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실연가     
  • 신딸기

    도대체가 변기를 지저분~하게 해노코 사는 사람들은 이해가 안 간다카이.
    맨날 할 필요도 없고 한번씩 이래 물만 부조도 깨끗한 거를.

    매일매일 변기와 욕실을 청소하는 고향집 엄마.
    어쩌면 이 사람 눈에 띌 때마다 변기를 청소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허드렛물만 생기면 변기에 쏟아부으며 닦아댄다. 변기가 더럽지도 않은걸까?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린 나는 내 허벅지며 엉덩이에 물이 묻는 게 싫었다.
    조심한다고 조심해도 튀는 게 물이고, 튀었다하면 항상 변기 위다.
    그것만으로도 골치아픈데 엄마는 열두번도 더 변기를 적신다.
    게다가 그건 허드렛물.
    변기 커버 위의 물은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그게 어떤 물인지도 모르고, 그게 물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샤워기가 달린 호스를 끌어다 변기를 닦고, 다시 그 위를 마른 화장지를 둘둘둘 뜯어내서 닦아야만 성에 차던 그 시절 나는, 매일같이 욕실청소를 해대던 엄마도 싫었고, 그렇게도 조준을 못 하나 싶은 남동생도 맘에 안 들었다.

    하루에 열두번도 더 쓸고 닦고 물을 퍼부어대던 엄마가 왜 그렇게 싫었던 걸까. 그럴 시간 있으면, 책이라도 읽지. 그럴 시간 있으면, 차라리 운동이라도 하지. 엄마는 미련했다.

    분명 남들과는 다른 기준이긴 하겠지만, 사람들에겐 일정정도 자기만의 질서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것이 나에게도 존재했는데, 엄마는 그걸 무시했다. 내가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바로 그거였을지도 모른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내 질서에 대해, 내 책상, 내 책꽂이, 모든 "내"가 붙어 있는 사물과 일들의 질서에 대해 엄마는 못마땅해했다. 그렇게 나와 핏대를 세워가며 토론할 시간이 있다면, 엄마, 제발 차라리 잠이라도 한 숨 주무세요. 나는 항상 이 말이 하고 싶었다.

    환풍 시설이 갖춰진 욕실, 타일에 검은 곰팡이가 끼지 않는 아파트의 욕실. 내가 자란 곳 그리고 우리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지방의 어느 도시에 있는 한 아파트. 나는 내 질서를 몰라주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서울에 와서 살고 있다. 밖에서 들여다 볼 지도 모르는 작은 창을 열지 않으면 금새 눅눅해지는 욕실이 딸린 방에서, 그래도 추운 겨울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언젠가부터 내 꿈은 베란다와 욕조가 있는 집에서 사는 것. 그러나 아쉽게도 서울을 떠날 생각은 없다. 내 꿈은 언제 이루어질까?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건가?(내 라이프스타일로는)

    언젠가, 욕실 타일 사이사이를 까맣게 메우던 검은 공팡이를 보게 되었을 때, 나는, 참 내 마음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 도시의 모든 것이 싫고 역겨워서 떠나온 곳이 바로 여기다. 누구들처럼 무슨 인생의 광영을 누려보겠다고 서울로 온 것이 아니었다. 잘 몰랐고 거기서 가장 쉽게 떠나올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그러나 여기가 한 번 온 이상, 훌륭한 인격이나 변명이 없는 한, 절대 떠날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알았다면 아마도 발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에 온 나는 매우 바빴다.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야했기 때문에 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가장 나중에 했다. 그 때 내게 덜 중요했던 것은 나였고 더 중요했던 것은 대의명분이었다. 도대체 대학을 다니러 온 내가 무슨 거창한 일을 했는지 의심스럽겠지, 뭐, 사실 소위 객관적이라는 자로 재었을 때 그다지 중요한 일은 한 기억은 내게도 없다. 단지, 내가 밖에서 하는 모든 것은 세상을 위해서 나 외의 모든 사람에게 아주 소중한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도움이 되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주로 했던 일을 나열하면 이렇다. 공부, 학습 (공부와 학습이 어떻게 다른 지는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한다), 출석(이것도 나에게는 일이었다 -_-;;), 연애, 아르바이트, 사교생활(술자리라고도 한다). 다들 비슷비슷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겐 큰 일들이었고 한 가지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 일주일은 턱도 없이 모자란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렇게 2년인가 3년인가가 지나갔고, 잠시 나를 둘러볼 시간이 생겼나 싶더니 곧장 졸업이니 미래니 인생 설계니 이런 단어들에 휩싸이면서 또 2년인가 3년인가가 지나갔다. 그러다가 나를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게 욕실에서다.

    그게 은근한 노란 조명 아래의 욕실 거울 앞에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사를 간 곳은 다른 집들 보다 욕실 조명이 조금 더 밝은 집이었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한 그 "언젠가"가 바로 이 날인데, 내 인생에서 정말 제대로 비참해진 날이었다. 욕실 조명이 다른 집 보다 조금 밝은 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데서 다시 시작하겠다. 그러니까, 처음엔 그런 것이 마냥 좋기만 했다. 그 땐 학교를 막 졸업하고 막 들어간 재수없는 회사를 때려치고 다른 회사에 들어가게 되어 바쁜 생활을 시작하던 시절이라, 가치있는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던 때였다. 아아.. 그러니까, 정말 말하기가 힘들지만, 그 일은 나름대로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던 내 자존심이라는 게 도대체 어느 흙 속에 파묻히고 만 건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부끄럽게 만든 일이었는데... 아..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미안하다, 벌써 세번째인데...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 은근히 환하고 밝고 피부 잡티 하나 안 보이게 하는 멋진 조명 아래서, 내 얼굴을 보고 기뻐하려고 거울 쪽으로 돌아섰다. 눈치챘겠지만 내가 꽤 공주적인 풍모를 가지고 있다는 게 주위의 평이다... 거짓말이지만.(만화 "극락사과군" 참조, -_-;;) 거울 속에 비친 환상적인 내 모습을 보기 위해 샤라락, 도는 순간, 이상한 냄새가 났다. 이사 온 지 한 달 정도 지난 후였다. 그리고 아직 콘택트렌즈를 빼지 않은 내 눈에 이상한 것들이 보였다. 타일 사이에 낀 갈색의 때들. 그저 끼어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타일에 덕지덕지 붙어서 천장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모습까지. 그리고 그 퀴퀴한 냄새. 거울 속에 비친 일그러진 내 얼굴. 처음 마주하게 되는 못생긴 내 얼굴. 나는 누구였을까? 누구길래,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가. 화가 나서 울었다. 처음에는 처음 본 그 곰팡이들이 기가 차서, 다음엔 통풍도 안 되는 반지하 원룸에 살게된 내가 불쌍해서, 그리고 그 다음엔 변변치 못한 월급에 변변치 못한 회사를 다니면서 강남 쪽으로 이사를 오겠다고 우긴 내가 불쌍하고 못 미더워서, 그러고나자 내게 있던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불쌍하고 없어보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여기까지 떠나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가. 엄마의 레파토리 그대로 내게 질문을 던진다. 혼자서 훌쩍훌쩍 울다보니 좀 쑥스러웠지만, 쑥스럽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오만방자한 자존심이 나를 덥친다. 내가 울고 싶어서 우는데 뭐가 어때. 엉엉 울었다. 도대체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어디일까? 누가 나를 여기까지 밀어왔을까?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이러려고 서울에 온 게 아닌데. 물론 한심한 질문에 한심한 푸념들이었다.

    엉엉 울다가 손이 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부엌에서 쓰는 가장 "쎄" 보이는 수세미를 가져와서 빨래비누를 묻혔다. 그리고는 손목이 떨어져 나가라 욕실 벽을 닦았다, 바닥을 닦아냈다. 눈물이 콧물이 되어 흐르고 그 일을 하는 동안 수십번 재채기를 하고 코를 풀었다. 몸은 피곤한데 잠은 안 왔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믿고 여기까지 왔을까? 물론 나라는 건 안 가르쳐줘도 안다. 그러니까, 내가 믿은 그 "나"라는 것이 언제적 나인 것이냐, 혹은 정말로 나라는 걸 내가 어떻게 확인한 거냐? 물론 아무런 증거도 없고 아무런 노력도 없었다. 그저 언젠가부터 그토록 믿고 있었던 나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한 번도 나에게 관심이 없던 나였다. 물론 예쁜 옷과 예쁜 구두로 치장하기를 좋아하고 어떤 말을 하면 얕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쉽게 구분될 수 있는 나에 대한 관심일 뿐이었다. 내가 벌이는 일들, 내가 하는 생각들, 내가 주장하는 것들, 누군가에게 비난받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무장하고는 있었지만, 정작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나는 어디론가 쓰윽, 마치 존재한 적도 없던 것처럼 빠져나가버리고만 것이었다.

    일기라도 계속 썼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일기를 쓰는 대신 욕실 청소를 하기로 했다. 손은 밤낮으로 너절한 일들을 기록하는데만 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욕실 청소를 자주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엄마처럼 그렇게 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있으면 잠이나 한숨 더 자겠다). 어쨌든 타일 사이의 검은 곰팡이를 칫솔로 닦아내면서 이렇게 저렇게 머물다간 내가 벌인 일들의 찌꺼기를 닦아낸다. 손은 곰팡이를 닦는 칫솔을 움직이고, 욕실청소는 내 마음을 닦는 칫솔을 움직인다. 결코 깨끗한 방을 가지지도 않았고, 결코 깨끗한 마음을 가지지도 않았지만, 게다가 무슨 수행이나 수도같은 걸 해보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정말로 욕실 청소가 좋다.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생각날때마다 한 번쯤 해주는 것인데다가 정리하고는 결코 거리가 먼, 단지 타일과 바닥의 곰팡이 닦아내고 변기에 묻은 때들을 닦아내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정말로 욕실 청소가 좋다. 그저 어디론가 배설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하는 시인들을 생각한다. 내가 사랑했던 그 시인들, 나는 이제 욕실 청소를 사랑한다. 변기를 닦기를 사랑한다. 몇 번을 눌러 내려도 잘 내려가지 않는 것들, 몇 번을 잊으려해도 이해하려해도 지워버리려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그것들, 이제는 앙금처럼 물 속에 가라앉혀두지 않으려고 한다. 문득문득 확인하고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기행을 벌이지는 않으려고. 물론 완전보장은 안 되지만, 덜 그러려고 한다. 이젠 나를 책임져야할 나이고, 누구보다 나를 알고 있어야할 나이니까.

    이제 변기 커버 위의 물은 짜증의 대상이 아니다. 실수로 엉덩이가 젖더라도 그게 어떤 물인지, 누가 무얼 위해 그렇게 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잘 모르는 것, 혹은 조금 아는 것으로부터 나올 뿐이다. 누군가 자기집 변기에도 닿는 게 싫다면 그건 자기가 그것에 대해서 아는 게 적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면, 정말로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게 적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서 하는 실제적인 노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똥을 누는 내가 밥을 해본 적이 없고 이불을 빨아본 적이 없고 변기를 닦아본 적이 없다면 정말 쓸쓸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다.( 썰렁한 이야기지만,그러니까 엄마 말대로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애들인 거다). 설거지 한 그릇처럼 되돌아서면 다시 더럽혀질 것들, 금방 쓸모없게 될 일들, 하지만 누군가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 설거지가 하찮게 여겨지고 청소가 우습게 보이는 건 금방금방 돌아오는 시작과 끝의 싸이클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것들이 세상의 수많은 가치있는 일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해본 사람만이 얻게 되는 지혜일 거다. 반복되는 단순 노동이 가져다주는 그 아름다운 고뇌와 반성의 시간도.

    주의) 너무 자주 반성하다보면 우울증의 늪에 빠질 지도 모른다, 특히 엄마나 결혼한 친구들에게 주의시키길 바란다. 무엇이든 적당한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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