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폭력 '사이?'

오늘(영페미니스트 출판기획집단 '달과 입술' 편집위원)

법체제는 강간 안에서 성교를 보는 반면, 희생자들은 성교 안에서 강간을 본다.
-캐서린 매키논, '강간 : 강요와 동의에 대하여'


내가 '성교 안에서 강간을 보게 된'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검열이 내 경험의 고백을 가로막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여성주의자란 어느 한 순간의 깨달음을 통해 득도의 경지에 이르는 도인이라기보다, 순간 순간 부딪히는 세상과의 싸움, 내면의 싸움을 다른 여성들과 나누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인간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 자신이 느끼는 성적인 욕망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 것. 상대방에게나 공개적 으로나. 나는 스스로를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던 즈음에, 이것이 아직은 성적 주체이지 못한 여성이 스스로 성적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훈련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폭력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남성들만을 탓할 수 없다, 여성들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데, 남성들이 어떻게 여성들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 러니 여성들도 좋은 건 좋다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 었다. 나는 거리낌없이 나의 욕망과 경험을 친구들에게 말하였고, 연애 상대방과의 스 킨쉽을 공공연히 행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기보다, 훈련으로 생각하자는 과잉 의도가 다분히 지배적이었던 것 같지만.

어느 날인가 과 학회 사람들과 뒷풀이를 하다가 새벽녘까지 술을 마시게 되었다. 한 남자 선배와 내가 끝까지 남게 되었는데, 차가 끊겼다는 핑계로 자연스럽게 여관에 가 게 되었다. 과 사람들과 여럿이 여관에 간 게 몇 번이나 되었기에 자연스럽기도 했지 만, 내 가슴이 쿵덕쿵덕 뛰고 있지 않았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남자와 여자가 단 둘이 여관에 가는 것. 그게 뻔히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기에. 그러나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 날, 한사코 애원하는 그를 억지로 떠밀자, 그는 가슴만 만지고 있겠다는 요구를 했 고, 그 정도는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가 내 가슴을 만지기 시작하면서 흥분 이 되기보다, 천천히 식어가는 몸을 의식하면서 촌스러운 여관 천장 벽지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원하는 건 이게 아니었는데, 이 사람은 여자 친구도 있잖아, 내일 어떻게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난 뭘 원했던 걸까......

이제 와서 그 사람을 성폭행범으로 폭로할 생각이 있는 건 아니지만(아마도 많은 남성 들이 이러한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레 겁먹고 있는 것이겠지만), 함께 여성운동을 하던 친구들의 성폭력 경험 고백이 나의 이런 경험을 강박적으로 떠올리게 했던 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 때 성에 있어서 '여성이 좋아하는 것''싫어하는 것'이 이미 이 분법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순진한 성적 자유주의자였던 것 같다. 즉 '성''지극히 자연스러운' '원초적 본능의 표출'이라고 보면서, 그렇지 못한 상황이 있다면, 여 성들도 노력해서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그런데 사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을, 여성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보는 것에서부터 이미 모순은 발생한다. 이처럼 '성적 자유주의'는 남성중심적인 성문화를 정당화하기 때문에 중립적이기보다 가부장적 인 성적 보수주의자들과 한편에 서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이제 많은 여성들의 경험과 그녀들의 용기 있는 고백을 통해서 '일상적 성의 폭 력친화성'이란 맥락에서 구성되었던 나의 경험들을 다시금 돌이켜보고, 그 경험을 재 해석하는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성에 있어서 피해 의식을 가지 게 되진 않았느냐고?
모든 남자를 의심하며 성적인 보수주의자가 되지 않았느냐고? 이런 물음은 성이 '해방 혹은 보수'의 양면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보는, 단순하기 그지 없는 남성중심적 의 심에서 비롯된다. 또한 이는 폭력적으로 위계화된 욕망의 추구가 필연적으로 동의를 가장한 어느 한 쪽의 권리 침해를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강제적 이성애 모델만을 성적 욕망의 모델로 가정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생산적인 피해 의식이 있을 수 있고, 일단 남자를 의심해 본다는 것이 뭐 그리 나쁠 것도 없고, 성에 있어선 해방주의자 아니면 보수주의자만 있는 게 아니라고 여성주의가 그토록 외친 바 있으니 말이다) 나는 오히려 '성적 욕망의 추구'라는 중요한 몸의 권리가 이런 협소한 틀 내에서 갇힐 필요가 무엇인지를 다시 질문하면서, 어떤 특정한 상황, 특정한 관계에서만 성을 느 끼는 우리의 상상력의 방향을 친구들과 함께 고민중이다. 다시 한 번 이러한 욕망의 권리는 성적 자유주의자들의 '자연스러운 성, 따라서 규제할 필요가 없는 성'이라는 주장과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이는 '성적인 것'은 구성되는 것이며, 따라서 성적인 욕망의 권리는 투쟁을 통해, 투쟁 안에서 획득된다고 보는 것에 더 가깝다. 자신과 타 인을 동시에 배려하는 새로운 성적 윤리의 확립과 이를 공감하며 공유할 수 있는 사회 적 장치들의 계발을 전제로 하는 욕망의 권리. 개인들은 고립된 원자가 아니며, 집합 적 집단만도 아니다. 관계를 통해 의미를 갖는 사회적 개인들, 동시에 환원할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가진 개인들이 스스로의 욕망의 권리를 공유하는 소유권으로 만들어가 는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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