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냐?
생일이 가까워 오면 괜시리 생각나는 주제다, 뻔하지 뭐.
곧 스물 여덟이 될 것이고
내가 스물이 되기 직전의 그 생일들처럼
짜증나고 우울한 생일을 보낼 것이 분명하다, 지겹지만.
지난 밤에는 동아리 동기며 선배며 후배들을 만났다.
취직한 사람과 취직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고, 취직하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학생이었고 대기업을
지망하고 있었다. 취직한 사람들 중에 대기업 혹은 방송사/영화사 같은데 적을 두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달랑
나 하나 밖에 없었다.
다들 카드를 꺼내 들고 계산을 하느라 한 턱을 내느라 여념이 없다. 15명쯤 모여서 압구정동의 멋진
맥주집에서 양주도 두 병이나 마시고 안주도 비싼 걸로만 먹었었다.
다들 술이 거나해지자, 후배 하나가, 왜 누나는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들어가란다. 아 이거 왜 이러셔, 내겐 나의 길이 있는 것이고, 자네는 당신의 길을
걸으시라고. 했지만 역시 씁쓸한 대화다.
요즘 출근길에 학교에 걸려있는 대기업의 채용 공고며 회사 설명회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이상한 문장들이
머리 속을 휙휙 지나간다.
“그 때는 아이엠에프 때라 저런 게 없었어.”
“그 때 급하게 굴지 말걸 그랬나? 다른 애들처럼 몇 달 더 공부하면서 기다렸음 지금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사실은 내 거짓말을 알고 있다.
여자는 교수가 될 수 없으니까 안 하겠다는 것도,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망할 IMF에 전공이 안
좋은데다 여자라서 실패했다는 것도 실은 다 대충 머릿 속에서 관습에 따라 지어낸 거짓말인 거다. 정말은
그런 원망 안 한다. 대기업에 가고 싶었다면 어떻게든 ? 부모님한테 엉겨 붙어서 거지같이 굴면서
영어시험 성적이 필요하다면 점수를 따면 되는 거고 머리가 나쁘다면 될 때까지 해서 - 들어가면 되는 거다,
몇 년을 이렇게 아무런 생각없이 이렇게 보내다가 대기업간 누구들을 생각하면서 한숨짓지 않아도 되는
거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거 알고 있는데도, 자꾸 그런다.
도망가고 싶은 모양이다.
내 꼴이 한심하고 불안한데,
하고 싶은 건 모르겠고/ 용기도 없고/ 게다가 귀찮은 주제에
그러면서 욕심은 많아서,
자꾸 누군가를 탓하면서 있지도 않은 기대가 왜 누구 때문에 그렇게 일그러졌는지를 납득시키려고 한다.
대충 이런 결론… 을 내리면 좀 덜 머리가 아프겠지,
좀 기분이 덜 상하겠지,
나는 합리적이고 희망적인 ? 적어도 내겐 ? 결론을 내리는 데는 도사다.
---------------------------<그래서 결론!>------------------------------------------
20대에 내 삶의 주체가 되는 연습을 해보았으니
서른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걸 해보자.
운이 좋아 20대에 선택한 길이 쭈욱 내 평생토록 하고 싶던 일이었음
얼마나 좋았을까 같은 생각은 하지 말자.
그랬다면 그 일 분명히 싫었을 거고 짜증났을 거고 못 마땅했을 거 틀림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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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나는 편한 타입이고, 훌륭한 사자자리/B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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