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야할 것과 없어도 되는 것(1부)


신 딸기

1. 서울에서 행복할 수 없는 이유, 그렇다고 해서 훌훌 떠나지도 못하는 비굴함.

이사를 해야 했다. 전세값 대란의 시대였다. 슬슬 걱정이 되었지만 내 작은 몸하나 뉘일 방한 칸 없을까,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했다.(실은 미련이 많은 내게 잡동사니 같은 짐이 한가득이다) 정작 전세값 대란이고 뭐고 전세로 나온 방 한 칸이라는 건 거의 없었다. 테헤란로의 열풍이 어디까지 뻗쳤는지, 은행수익이 어디까지 곤두박질쳤는지, 다들 월세다, 그나마 나온 방도 거의 없다. 나온 방이라는 건 대부분이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다. 더 이상 거기서 살 수 없어서 사람들이 기어 나온, 그런 방이었던 거다.

서울이라는 곳에서 살게 되면서 가장 놀라게 된 것은 지층방의 존재였다. 지하와 반지하를 나누는 것에도 놀랐지만 - 왜 지하가 아니라 반지하인가 -, 1층과 지층, 반지하와 지하가 세밀하게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 내 눈엔 굉장히 신기했고 서글펐다. 눈과 얼음의 세상에서 사는 에스키모는 눈에 관한 말을 30가지 이상이나 가지고 있었고, 좀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가는 서울 사람들은 1층과 지하 사이에 두 가지 용어를 더 가지고 있었다.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거기서 남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는, 화폐란 건 그다지 가지고 있지 않는 무지랭이들이 사는 동네엔 지하방, 반지하방, 지층방이라는 말은 없다. 굳이 1층이라는 말도 아마 하지 않을 거다. 누구든지 멋지게 살고 싶어서 발을 딛는, 한 번 정착하면 절대로 밀려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 곳, 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지방에서 자란 내게 서울은 동경의 도시였다. 그 동경의 도시, 이 풍요로운 도시에 정착하기 위해, 내가 자란 지방 도시(그나마 꽤 큰 도시라고도 말할 수 있는 곳이다)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보다 몇 배나 되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그러고도 고작 아침에만 햇빛이 잠깐 들어왔다 나가버리는 작은 방, 하나뿐. 그러나 그것조차 내 소유가 될 순 없었다.
내가 서울에서, 혹은 도시에서 원하는 것은 햇빛과 바람이 잘 들어오는 남향의 베란다(남향의 대청마루와 마당 대신) 그리고 욕조가 딸린 욕실이 있는 작은 공간. 그리고 나와 친구들 몇 명이 둘러앉아서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방. 증권투자 같은 건 관심도 없는 내게 이런 항목의 바람은 사치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떤 날, 교육에 의해 길들여지고 키워진 내 안에 숨죽이고 있는 지긋지긋하고도 잔인한 욕망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살아왔던 (짧지 않은) 일정기간의 빠듯한 삶에 대한 보상에 관한 미련, 그것을 포기하기만 한다면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내 욕심이라는 것, 서울을 떠나기만 한다면 쉽게 충족될 수 있는 작은 욕심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서울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식구들을 뿌리치고 바득바득 올라온 서울을 떠나 또다시 혼자 어디론 가 가버리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딸기의 이상향 패키지>
맑은 햇빛과 청량한 물, 적당한 온도, 비바람을 막을 수 있고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작은 공간,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먹을 것과 그것을 구할 수 있는 (재배하건, 사건) 환경, 다정한 이웃,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부득부득 우겨서, 컴과 전화선(메일은 확인해야 한닷)

언젠가 TV에서 산 속에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아저씨의 삶을 보았다. 부러웠지만, 용기가 없다, 그에겐 친구도 이웃도 연인도 없었으니까. 영화도 없고 비디오도 없고 책대여점도 없고 콘서트도 없고 게다가 인터넷도 없다. 나 혼자 무릉도원을 가게 된다 해도 달갑지 않을 것이다(아마도 메일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 혼자 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훌쩍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없이 살아가야 할 내 삶이 친구들마저 없이 쓸쓸해져야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할 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모든 편이를 누리며 산다면, 친구 없이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걸 가질 수 있다면 친구정도를 버리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친구는 없어도 되지만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법. 서울에서의 삶은 집약형의 편이를 누리는 대신 돈과 특별한 사교에 집착하게 한다. 결국 나의 머리 속 한편에는 연봉과 재테크에 관한 고민이, 다른 한쪽에는 내가 인정한 적당한 수준 이상의 사람들에게 소외 받지 않기 위해서 내가 갖추어야 할 것들에 관한 고민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만약 내가 이 서울에서 자가용을 사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이유의 반 이상은 원하는 사교 그룹(준거집단일 것이 분명한)에서 소외 받지 않기 위해서!일테고 그러기 위해서 또 생계비 외의 돈도 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나의 에너지는 그렇게 소모적인 곳에 집중될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순간,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내 뒤에 남은 흔적들은, 산더미 같은 쓰레기뿐. 그저 뜻도 없이 열중해서 경쟁적으로 써버린 내 삶의 에너지와 그 뒤에 남는 손댈 엄두도 나지않을 만큼 많은 쓰레기들. 허황한 껍데기가 되어버렸을 지도 모를 자신.

그래, 조금 양보해서, 아니 많이 양보해서 살기 좋다는 곳으로 이민을 간다고 치자. 그러자면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그곳의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언어와 몇 십년이 지나도 몸에 배지 않을지도 모를 문화와 풍습. 그런 것은 어떻게든 견뎌보겠다고 하자. 정작 문제인 것은 나 혼자서는 얼마나 걸려서 모아야 할지 모를 정도의 큰 액수(투자이민)이거나 혹은 몇 년 정도 배우고 경험해야 할 IT 관련 기술, 혹은 조금 더 높은 학력 및 학벌. 그 모든 걸 뛰어넘었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외로움. (물론, 극복할 수 있는 멋진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제길, 부럽다구웃!)

제일 마지막까지 나를 몰아세웠을 때 나를 붙잡는 것은 외로움, 혼자 멋지게 살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래서, 공동체. 공동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밑도 끝도 없는 궁상을 펼쳤던 것이다. 아무리 멋진 사람이라도, 아무리 혼자서 학처럼 고고하게 살아간대도, 그 삶이라는 거 호사가들의 구라의 소재가 될 뿐. <코리안 패키지>라는 꿈 안에서 교육 받은 우리들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대학이라는 해방구 - 여전히 그럴까? - 를 떠나서도, 사회에 편입이 되고 나서도 각개격파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자, 그 누구일까. 이미 가진 기득권들을 내 손에서(만) 털어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물론 적어도 자신은 더 이상 가진 게 없어질지도 모르지. 그래, 그렇게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간다면 그저 열패자일 뿐일테지. 바보등신에 불평불만자일 뿐일테지. 그래서 이 누추한 인생의 선배들은 시장의 원리라는 그물을 피해갈 만한 어떤 것들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걸 게다, 그것이 성공했건 힘들었건 실패했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낫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패자(loser)라 비웃으며 뻔뻔스럽게 모르는 척, 성공한 척 인생의 승자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좀 더 솔직하게 말해볼까?
혼자서 좋은 곳 찾아서 떠난다고 해서 행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거다. 설사 내가 엄청나게 노력해서, 이만하면 훌륭한 장소를 구하고, 거기에 정착할 비용을 마련했다고 해도… 거기서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 이유는 한 가지, 친구가 없어서. 닭살버전으로 말한다면, 동지 (同志, comrade )가 없어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신이 나지도 않을 거고, 자신도 없어질 거다.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거 너무나 누추하여 사회통념과 상반될 게 분명한데, 그게 좋다고 같이 하자고 동참하기는커녕 아무도 알아주지도, 봐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꼴이겠는가. 아무리 멋진 척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게 어떤 부분정도는 올바른 구석이 있다는 걸, 혹은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는 걸, 어떤 식으로든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건 그냥 '미친 짓'과 다르지 않다.

<딸기의 이상향 패키지>의 어떤 부분은 꼭 채워져야 하는데, 그게 바로, 친구이고 동지라는 요소다. 그것이, 혼자서 머리 속으로 아무리 낙원을 그린다 해도, 그 멋진 낙원이 걸어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이유다. 혼자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

>> 있어야할 것과 없어도 되는 것(2부)( com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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