녔지요,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 많이 들어본 레파토리, 아닌가? 그럼, 그 때의 상처는 다 치유된 걸까? 이제 그 총각에게 돌을 던질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인가?

다시, 이본느에게로 돌아가자, 이본느는, 그 불쌍한 이본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본느는 그 상처의 대가로 행복한 어머니가 되길 원한다. 홀어머니의 딸, 이본느는 아내라는 자리에서 어머니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영주의 아내가 된 이본느는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제, 그 장원의 어머니로서의 권력을 가지게 된 이본느, 앞의 처녀처럼 순탄한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소위, 성관계라 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간만 당한, 그래 이제는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겠다 마음 먹은 이본느는 두 번에 걸친 유산을 경험 한다. 그래 그렇다, 어머니로서의 삶으로 그 상처는 지울 수 없는 법!

이본느의 그 X같은 경험은 도대체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강간을 더 이상 강간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 강간이 아니라, 사랑으로 충만한 관계였음을 거짓 확인하게 하는 것, 그것을 합리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이본느는 그가 사랑하고 있는 헤센이 더 이상 옛날의 비천한 헤센이 아니라, 바로 루트라는 것, 오만한 권력자의 이면에는 전형적인 순정 만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아름답고 기품있는 외모와 함께 그 권력과 함께, 자신의 진실한 사랑이었으면 하고 바라던 이상적인 성격이 갖추어진, 루트와의 결합을, 그렇게 아름다운 꿈을 아무도 내팽개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 당연하지 않은가.

알고 보면 불쌍하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는가/ 인간은 고와도 죄는 밉다
이 만화는 현실 세계의 남성들이 폭력성, 권력에 의존한 성폭력,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버림받는 성폭력 피해자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지만, 그래도, 남자 만한 것이 없다고, 화해를 청하고 있다. 겨우, 한 번의 실수로 인해 그의 인생 전체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여자들은(비록 피해를 입었거나 잠재적 피해자일), 그의 모습을 잘 지켜 봐주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그 강간범의 인생을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주고,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사랑해 주라고….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도 자세히 보면 섬세한 사람이고 불쌍한 인간이며, 그의 정떨어지는 성격 뒤에는 어쩌면, 당신이 어릴 적부터 그리워하던, 끊임없이 자상하고 인간적인 그 모습이 들어있을 지도 모른다고, 그걸 못 보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거 참, 무슨 짓을 저질러도 용서 받고, 이해 받고, 친구들에게 인정 받고 승승장구하고 결국에는 가지고 싶은 여자까지 얻는 그 권력을 가진 남성, 남성의 권력 앞에 ...나는 무릎 꿇어야 하는가...적당한 행복이 있을 거라고 믿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