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살다     
  • 별족

    #1. 눈덮힌 설악산에 가고 싶다.
    그건, 연초에 작정한 '올해 내가 할 일' 목록에 들어 있었다.
    더 이상은 지쳐서 안 되겠다고 연 초에 마음 속에 들어온 결심은 날씨나 계절이나 개인적 감상에 따라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단단해지기도 물렁해지기도 하다가, 1월도 지난 어느 날-양력으로 치자면 한 해 계획 따위로는 이미 소용없어진- 입 밖으로 나와 실행되었다.
    무언가 슬로모션으로 진행될지도 모른다고 약속한 시간과 네시간 여유를 두고 끊은 하행 버스는 느끼던 것과 달리 아주 짧았던 물리적 시간 때문에 교환되었다.
    십 분 걸렸다, 3년 7개월의 연애를 끝내는데.
    난 같은 목적지의 하행버스 대신 양양행으로 바꾸었다. 추운 날, 산에 가고 싶었다.
    오늘 내가 죽더라도 너랑은 상관없어, 라고 입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난 붐비는 버스 터미널에 서 있었다.
    늦게 도착한 양양에서 푸짐한 한정식을 먹으면서도 난 몰랐다. 택시를 타고 오색에 닿았을 때도, 산 밑 여관에서 새벽에 깨어 나왔을 때도, 큰 눈으로 통제된 산을 그냥 등지고 돌아서면서도 난 몰랐다. 아주 오래 지나고 나서야, 눈 덮힌 설악산을 가고 싶어한 게 누구였는지 기억해냈다. 가고싶다,같이 가자, 고 말했던 사람은 그날 낮 내가 막 헤어진 사람이었다.

    이제, 연애는 안 할 것이다.


    #2. 살다.
    매일매일이 아주 단조롭다. 3년 주기로 학교를 바꾸는 학제는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오전 세시간과 퇴근시간을 기다리는 오후 다섯시간, 주말을 기다리는 일주일과 간헐적인 명절연휴를 기다리는 일년, 이렇게 벌써 삼년이다. 단조로운 와중에도 오랜 연애는 끝났고, 도시락팀은 해체되었고, 동거인 언니는 결혼날짜를 잡았고, 결혼후에도 지금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했다.


    #3. 한 밤에 전화하다.
    동거인 언니는 지금 살던 집을 신혼집으로 배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된대''안 된대'를 왔다갔다 하다가는 결혼식을 일주일쯤 앞두고 내가 나가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어차피 사택, 이사는 해야 했고, 도시락팀 해체 후 같이 점심먹는 사람과는 마음이 잘 맞는다.
    거의 매일 점심을 먹고, 하루 걸러는 저녁까지도 같이 먹는 사람에게 '나 이사할 건데 같이 살래요?'하고 물어보기로 결심한다.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는데 '사귈래요' 묻기도 우습고, 결정적으로 '다시는' 연애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언니가 '이 집을 배정받기로 했다'고 말한 그날, 새벽에 깨어 전화해버렸다. 당황한 대답에 나도 당황하여서는 '좋아한 거 아니었어요?' 라고 바보같이 물었다.
    다음 날 저녁시간까지 기다려 들은 첫마디는 '언제 헤어졌어?'였다.


    #4. 결혼식은 바보같다.
    내가 싫어한 것은 '결혼식'이다. 축하해주러 오신 손님에게 감사인사도 건네지 못하는 신부는 말이 '주인공'이지 신랑의 손에 건네지는 인형같다.


    #5. 짐을 풀다
    이삿짐을 풀었다. 우리가 같이 살기로 했음을 알렸을 때, 누군가 말했다.
    "음, 그래? 음, 노선(?)도 비슷하니 잘 살 거야."
    나도 그러리라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책들을 정리하면서 깜짝 놀란다. 한 권도 겹치지 않는다. 이건 상대방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마주보고 한 마디씩한다.
    "어떻게 읽고 싶은 책도 없냐?"
    도대체, 왜 비슷해 보인 걸까?


    #6. 누가 할 것인가.
    '별로 싸울 일도 아닌데, 싸우는구나.'
    웃으면서 그 사이를 모면하고 나서도, 앙금처럼 남는 게 있어서 나쁘다.
    별것도 아니었다, 사실.
    각자의 저녁약속이 있는 퇴근길. 도시락가방을 누가 들고 가느냐가 주제였으니까. -자가용으로 함께 퇴근하는 어느 저녁도 골칫거리가 된적 없는 문제다.- 그런데, 생각은 자꾸 튀어 멈출 수가 없다.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였다면, 가방은 누가 들고 가도 마찬가지가 된다. 회식자리 내내 잘 챙겨두었다가, 어떤 방법으로든 들고 가면 되는 거니까.
    '너도 싫고 나도 싫다면, 두고 가자'는 말에 '그럼 그러자'고 대답한 다음 순간 내 안에 격렬한 것은, '어어, 가져가야 하는데'였다.
    내일 점심도시락도 싸야 하고, 깨끗이 씻어두어야 하고.

    일이 있다. 하기 싫은 일,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먼저 자각한 사람이 하게 될 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하지 않는가''어쩜 그럴 수가 있는가'라는 말은 자질구레한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언쟁이 지나고 나면, 내가 참 나쁜 여자인가 싶어져서 또 끔찍하다.
    이런 언쟁의 구도에서 항상 나는 요구하는 자이고, 상대는 요구받는 자이다. 그 구도 자체가 참 참기 어렵다. 이런 구도에서 요구받는 사람의 '그래 그렇게 하자'는 간결한 결론조차 기쁠 수가 없다. 왜, 상대는 저렇게 여유만만에 너그럽기까지 한데, 나는 안달복달하는 것인가,때문에 치미는 불쾌함이 장난아니다.
    늘 내가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7. 기분이 나쁘지 않다.
    - 일 자체보다 일을 나누는 것이 훨씬 어렵다.
    나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혼자 있게 되어서, 이것 저것 해먹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또 청소를 한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언니랑 살 때, 주말에 혼자 있게 되면, 난 청소를 하고, 점심을 먹고 때로는 도시락을 싸서 산에 갔다. 그 때는 심지어, 냄비 가득 끓인 죽을 먹으러 오라고 부르고 싶은 적도 있었다.
    내가 설거지를 하면서, 요리를 하면서, 청소를 하면서, 빨래를 하면서, 기분이 상한 것은 '살림'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등 뒤에 있는 사람때문이었다.
    난 심지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이 수고로움이 '더 사랑함' 즉, '더 권력없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그런 오해를 불러오지는 않을까, 하는.
    아니, 그러다가 현상-집중적으로 편중된 가사노동-이 실제-권력관계-를 왜곡시킬까 또 걱정한다.
    어딘가 길을 나서면서 '이 사람 밥은 잘 먹고 있나, 옷은 빨아서 입고 있나, 청소는 좀 하나'하고 걱정하고 있다면, 사실 또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나의 독립됨을 상대의 독립됨을 그리고 우리의 평등한 함께 삶을.


    좋은 일을 좋은 기분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
    난 살림을 잘 나누어 맡을 수 있다,
    난 잘 할 수 있다,
    고 중얼거린다.

    난 행복하게 '함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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