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 피해자중심주의와 피해자진술의 진실성

리건, 완두, 차차

(알림 : 대화명은 임의로 설정하였으며 루다와 동경의 성격은 실제와 다를 수 있음)

루다 : 어이, 이성소녀, 안녕?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시나?

동경 : 안녕! 잘 만났어. 100인위 활동을 보면서 너랑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들이 생긴 참이었거든. 요새 고민 중이야. 난 100인위를 지지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말문이 막히게 될 때가 있어. 내가 무슨 미스 페미니스트라도 되나? 나 혼자 페미니스트 대표인 것처럼 여기저기서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던져댄다니까. 그런데 듣고 있다 보면 귀가 얇은 나는 좀 말려드는 느낌이 드는 거야. 성폭력 사건들, 특히 법적으로 처리할 때 말고, 성폭력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자 할 때에 피해자 입장을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고 하는데, 그런 편향이 지나치면 가해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냐고 하는 의견들이 있잖아. 그런 말을 들으면 그럴 듯 하단 말이야. 어떤 한 쪽의 입장에 치우치면 균형을 잃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루다 :응. 피해자중심이라는 말이 그렇게 들릴 수도 있을 거야. 중심이라는 말은 굉장히 위험해 보이니까.

동경 :마치 그쪽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대변하겠다는 말처럼 보이지 않니. 균형을 잡고 사실확인에 힘을 기울여서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말도 들어 보아야 하지 않겠어?

루다 : 균형감각이나 사실확인이나 물론 필요하겠지. 하지만 현실에 압도적인 힘의 우열이 있다면, 그 맥락에서 중립이나 객관은 힘있는 쪽으로 편들기가 되지 않겠니. 생각해 봐. 강간의 신화, 여성은 건드리면 반응하는 즉물적 존재라는 신화, 여성의 NO는 YES라는 신화, 참을 수 없는 남성 성욕이란 신화, 그리고 남자를 유혹해서 파멸시키는 팜므 파탈, 공주병에 걸린 여성, 히스테리에 걸린 여성, 나약한 피해망상증 여성, 못생기고 성격 삐뚤어진 페미니스트의 이미지를 주조해내는 이 사회. 이건 모두 가해자의 입장을 강력하게 대변하고 옹호하고 있지. 성폭력 피해가 공개되면 곧바로 미친년, 피해망상증, 공주병에 의한 착각, 집단 히스테리, 과민, 부도덕, 음탕, (보상금을 노린) 자작극, 노출증, 각종 음모론 등의 비난이 기다렸던 듯이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이에 대해서 피해자의 입장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것이야말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해.

동경 : 하지만 정말 오해가 있을 수도 있잖아. 공정성을 잃으면 오히려 진실을 밝히기 힘든 것이 아니겠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수긍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그러니까 잠재적인 지지 세력을 가시적인 지지 세력으로 만들 수 있는 세련되고 침착한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는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거야. 괜히 처음부터 거부감 느끼게 만들 수 있으니.

루다 : 진실이 저 너머에, 아니면 껍질 속에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해? 저 너머에 가 보면 진실은 또다른 각도에서 다르게 보일 거고, 껍질을 까다 보면 양파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야. 우리는 완벽한 객관성을 가질 수 없다고 봐. 누가 나를 툭 쳤는데, 나는 맞았다고 생각하고 그 쪽은 우정의 표시라고 생각할 수 있지. 또 내가 누구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나는 기분좋게 했지만 그 쪽은 모욕적이라고 느낄 수 있지. 이럴 때 누가 진실을 담지하고 있지?

동경 : 누구의 입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뭐.... 하지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억도 단일한 것은 아니잖아? 당시 피해자는 복잡한 감정 -슬픔, 두려움, 주저함, 억울함, 수치심, 자기혐오, 자해충동 등- 속에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의식적인 기제로 기억을 상당 부분 지웠을 수도 있어. 성폭력은 떠올리고 싶지 않으며 떠올리기도 힘든 기억이니까 정리가 안 될 텐데, 이렇게 혼란스러운 피해자의 말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루다 : 어, 세부 사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봐. (법에서도 기억의 오차가 있는 건 봐 준다네.) 성폭력 피해의 한 국면으로 기억의 혼란이 나타났다면, 그것 자체를 가지고 다시 피해자 진술의 진실성 여부에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오히려 감각과 기억의 혼란을 포함한 정신적 피해를 통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폭넓은 시각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지금 내가 성폭력을 당하고, 그걸 증명하려고 하면 너무나 충격을 받고 상태가 말이 아닌데, 가해자의 얼굴이나 모르는 사람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게 더 끔찍하지. 제대로 된 상식이라면 이런 부분까지 사려깊게 고려해 주어야 하는 거 아냐? 확장된 객관성은 소외되고 피해를 입은 소수자의 입장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내 말은, 여러 개의 입장에서 나오는 여러 개의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야.

동경 : 입장이 달라서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어쨌거나 결론은 나지 않는 거잖아.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은 증인이 없는 밀실에서 일어나니까, 더 이상 사건 해결을 할 수 없는 거라는 말도 있지 않아?

루다 :입장의 차이라고만 하면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게 되지! 그러니까 한 쪽은 다른 쪽과 생각이 다르기만 했었지만, 다른 쪽은 생각이 다른 걸 확인하거나 고려하지 않고 미리 짐작한 다음에 일방적으로 행동까지 옮긴 거야. 그리고 그 행동은 실제적으로 피해를 낳은 거라고. 그녀의 피해에 초점을 맞추어야지.

동경 :어? '그녀'라고?

루다 : 응? 왜?

동경 : 성폭력 피해자의 96%가 여성이기는 하지만, 생물학적 여성만 성폭력 피해자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 같아서. 어린 남자아이나 청소년도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잖아. 군대나 감옥같은 폐쇄된 남자만의 공간에서도 그렇고... 또 트랜스젠더의 피해가 인정되지 않는 고정관념을 낳지 않을까? 게다가 그녀라는 말은 일본어의 '彼女'에서 온 일제의 잔재라고. 원래 우리말에서는 '그'로 3인칭 여성과 남성을 모두 불렀어. '그녀'라고 할 때마다 '그'라는 남성=보편적 인간에 초라하게 끼어든다는 느낌이 들어. '그녀는'의 어감도 안 좋고 말이지.

루다 :그래. '성폭력 피해자'라는 수동적인 어감에서 벗어나서 자기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았다는 적극적인 의미의 '성폭력 생존자'라는 말을 쓰기도 하더라. (특히 어린이 성폭력의 피해자를 생존자라고 부른다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어린이 성폭력은 정말 용서할 수 없어! 분명히 성폭력 가해자의 실명 공개가 필요하다고!!)

동경 :그야 그렇지만....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녀석들도 있던데? 그 당시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사후에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조작할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럴 경우 실명 공개는 죄 없는 사람에게 치명타가 되지 않겠냐는 거지.

루다 :그건 비현실적이야.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꿈나라를 날아 다니는 게 아닌가 싶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가부장제 사회야. (동경 끄덕끄덕) 한 여성이 성폭력 피해자라고 나서는 것은 그들이 보기에 고요하고 평화로운 세계에 돌을 던지는 음란한 짓이고 무고한 남성들을 가해자라고 몰아세우는 짓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비난받는다고. 이런 상황에서 한 개인이 없는 사실을 지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네가 네 선배 누구누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쳐. 그럼 넌 나에게 그 선배 이름을 대면서 조심하라고 하겠지? 그리고 후배들에게도 누구누구 선배는 피하는 게 좋다고 알려 줄 거야. 그렇다면 그 조심하라는 충고를 다른 사람 모두에게 하면 왜 안 돼? 누구나 자기 삶의 진실을 이야기할 권리가 있는 거야.

동경 :그렇다 해도 가해자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지 않아?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억울할 수도 있으니.

루다 :나쁜 의도라고? 정말 '선의의 가해자'가 있을 수 있을까. 가해자는 스스로에게 너그러웠을 뿐이야. 자신이 해도 되는 행위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잡고 나서, 그걸 타인이 받아 들일 거라고 상상했거나 타인에게 강요한 것이지. 그것도 물리력과 권력의 우위에서.

동경 :하긴,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이 피해자에게 재갈을 물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지. 성폭력 사실이 공개될 때 피해자에게 시선이 집중되니까... 여성과 관련된 모든 것을 성애화되고 '음란'하게 채색되잖아. 이혼여성, 재혼여성,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 비혼여성, 산부인과, 여성주의, 여성학, 운동권 여학생, 여고, 여대, 가정폭력, (가족이 보는 앞에서 성폭력을 당하는) "가정파괴"사건, 인신매매, 윤간, 스토킹, 데이트강간, 어린이성폭력, 심지어 "위안부" 문제까지 여성과 관련된 모든 것이 모조리 문란하고 음탕한 시선으로 훑어 내려지지. 아, 끔찍해!

루다 :그래. 그래서 공개적으로 자신이 당한 성폭력 사실을 말하는 것이 두려운 거야. 주위의 시선은 일단 차가우니까. 그리고 다른 여성들이 성폭력 사건을 공개했을 때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역사적으로 개인사적으로 보아 왔지. (1986년 6월 부천경찰서에서 성고문을 당한 권인숙은 오히려 공문서 위조범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1988년 9월 변월수는 강간범의 혀를 잘라 자신을 정당방어했는데,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 남성의 혀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되었다. 1988년 12월 대구에서 강정순이라는 여성이 경찰관 박승근, 김정부에게 윤간당했는데, 강정순을 고소장을 제출했으나 오히려 무고죄와 간통죄로 구속되었다.) 난 가족이 피해자를 불결한 물건 취급하거나, 손끝 하나 닿는 것도 끔찍한 그 가해자와 결혼시키려고 한 것도 봤어. 어릴 때부터 크고 작은 성폭력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지. 아마 이 때부터 무력감을 배운 것 같아.

동경 : 그래. 주위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부터 너무 막막해서 체념을 미리 하게 되나봐. 왜 상식적으로, 내가 입은 피해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루다 :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라니까! 피해자중심주의는 피해자의 피해를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거야.

동경 : 하지만, 어쩐지 피해자중심주의라고 하면 객관적인 성폭력이란 말이 아니라, 피해자 멋대로 정의하는 성폭력이란 느낌이 들어. 그냥 피해자를 배려한다고 하면 되지 정면에 피해자중심주의를 내세울 필요가 있을까?

루다 :피해자멋대로주의가 아니야. 내가 그 입장이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했을지 자신을 대입시키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합리적인 거라고. 그리고 막무가내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원칙과 수위를 가지고 논의 과정을 거쳐 판단하는 거야. 보편적인 가치체계에 무지한 것이 아니라 그 보편적 가치체계를 여성의 시각까지 확장해서 재구성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해.

동경 :성폭력특별법도 생기고, 그 전보다는 점점 상황이 좋아지고 있지 않아? 점진적으로 성폭력이 사라지지 않을까? 왜 지금 당장 피해자중심주의가 여기 있어야만 하는 거야? 아, 헷갈리는 나에게 명쾌한 설명을 해 줘.

루다 :그렇다면 뒤집어 말해볼까? 피해자중심주의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난 피해자중심주의가 성폭력피해자들의 언어라고 생각해. 지금까지는 언어가 없었고 말할 기회도 없었고 말해도 이해받지 못했어. 이제 다른 관점에서 피해자중심주의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도출되지. 성폭력피해자들에게 발언 기회를 준다고 치자. 그래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담론으로 형성시켜 줄, 피해자중심주의를 견지하고 있고 피해자 우선보호의 논리로 무장한 지지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그들은 여전히 내버려진 것과 같지 않겠니? 성폭력을 고발할 '주변'이 없는 거니까. "중립"을 이야기하며 피해자중심주의를 비난하는 것은 그래서 무책임하다고 봐. 피해자중심주의는 저 멀리 있는 등대의 불빛처럼 피해자입장을 고려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서 불특정 다수에게 그 존재만으로 힘을 주는 역할을 해.

동경 : 루다야. 우리가 멀더와 스컬리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니? 너는 감성과 심증을 중시하는 멀더고, 나는 이성과 물증을 믿는 스컬리... 우리 멀더와 스컬리 버전으로 말해볼까. 멀더, 그럼 피해자중심주의는 피해자가 당당해질 수 있는 기회를 뺏고 계속 약자로 몰아가는 위험에 빠지는 거 아닌가요? 그냥 불쌍하고 비탄에 빠진 여자로 보는 거죠.

루다 :피해자를 약자 취급하자는 게 아니에요. 스컬리. 피해자가 개인사적으로 겪어 왔던 경험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해요. 그리고 피해자를 객관화되어야 할, 분석되어야 할, 평가되어야 할 대상이 아닌 능동적인 주체로 여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피해자가 생각하는 걸 주의깊게 듣는다는 의미에서 피해자를 자율적 인간으로 여긴다는 거죠. 피해자는 느끼고 말할 수 있지만, 주위에서 그걸 들으려 하지 않았던 거예요. 들으려 하지 않으니까 피해자의 말이 안 들렸던 거죠. 피해자의 말을 듣지 않는 걸 이 사회는 공정하다고 말하고 있소.

동경 : 하지만 피해자는 좀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어요. 무섭다고 피하기만 한다면 피해자로서의 위치는 달라지지 않을거예요. 피해자가 객관적일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뺏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구요. 멀더가 피해자에게 감정적으로 가까이 가려 하는 건 알지만 냉정해야 해요.

루다 :그렇지 않아요, 스컬리. 냉정하다는 건 사람의 눈을 가려요. 감정적이라는 게 왜 문제죠? 냉정한 건 왜 좋은 거죠?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말은 늘 의심의 시선 속에 있어요. 모두 의심하기만 해요. 그러면 피해자가 말할 수 없어요.

동경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대편 끝으로 갈 수는 없어요, 멀더.

루다 :피해자중심주의는 반대편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중간으로 끌어오는 힘이죠. 사실 중간이란 말도 어렵긴 하지만.

동경 :그건 멀더의 말이 맞아요. (한숨) 과연 중간이란 게 있을까, 균형이라는 게 있을까. 나도 고민이에요......

루다 : 균형이라는 게 어디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피해자 쪽이 훨씬 의심받는 쪽이면서도 실제로 고통받고 있다는 게 분명하잖아요? 가해자의 변명은 너무나 잘 들으면서, 보통은 가해자의 변명 쪽으로 한참 치우쳐 있는 걸 객관이라고 하죠. 그렇다면 사건을 지금보다 잘 볼 수 있는 열쇠는 피해자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중립적이라고 한다면 자기도 모르게 가해자의 몸 속으로 들어가게 되죠. 우리는 누구나 강자의 시선에 자신을 대입하기가 쉬우니까요. 피해자의 눈으로 들어가면 같은 일이 다르게 보여요. 그러면서 우리가 알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스컬리?

동경 : 모르겠어요 멀더, 뭐가 더 옳은 건지. 좀 혼란스럽군요.

루다 : 누구의 입장에 서는가. 단 하나의 입장에 서자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양쪽을 다 고려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피해자 입장은 눈꼽만큼 생각하고 말죠. 그걸 인식하지 못해요. 우리는 의식적으로 피해자 입장으로 들어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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