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의 지혜 -내가 만드는 살림 사전     
  • 이난다

    1. 가난

    가난함에 대항하는 내 무기는 '솔직함'이다. 우리 집은 가난하지 않았는데도, 어렸을 때는 부자가 아닌 것이 부끄러웠다. 부자 친구들과 놀아야 할 때, 나는 '없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표현했다. 부자가 아닌 것은 나의 '잘못'이었다. 아직도 나는 친구들을 집에 놀러오지 못하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꿈을 꾼다. 나는 지금 가난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돈이 없다'는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힌다. 그 때마다 나는 '돈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렸을 때부터 가난했던 내 마음이 조금씩 치료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밥을 사달라고 처음으로 친구에게 부탁해야 했을 때는 굉장히 힘들었다.
    돈이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돈이 정말로 없을 때는 그런 말이 잘 안 나온다.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거절당하면 어쩔 것인가? 차라리 처음부터 할 일이 있어서 먼저 집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이 백 번 낫지 않을까? 구걸은 영혼에 좋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믿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나를 부디 먹여달라고 타인에게 내 양식을 의탁했을 때, 그 사람이 말없이도 내 사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을 때, 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호의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느꼈을 때, 그걸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때, 내 마음이 작고 부끄럽고 초라해졌을 때. (0920)

    2. 귤

    가을의 축복은 귤이라고 생각한다. 귤은, 무엇보다도 싸고, 맛있고, 무진장한 비타민 C의 보고(寶庫)이며, 씻거나 칼로 껍질을 벗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장점이다. 자취생을 위한 최상의 디자인! 가을이 왔는데도, 가을답지 않게 하늘이 뿌연 날들이 이어지더니, 하루 종일 집에 있기로 한 오늘은,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와 다르게, 잘 다려놓은 와이셔츠처럼 햇살이 산뜻했다. 나는, 빈 배낭을 메고 시장에 가서, 귤 20개를 2000원에 사고, 사과 5개를 1500원에 사고(사과 아저씨는 나쁘다, 20개도 넘게 묶어 5천원에 파는 주먹만한 사과들을, 1500원에 6개를 팔 수 없다고 끝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과는, 내가 자기 전에 꿈꾸던 '홍옥'의 맛이어서 기뻤다, 나는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부사'가 사과 시장을 주도하게 된 것을 개탄하는 편이다, 사과는 뭐니뭐니해도 '홍옥'이다!), 쌀 4kg을 9000원에 사고, 참치캔 2개를 2000원에 사서는, 지고 안고 집에 돌아왔다. 내 육체와 영혼의 탄수화물과 비타민과 섬유질과 단백질들을 사가지고 돌아올 때는 뭔가 굉장한 일을 해냈다는 기분으로 으쓱해진다. (1101)

    3. 냄새

    마늘을 다지다가 깨달았다. 엄마한테서 자주 희미한 냄새가 나서, 나는 그게 엄마 냄새라고 생각했었는데, 나한테서도 이제 엄마 냄새가 나는구나. 끼니마다 마늘과 양파와 파를 썰면서, 나도 엄마 냄새를 가지게 되었구나. (1003)

    4. 눈물

    우울한 날이 계속 되다가, 무슨 영화를 보고 엉엉 울어버린 이후로, 날마다 조금씩 운다. 요사이 내 마음은, 내가 사는 집의 오래 된 수도와 같아서 어디선가 조금씩 샌다. 틀림없이 배관이 잘못된 모양으로 뭔가 썩어가는 나쁜 냄새도 올라온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혼자 살기 때문에, 눈물을 감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마음껏 슬픔에 젖을 수 없다. 쓸데없이 엄마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서 없는 힘까지 다 동원해 미소를 짓는 것은 사람을 완전히 지치게 한다. 내가 우울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제일 먼저 다치게 하는 것은 정말 싫은 일이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자기 컨트롤 부족의 증거라고 여긴 적이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 통제란, 슬퍼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슬퍼하되,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지형도에서 자기 감정을 적절한 범위 안에 제한시킬 수 있는 능력인 것이 아닐까.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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