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침묵으로부터의 탈출

차차

* 2000년 12월,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이하 '100인위')"가 성폭 력 가해자 16명의 명단을 "참세상" 게시판을 통해 발표하였고, 추가 사례 접수에 따라 명단이 더 공개되었다.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었을 때 자주 제기되는 가해자 동정론, 피해자 책임론, 음모 론, 조직보위론 등이 이번에도 예외없이 참세상 게시판에서 등장하는 한편, 많은 여성 들은 자신의 경험을 올리고 공유하면서 성폭력적 현실의 문제를 깊이있게 제기하기도 했다. 100인위는 공개된 두 사건과 관련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되었으나, 이미 한 건에 관해서는 불기소로 그 공익성을 인정받았다.
달딸은 100인위를 지지하기 위한 작은 활동을 했으며, (이건 자랑인데) 100인위 회원 이 달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번 기획이 너무나 늦어진 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 다. 달딸이 게으른 것도 있고 디자인을 맡은 친구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날아간 불운 한 일도 있었지만, 100인위 활동의 큰 의미는 우리에게 쉽지 않은 주제였음을 고백해 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이 일은 오랫동안 이야기의 출발지로, 확장점으로 기억되고 또 다시 고민되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

"어떻게 적들에게 도움만 될 수 있는 그런 일을 공개할 수 있나..(조용히 해라)"
"구조적 문제니 다 같이 성찰하(고 넘어가)자."
문제를 제기하는 그녀들을 막아섰던 말들은 솜으로 입을 막지만 않았지, 침묵의 강요 였다. 남자들과 공유하는 적(예를 들면, 공권력 같은)에 의한 성폭력에는 쉽게 동의하 며 욕도 기가 막히게 잘 했던 동료가, 그들에게 "정치적"일 수 없는 종류의 성폭력은 조용히, 개별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로 침묵시켰다. 오랫동안 그녀들은 가해자와 같 은 공간에서 참고 지내거나, 활동을 그만두거나 하는 양자택일 밖에 할 수 없었다. 피 해자 혹은 잠재적 피해자들의 모임인 100인위는 이러한 상황에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명단을 공개했다.
성폭력에 대한 논란 속에서 어떤 이는 묻는다. 동의하는 줄 알았다, 독심술사라도 되 라는 거냐고. 나는 묻고 싶다. 어떻게 동의한다고 확신할 수 있었나. 상사의 눈짓 하 나에는 밤을 새고 고민하면서 잘 보일 행동을 궁리를 했을 당신이, 여성의 그 수많은 말, 몸짓, 표정 등의 표현들을 어떻게 안 본 척, 안 들은 척 할 수 있었는지를. 자신 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조차 고민할 수 없는, 고민할 의도가 없는 사람 들과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까. 왜 여성의 욕망은 미리 재단될 수 있는 거라 생각되 고 있나.
성폭력이 일어나는 그 상황에서도, 그 후에 성폭력 사건을 알리려 할 때도 똑같이, 여성들의 말은 구름처럼 날아가 버리곤 한다. 여성의 말은 그렇게도 무게가 없어져버 린다. 말을 해도 들어지지 않고, 들을 의도가 없는 이에게는 말할 수 없다.
100인위는 이런 침묵의 고리를 깨고 나왔다. 그래서 우리가 이번 명단 공개에 빚진 것은 너무나도 많다. 그녀들이 말하기 시작함으로써, 중요한 문제들이 폭발해 나올 수 있었다. 진보진영 내 성폭력과 성의식에 대한 문제제기, 여성활동가들의 위치, 피해 자 중심주의의 원칙, 사건해결의 원칙, 일상의 문화와 성폭력의 현실 등.
침묵 속에 갇혀왔던 이 경험들은 나에겐 내 삶과 스스로의 경험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나와 달딸 친구들은 100인위의 공개된 사건들을 보면서, 어떤 사건들 이 자신의 경험과 너무도 유사한 것에 놀랐고, 우리가 보아온 꽤 많은 사람들(성폭력 가해자라 공개적으로 말해진 바 없는 이들)과 너무도 비슷한 것에 놀랐다.
성폭력을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로 생각한다면, 변태들이나 일으키는 사건이라고 쉽게 강간범을 욕해왔다면, "미친놈이 아닌,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동료가 어떻게 가 해자가 되었나"하는 질문은 세기의 미스터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수년간 여성주의자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성폭력"이라는 모토를 써왔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 이 "정말 그 애가 그랬다니 믿을 수 없어라" 라고 말하고 있다. 성폭력은 일상에 너무 나 깊이 들어와 있음에도, 많은 부분이 덮여져 있었다.
이번 사례들을 보면서 나는 나의 경험 하나 하나를 재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확실하게 성폭력이라 머릿속에 기록해 둔 밤길에서의 경험들말고도, 나에게도 다 양한 공동체에서의 성폭력 경험들이 있었고, 나도 성폭력 상황 속에서 피해자이기도, 방관자이기도 했던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어떤 때 왜 불편했는지도 조금 씩 더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
고립되어있던 여성 활동가가 다른 단체의 여성 활동가, 여성주의자들과 만나면서 여 성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특히 감동했던 차차는, 100인위를 통해 우리들이 만나고 자신의 역사를 다시 써볼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한숨 소리 속에 숨은 역사들을 다시 쓰면서, 우리 다시 유쾌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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