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 길" 찾기-ing     
  • 차차


    TV를 보면서 듣는다. 압력밥솥이 칙칙거리는 소리, 설거지물이 떠내려가는 소리, 쓰레기 비닐 봉지의 부시럭 소리…… TV소리랑 섞여서 짜증은 나는데 또 미안하니까 짜증을 낼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엄마 이제 좀 나랑 tv나 봐요" 하며 돌아보면, 엄마는 어느새 김치를 담그려고 사다놓은 무를 한참 벌려놓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미안해서 거북하고, 한편으론 내 소중한 휴식을 방해받는 게 싫어서 나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혼자 살면 절대로 집안 일에 "목숨 걸지" 말아야지 한다. 대충 해도 되는 걸 엄마가 왜 그렇게 부지런하게 하는 건지 늘 불만이다.

    자취방
    소원대로 작은 자취방을 얻어 살게 되었을 때, 나는 얼마나 좋았던지.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거니까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대로 "집안일"은 최소로 하기로 했다. 쓰레기는 일단 뒀다가 치우고 싶을 때 치우는 게 그만이요, 청소는 내가 더럽다 느낄 때 하면 된다, 먹는 데 공들이지 않고 사먹거나 간단하게 해결하자 등등.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내 지저분한 방을, 쌓여있는 쓰레기더미를 보아 넘길 수가 없었다.
    나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한 나의 생활방식을 온전히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을 그 때,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집
    엄마의 집.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고 익숙해진 엄마가 관리하는 집의 존재.
    기숙사 한번 살아보지 못한 나에게 그 집은 내가 경험한 유일한 "집"이며,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보낸 공간이다. 내 생활의 중심은 집이 아닌 학교나 회사라 생각해온 날이 더 많았지만, 나는 집에 돌아가기를 열망하기도, 집을 뛰쳐나오기를 열망하기도 할 만큼 그것은 오랫동안 나를 감아온 끈이다. 나는 오랫동안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고 또 아직까지는 거기에 돌아갈 수 있었다.
    주말에 오라는 엄마의 성화에 집에 갔다 돌아오면, 내 자취방이 한없이 참을 수 없어져버렸다. 나의 자취방에만 한참 있다보면 더럽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지만, 엄마의 집에 갔다 돌아온 날은 날아다니는 먼지가 하나 하나 느껴지고 갑자기 목이 아파 오는 것 같아서, 그 날은 걸레를 들고 묵은 청소를 하곤 했다. 그러면서 잘 차려진 찌개와 나물을 먹고, 깨끗하게 준비된 이불보에서 잠자는 달콤함을 그리워하는 나를 발견했다.
    누군가는 일하고 누군가는 서비스를 받는 일상이 자연스럽게 된 나, 더러워도 된다면서 막상 더러워져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걸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살 길" 찾기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얘기는 참 편리한 얘기다. 방청소하라는 엄마말에, "난 좀 어지럽혀진 방이 좋아"하면서 피했지만 언제나 방은 깨끗해졌다. 실제론 물을 마실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게 아니라 목말라 할 것을 걱정하는, 걱정하도록 책임지어져있고, 안 그러면 제일 먼저 비난받을 사람이 우물을 판다. "뭘 그렇게 목숨걸고 '집안일'을 하냐"던 나의 비난은, 사실 책임자가 아닌 나의 핑계이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피해 가는 동안 책임을 진 누군가가 내 방 청결도의 적정수준을 유지하고 밥을 차렸다.
    이런 걸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살림을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살림이 나에겐 너무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가부장적인 우리집에서 살림의 1번 타자 엄마를 돕는 건 2번 타자 "다 큰" 딸래미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엄마 집에서 살 때의 나에게도 살림의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건 스트레스였다. 게다가 혼자서 하는 살림도 나에겐 여전히 스트레스였다. 나에겐 할 일이 많은데, 이걸 하고 있어선 안 되는데,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머릿속이 복잡한데, 걸레질할 시간, 설거지할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니 언제나 일하느라 받는 스트레스와 걸레질한 방이 서로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지,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와 어느 정도의 청결도가 교환할만한 건지 그런 것을 끊임없이 재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살림이 신기술 개발보다도, 사장님 만나는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서 기대치는 또 되게 높아가지고 더럽다고, 반찬없다고, 이게 뭐냐고 투덜댄다. 나는 이런 것이 살림이 스트레스가 되는 하나의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내게도 있었던 것이다. 내 속에는 그런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서 살림이 하찮은 일이라고 계속 밀어버리고, 또 한편으로는 완벽한 집안일에 쫓기는 엄마의 목소리도 있어서 올림픽 표어처럼 "보다 깨끗이, 보다 잘" 하라고 재촉했다.
    엄마 집에 있을 수 있는 건 아마도 몇 년 남지 않았다. 내가 내 스스로 살 수 있으려면 돈문제도 문제지만, 어서 빨리 "살 길", 살아갈 방식을 찾아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여러 목소리들 속에서 머리굴리고 있는 나는 아직도 고민 중일뿐이지만, 살림은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라는 것만은 잊지 않으려한다. 계속해서 더 잘해야 한다고 지쳐버리는 그런 게 아니라, 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것, 나를, 내 주위를 살리는 그런 "살 길"이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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