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
출근하는 길은 건조하고 오염된 바쁜 도로의 바람으로 숨이 막혔다. 건물 안에 들어
서면, 계산에 찌든 그늘진 눈밑의 주름들과 피곤한 무스 머리들이 돌아다녔고, 그 어
두움 혹은 반짝임과 향기가 역겨웠다.
나는 회사를 나왔다. 작년 이맘때니까 꼭 1년째다.
허구적인 "우리"를 위해 "나"
를 없애야 하는 "희생정신", 회사를 위해(사실 사장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하며 그것은 개인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는 어설프지만 굳은 논리,
그래서 회사를 위하는 척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고, 줄을 서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그 피라미드형 스크럼에 끼어 들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모든 것들을 경계
하고 경쟁심을 잃지 않아야 하고, 과장해서 자기를 선전할 줄 알고, 지체 없이 굽혀야
하며, 야합과 찍어누르기에도 능해야 했다.
사실 회사가 싫어진 이유를 설명하자면 한참의 지면을 할애해야한다. 지금 더 말하자
면 토할 지도 모르니 일단 이런 추상적 단어의 나열만으로 그치는 것을 용서해달라.
결국 '출세'하려면 나는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맺는 방법부터 바꾸어가야 하는 것이었
다. 그런 규범들은 나에겐 해고통보였다. 나는 여기 적응할 수 없다는. 주변을 맴돌면
서 최소한의 것을 찾거나 혹은 이탈해야 한다는.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는데 큰일이다. 투덜거리지 말고 출세를 하라는데 큰일이다. 어
디에 간다고 해도 내가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출세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제 희박
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출세를 포기하고 투덜거리기로 한다.
회사문을 나오면서, 백수로 살게 되면서, 처음 걱정된 건 물론 돈 문제. 다행한 일이
지만 나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사람은 아직 없었고,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도
있었다. 내 선택을 (어떤 이들에 비해)배부른 것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내가 회사
를 그만둘 수 있었던 조건에는 그런 것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부모님
이든 누구에게든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산다는 것도 끔찍한 일이다. 알다시피 그건 경
제권자에 대한 의무가 생기는 것이라서 삶의 방식에 대한 온갖 제한에 직면하는 길,
어딜가나 "독립된 인격체"니, "성숙된 시민"
이니 하는 취급을 받기는 포기하는 길, 속
이 검댕이가 되고 위장병에 걸리는 지름길임은 분명하다. 그럴 바엔 직장을 가질 수만
있다면 갖는 것이 나을 게다.
내가 아무리 자본주의세계를 싫어한다고 해도 내가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한 것이 현
실이기에, 나는 돈을 벌 방법을 찾아야 했고, 결과적으로 어영부영한 삶을 살았다. 수
입이 없는 시기도 있었지만 운좋게 잡아르바이트 같은 것이 생기면 돈을 벌고 해서,
좀 더 짧은 시간동안 돈을 위해 일하고 내가 생각하는 최소의(물론 그 최소는 사람마
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돈을 버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한편, 돈말고도 어려운 일은 많았는데, 특히 "뭐하고 지내냐"
라는 류의 질문들은 당
혹스러웠다. 나에 대해 소개할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아는 과정도,
오랜만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무서웠다. 사실 직장이나 소속이 없다고 아무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바쁘고 더 다양한 무언가들을 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말할 것
이 많기는 했다. 그래도, 스스로 의기소침해져서 백수라고 먼저 말하고 어색하게 웃곤
했다. 왜냐하면 이 질문들은 어린 시절에 무수히도 듣던, "커서 뭐가 될꺼니?"라는
질문과의 연장선상의 이야기들이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단지 몇 가지 분류 중의
선택뿐이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공식적인" 소속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 그것은 스
스로에게도 생소한 공포였다. 정해진 단계에 따른 소속을 만드는 사회에서, 나 역시
짜맞혀진 틀에서 사는 데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온전히 비워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
지 내가 결정하는 일에 스스로도 익숙하지 못했는 데다가, 나이에 따라 기대될 여러
가지 것들도 나를 계속 구석으로 몰아 내 마음을 바쁘게 했다.
나 혼자 '어영부영'한 삶을 사는 건 어려운 일이기에, 내 주위에 나를 이해해주는 여
자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는 다시 돌아가거나 괴로워 죽거나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기간은 나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은 일년이었고, 내가 만들어 가는
시간에 점점 익숙해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바라던 것은 단지 그런 것들이
었다. 무슨 일을 해도, 친구를 만나도 일찍 가야지라고 초조해하지 않고 그 시간을 즐
길 수 있는 것, 멍청한 머리로 TV를 보는 것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혹사되지 않는 것
,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잠을 자고 아플 땐 쉴 수 있는 것, 놀이터의 오후 햇살을 보며
책을 보거나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8시간이상씩 밀폐된 곳의 썩은 공기를 마시지 않
아도 되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똑같이 있는 그 시간에 그 공간에 있지 않아도 되는
것, 돈이 안 되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 사람을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것.
그런 것들.
누군가는 좀 부르주아의 한가한 소리같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뭐 그리
사치스런 소망이란 말이냐. 누구나 이 정도는 누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하루빨리 노동
조건이 개선되고, 자원이 평등하게 분배된다면 좋겠지만, 내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생활이란 건 돈을 덜 벌고 못난 사람 취급을 받아도, 몸과 마음을 덜 갉아먹히고, 하
고 싶은 걸 하는 시간을 늘리는 그런 생활이라는 것이다.
또는 이런 생활을 낭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효율성'이란 걸
신봉하는 '성공시대'나 즐겨볼 듯한 사람일 게다. 그는 4시간 노동하던 원시인에게 TV
가 없어 얼마나 심심했을까하고 불쌍해하는, 8시간 노동하면서 대형 평면TV를 소망하
는 현대인과 닮았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가치를 '조금 더'(-'완전히'가 아니다) 누리는 대신 잃을 것
이 최소한의 밥과 잠자리가 아니라, 버스 탈 것을 걷고, 더 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최신 유행의 무엇 대신 있던 것을 쓰는 것, 내놓을 만한 소속이 없는 것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회사는 아니지만 나에게도 소속이 조만간 생길 것 같다. 그래도 무소속생활은 지나갈
과거만은 아니다. 그건 돈과는 별로 친하지 못한 나의 소속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지금도 사회의 다수라 할 수 있는 지배적 규범을 가진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일도 별
로 없을, 부적응자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회사를 잘 다니는 사람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놀랄만
큼 아무생각없이 적응을 잘 하는 사람들은 빼고. 괴로워하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참
아내는 많은 사람들을 나는 존경한다. 그들과 나는 한끗 차이다.
단지 나는, 억울하면 게임에서 이기라고만 하는 사람들에게, 게임의 룰을 누가 정했
는지, 아니 왜 그 게임에 (말려)들어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더 먼저라고 말하고
싶다. 막힌 공동체에선 부적응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적응자 백수는 다른 곳에
서 다른 의미의 '노동'을 할 수 있다. 궁핍하지만 풍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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