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영화 연애소설을 보다.

차태현과 손예진과 이은주가 차태현 잠바를 함께 들쓰고 비를 피하는 포스터가 너무 진부해서 보지 않을려다가, 불현듯 10월이 되자, 어쩐지 구제불능의 센티멘탈한 순수, 가 그리워져서, 그리고 영화관의 어둠 속에 잠시 몸을 묻고 싶어져서, 연애소설로 향함.

연애소설은 몇 개의 반전이 있는 영화이므로, 줄거리를 미리 알면 안 되는 영화. 그렇지만, 지금까지 연애소설을 안 본 사람들이야 그 인생이 뭐 어차피 영화관과 별 상관이 없거나 적어도 연애소설을 영화관에서 볼 일은 없다고 간주하고, 확 터뜨려 버리겠다. 일단, 손예진이 죽는다. 손예진과 이은주는 졸라 절친한 친구다. 차태현은 처음에 손예진에게 반해서 이들과 어울리게 되었으나, 나중엔 이은주를 사랑하게 된다. (뭐 이정도야 스포일러라고 할 수도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가장 남는 장치는 '시계'다. 차태현은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대학 2년생으로, 선배 까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어느날 카메라를 들고 뷰파인더를 점검하다가, 앵글에 잡힌 손예진에게 한눈에 반한다. 손예진과 이은주가 한구석에 앉아 뭐라뭐라 깔깔거리며-손예진은 주로 듣는 쪽이고, 재잘거리는 건 이은주. 까불이와 얌전이의 전형적 콤비-이야기하는 걸 훔쳐보고 있다가, 이들이 나가자 택시를 자전거타고 쫓아가서는 손예진에게 대쉬, 하지만 바로 거절당한다. 그러자 깜찍하게도 차태현, 어디선가 자기 얼굴만한 시계를 구해가지고 나타나서 그걸로 얼굴을 가리고, 시간을 한 시간 앞으로 돌려서 말한다. "우리가 만나기 전의 시간으로 시계를 돌려놨어. 지난 한 시간 동안의 나는 잊어줘.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우리 친구하자. 내 이름은 지환이야."

시계를 앞으로 돌리는 행위. 불가역적인 시간을 거스르고 싶다는 욕망, 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뼈저린 실감이자 반항이다. 동시에, 그처럼 시간을 자의적이고 주관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시간의 구속으로부터 친구들끼리의 약속에 의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 이야말로 젊음의 특징이다. 이 시계는 나중에 손예진의 장례식장에서 다시 한번 등장하게 되는데, 정신없이 쓰러져울던 이은주, 문득 벽에 걸린 시계를 떼어내서 주먹으로 유리를 깨어버리고 시간을 앞으로 앞으로 돌려보지만, 시계판이 피로 얼룩질 뿐, 죽은 사람이 살아오지는 않는다. 기술적으로 구획되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만을 강요하는 산업화된 사회의 근대적 시간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는, 새롭게 규정된 시간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줄 동지가 필요하다. 시간이란 것이, 결국 운동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라면, 보편적, 과학적, 기계적 시간에 대한 anti로서의 다른 시간,은 결국 기존의 것과는 다른 生의 속도와 리듬을 창출하고 확산시킴으로써 비로소 실현되기 때문이다. 차태현과 손예진을 잃어버린 이은주 혼자서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고 해도, 돌려지지 않고, 붉은 피만 흘러나올 뿐이다.

이은주가 우는 이 대목에서, 그래서 나도 울었다. 친구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라서. 이 거대하고 강력한 세계의 획일적 시간에 대해 함께 대항하고 함께 꿈꿀 수 있었던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라서. 그러나 그런 친구를 가질 수 있었던 이은주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 기억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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