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마음은 벌써 11월이야.
"11월엔 검고 큰 새가 되어 히말라야로."라고 브레히트가 그랬는데.
그걸 읽은 다음부터 11월만 되면
난 내가 히말라야로 날아가고 있는 시조새 같아.


불현듯 아무때나 생각난듯 위로하듯
흥얼흥얼 노래불러주는 친구가 있어.
가끔 벙어리같을 때, 아무리 말하고 아무리 쳐다봐도 소용없을 때,
그렇지만 모른척 뒤돌아 걸어가버릴 수는 없을 때.
그 친구 노래를 듣고 있으면
세상 모든 게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처럼
느껴진다구.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희망의 여운을 주고 끝나는
성장영화의 마지막 씬 속에 혼자가 아니라 둘이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구.
꽤 근사하지.


내 방 책상 위에 화분이 죽어간다.
난 이렇게 멀쩡한데.
내 스웨터도 멀쩡하고
나의 책들도 멀쩡하고
나의 방바닥도 멀쩡하고
나의 귓바퀴도 멀쩡하고
나의 하루가 참 멀쩡해.


길을 가다가 내가 아는 사람들을 닮은 사람을 봐.
활성이 오빠를 닮은 사람.
나영이 언니를 닮은 사람.
지순이 오빠를 닮은 사람.
이헌준을 닮은 사람.
수영이를 닮은 사람.
권대성군을 닮은 사람.
진아언니를 닮은 사람.
고빈다 님을 닮은 사람.
딸기를 닮은 사람.
지석이를 닮은 사람.
연숙이를 닮은 사람.
효민이를 닮은 사람.
진우를 닮은 사람.
아빠를 닮은 사람.
외할머니를 닮은 사람.
사람은 자기가 아는 얼굴을, 자기가 가진 기억을, 찾으려고 하나봐.
내 친구들도 길에서 나를 닮은 얼굴을 만날까 가끔씩.


오늘 학교 셔틀 속에서 그런 문장이 떠올랐어.
"싸우지 않으면 적도 없다."
예전에 내 머릿 속을 지배한 문장은
"어디에도 적은 없는데 고통은 도처에 널려있다." 였는데.
좀 달라졌지.
그러니까, 당신의 취향이란 거, 당신의 존재라는 거,
결국 만들어졌다는 걸 깨달으시라.
당신의 배꼽에 이 세계의 게임의 규칙으로 이어지는 탯줄이 걸려있다.
어쩔거야. 당신은 어쩔거야.
사람들은 등산을 하고, 요가를 하고, 수영을 하고, 헬쓰를 하고, 검도를 하고.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를 읽고 헬렌 니어링을 읽고 닉 탓 산(맞나? 탁 닛 산?)을 읽고.
꿈을 꾸나?
당신은 무슨 꿈들을 꾸고 있나.
꿈많은 것도, 꿈없는 것도, 잘못되었다고 할! 질타하던 사람이 있었지.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
요컨대 꿈이 갱신되어야 하지.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남으로써 영원히 늙지 않기.
꿈을 이루거나 꿈이 깨어지거나 간에
다시 꿈꿀 수 있는 사람만이 위대함에 가까이 가는 거야.


11월엔 검고 큰 새가 되어 히말라야로.
태양을 삼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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