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뿌리깊은 열등감


            

열등감 1.
나도 잘 모르겠다. 무언가 나에겐 결핍되어있다고 느끼는데, 그게 무언지, 그것이 실존하는 것인지, 내가 노력하면 결국 그것을 얻을 수 있을지.

유려한 글을 쓰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고(나랑 같은 모국어를 쓰는데 저럴 수가..), 영화를 같이 보고 나와서 영화에 삽입된 음악이 이렇고 저렇고 하는 말을 늘어놓는 친구를 볼 때 드는 느낌이기도 하고(난 영화 볼 때 인물 구별하고 내용 따라가기에 바빠 영화음악이란 거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심층적인' 문제점에 대한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설명을 들을 때 떠올려지는 생각이기도 하다. 난 전혀 감도 잡지 못했던 무언가에 대한 해석.

소설이나 시에 대해서 '언어의 조탁이 뛰어나고 감정이 물 흐르듯 전달되며... '하는 식의 비평을 보면 나는 매우 쫀다. 음악이나 미술에 대해서 '사운드가 빵빵하고 균형감각이 뛰어나고 자체 완결적이다, 내면을 응시하는 듯한 시선, 빨아들이는 듯한 화면..'이런 식의 비평을 봐도 쫄기는 마찬가지다. 만화에 대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비평은 '이 만화의 플롯은 앞뒤가 딱딱 들어맞고 내러티브는 이렇고 이 인물은 어떤 성격이고 이 대사는 이러저러해서 비판받아야 하고 이 작가는 졸라 마초적이고...' 이런 것뿐이다.

나는 예술이란 걸 이해할 코드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다고나 할까.

다른 모든 예술형식을 접할 때도 내가 유일하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건, 마치 논설문이나 설명문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냥 내용뿐이다.

다른 이들은 사물의 내부를 꿰뚫어보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고, 또다른 이들은 저 멀리 건너다보는 천리안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어쩐지 절대음감처럼 타고나는 것이라서 나에겐 주어지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못 보는 것을 다른 이들은 보고 있고, 그것을 가지고 토론하고 비평하고 패러디하고... 종종, 다들 나를 놀려먹기 위해 자기네들도 안 보이는 걸 보이는 척 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모두들 있지도 않은 옷과 장신구에 찬탄을 보내는 바보 나라의 군중 속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의 멋진 치장이 정말로 안 보이는 진짜 바보가 되어 어리둥절 서 있는 느낌.

예를 들자면 어둠 속의 댄서를 볼 때도 그랬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점점 기분이 나빠졌고 ('말도 안 돼!'를 끊임없이 외쳤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온 후에도 점점 더 괴상한 기분이 되었고 점점 토할 것 같아졌고 점점 짜증이 끓어오르다가 결국 폭발했다. 구 사회주의권인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눈 멀어가는 어머니가 돈 한 푼 두 푼 아껴서 아들 눈만은 수술해주려고, 조금도 쉬지 않고 뼈빠지게 노동하다가, 이웃집 남자에게 수술비를 도둑맞고도 바보같이 대처하다가 얼떨결에 살인자가 되어버리고, 재판 과정에서 정말 살인자로 낙인찍히고 사형선고가 내려지는데 변론도 하지 못하고, 제도적으로 보장된 재심도 아들 눈 수술비를 변호사비로 깎아먹기 싫어서 거부하고("걔에게는 맹인 엄마같은 건 필요없어요! 걔에게 필요한 건 눈이에요!"), 결국 교수형을 당하다니.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돌에 맞아 죽는 백치 여자라니. 착하디 착한 여자가 바보같고 자기 변론도 할 줄 모르고 복수도 할 줄 몰라서 결국 슬프고 외롭게 죽어간다니. 자신의 고통을 극대화하여 자신을 구원하고 짐승만도 못한 이들까지 속죄한다니. 장난하냐? 여자를 바보로 만들면서 동시에 찬미하는 해묵은 공갈사기. 여자, 특히 어머니가 헌신적이다 못해 피학적이어서 자신의 육체를 난도질해서까지 자식에게 내어주는 이야기, 인터넷 게시판에 잊을 만 하면 누가 퍼다 나른다. 지겹지도 않냐? 뮤지컬이란 외피로 둘러싼다고 황당무계한 신파가 예술작품 되냐?

이 허접쓰레기에 단순 간결하게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기에 망설임 없이 '일생 최악의 영화 10선'에 올리는 일을 끝마치고 나서 옆을 쳐다보니, 같이 영화를 본 자는 뷰욕이 매력적이라느니, 뮤지컬 장면이 아름다웠다느니, 현실과 환상을 배치시키는 형식이 마음에 든다느니, 노래가 독특하다느니 같은 벙 뜨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내용에 분개하느라 형식미 따위에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고, 일단 영화에 공감이 되지 않자 모든 장면이 꼴불견으로 보였던 나는, 내가 못 보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감동까지 받는 그 자가 이해되지 않았고 심지어 질투와 자괴감까지 느꼈다. (이렇게 영화를 보는 시각이 달랐지만, 난 달변이 아니기 때문에 논박도 잘 하지 못했다.)

굉장히 딱딱하고 멋없는 글밖에 쓰지 못하고, 나 자신도 역시 딱딱하고 멋없는 인간이란 열등감... 난 내용이 건전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만 형식은 극도로 후진 선전용 영화에나 딱 맞는 사람인가. 아마도.

열등감 2.
어머니는 가끔 날 보고 '저렇게 고지식해서야... 쯧쯧.'하고 혀를 차신다. 친구는 '넌 끽하면 극우가 될 소지가 굉장히 많아.'라고 나를 평한다. 그런 촌평에 기분이 나빠지는 것과 별개로 내가 촌스럽고 단순하며 쿨~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은 사실.

채식을 하게 된 계기도 그렇다. 굶어죽는 사람은 수억인데, 고기 1kg을 만드는 데 곡식 10kg이 낭비된다. 고기는 곡식보다 10배의 땅, 10배의 물, 10배의 에너지를 잡아먹는다. 소, 돼지, 닭들의 자연상태와 판이하게 다른 공장식 사육장에서 괴이한 먹이들을 먹이다 보니 집단으로 병에 걸리기 쉬워지고 그걸 막기 위해 항생제와 호르몬을 무지막지하게 먹이고 그것이 농축되어 사람까지 먹게 된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육과정에서 동물학대가 심각하다. 아마존 밀림은 맥도날드 햄버거에 들어갈 쇠고기를 싸게 공급하기 위해 가장 많이 파괴된다. 여러 가지 증거로 볼 때 사람은 채식동물에 가깝다. 등등. 단순하고 촌스러운 나는 이 정도 지식만 가지고도 충분히 설득되고 감화된다. 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단순할 것을 기대한다.

그 날은 학대당하는 사육동물의 상태에 대한 책을 읽으며 이불 속에서 울먹이고 있었다. 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너도 채식해라. 응? 왜 채식에 대해 생각해보겠다고 하고선 바뀌는 게 없니?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친구는 의아했을 것이다. 또 왜? 난 별로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는걸. 나는 내 감정상태에 동화해주지 않는 친구가 비정하고 재수없는 냉혈한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너무해!! 나쁜 인간 같으니!! 다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음, 위에 쓴 대로라면 단순하다기보다는 자의적인 것이겠지만 -사실 심각하게 자의적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글의 초점은 단순함에 있다.)

이렇게 단순한 나에게 단순하지 않은 사람이 이런 저런 새로운 차원의 논점을 제기하면, 들을 때는 그럭저럭 이해가 가다가도 다시 뒤돌아서면 다 까먹고 '이렇게 명쾌한데 뭐가 문제라는 거였지?'라고 툴툴거린다. 그러면서 주눅들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정해져있는데, 그에 대한 비판은 벌써 들었으면서도, 반비판을 준비할 능력이 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개될 대화를 두려워한다. (그렇지 않아도 말빨이 딸린다.)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질투와 애증과 열등감도 슬슬 고개를 든다. 그 결과는, 다들 예상할 수 있겠지만, 소통의 단절이다.

20세기 초가 좋다.
김산과 님 웨일즈와 모택동과 에드거 스노우와 노먼 베쑨과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가 활약했던 그 시절에는 음영이 뚜렷한 흑백영화처럼 사물의 시작과 끝,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잘 갈라져 있어서 단순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몽상을 지난 역사 속에 투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어쩌면 한 사람에게 하는 푸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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