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나갔다 온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 이들을 한국에 계속 있는 친구들보다 더 빈번하게 만나게
되는 이유는? 외국에 나가는 친구는 환송과 환영을 위한 모임을 특별히 만들게 되지만, 한국에 있는
친구와는 몇 년이 가도 만날 생각을 하지 않게 되어 영영 만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더 멀리 있을수록 더
자주 만나게 된다니, 거 참.
한 친구는 한국에 5주 나와 있는 동안 운전면허를 따야 한다면서, 바쁘게 배우는 중이라 한다. 돌아가면
당장 운전을 해야 할 상황이라며.
객지생활을 하는 아이들끼리 생활의 팁을 얼른얼른 주고받는다. 유학생들은 대부분 이런 차 저런 차를 사.
잘 모르는 일제 차의 이름들이 눈앞을 휙휙 달려간다. 집과 학교가 꽤 멀어서 40분씩 고속도로를 달려서
통학해. 자그마한 몸집의 친구가 널따란 고속도로에 속도를 내어 달리는 모습이 어설픈 합성사진처럼
떠오른다. 중고차가 싸긴 하지만 수리비랑 되팔 때의 가격을 따져보면 새 차를 사는 거랑 비슷하게 먹혀. 내
몸뚱아리 하나를 움직거리기 위해 그렇게 큰 기계덩어리들이 한 개씩 딸려다녀야 하다니, 중고차거나 새
차거나 알뜰하거나 헤프거나 어쨌든 씀씀이가 큰 것이 아닌가 하고 마음속으로 고개를 갸우뚱.
할 말이 없어 멍하니 있는 나에게 한 친구가 묻는다.
너는 면허 안 따?
어. 나는 운전면허 안 따는 거랑, 신용카드 안 만드는 거랑, 주식투자 안 하는 게 생활의 신조야, 하고
썰렁하게 웃어 보였다.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뱀장어 스튜)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느꼈던 건, 모든 작품에서 적어도 한 장면
이상 등장인물들이 운전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차를 몬다는 것이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눈꼽을
뗀다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고 일상적이어서 나는 어리둥절했다. 자가용을 꼭 운전하고 다녀야 할만큼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의심스러워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운전이
불편하거나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 놀랍기까지 했다. 내가 별나고 뒤틀린 생각을 하는 것일까. 다음의
아주 단순한 추론인데... 나의 소비 수준과 같은 수준으로 모든 사람이 생활하는 지구에서 나는 살고
싶을까? 나의 다음 세대들이 모두 지금의 나와 같은 수준으로 생활하는 지구에서 나는 살 수 있을까?
아니라면 나에겐 차를 가질 권리가 없는 것이지.
뭐, 나의 몽상과는 무관하게 자동차 메이커들은 중국으로 달려들고 있다.
중국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그 날렵하고 우아하고 자존심 센 사람들이 자동차 속에 들어앉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 속이 울렁거린다. 그 널따란 땅이 포장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그 수억 명의
사람들이 매연을 뿜으며 돌아다닌다는 생각을 하면 밤에 잠이 안 온다.
걱정도 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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