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신은 완전한 승리자였기에 그 동안의 모든 싸움을 잊게 하다가 겨우 오늘날에야 그 승리들을 기억하게 해 준다. 첫 시작의 고통과 비천하고 조야하며, 야만적이면서 잔인하게도 희극적인 그 시작의 형태들을 상기시키는 것도 쓸모 없지 만은 않았다. 박해 속에서 여인들이, 불운한 마녀들이 대중들에게 풀어 놓은 그 새로운 정신이란!
그녀들은 죽었고, 죽어야 했다. 어떻게? 무엇보다도 자기들이 발전시킨 과학의 진보로 인하여, 의학으로 인하여, 자연주의자들에 의하여, 바로 자기들이 힘써 지키려 한 이 모든 것들로 인하여. 마녀들은 언제나 죽었다. 그러나 요정은 죽지 않는다. 마녀들은 죽지 않는 요정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남자들의 일을 기꺼이 떠맡았던 지난 세기의 여인들은 그 대신 자신들이 고유한 역할을 잃어버렸다. 치료와 간병, 병을 낫게 하는 요정의 역할을 …..
반(反)자연은 빛을 잃었으니 반(反)자연이 기울어 세계에 여명이 깃들일 그날은 멀지 않았다.
쥘 미슐레, [마녀] ( 장 미셀 살망, [사탄과 약혼한 마녀]에서 발췌)



:: 마녀의 생존 규칙 ::

 

신 딸 기

마녀라는 말이 그다지 공포를 불러 일으키지 않는, 2000년의 남한에서 마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뜬금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귀여운 마녀인형이 팔리고 있고, 영화에는 낭만적인 마녀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세기말의 남한에서 광신도들에게도 마귀보다는 휴거가 이슈였으니까. 게다가 '마녀사냥' 이라는 말은, 북쪽과 연결이 되어있다는(의심되는) 몇몇 학생들을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으로 몰아갈 때, 당하는 입장에서 그렇다고 주장할 때나 쓰는 것이며, 심지어는 국회의원 비리 사건이 터져 나올 때 가장 크게 해먹었다고 알려지는 사람이 자신을 변호할 때, 쓰는 말이다. 집단에 의해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다거나 누명을 썼다거나 생각이 되면 이런 말을 쓰는 모양인데, 나는 그 남자들이 실제로 '마녀'나 '마녀사냥'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고 쓰는 것인지 궁금해질 때가 많았다. 그걸 알고 쓰는 것이라면 졸라 보수적인 그들이 그렇게는 안 살 것이기 때문이고, 우리 사는 이 곳이 이렇게 각박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언어의 용례라는 것은 세월에 따라 변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말을 자주 쓰는 그들이 마녀에 대해 몰이해한 것 같아 좀 억울하다 싶은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녀'의 전문가냐고 한다면 그럴 리는 절대 없지만, 그들보다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들보다는 높은 이해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틀렸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하겠다.

마녀의 이미지는 공포다. 그 공포는 미지로부터 유래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을 참을 수 없는 권위들이, 그 공포의 근원을 없애기 위해, 그녀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그녀의 존재를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15세기 말, 서구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는 여자라면 가차없이 화형장으로 끌고 가버렸다. 전염병이나 자연재해가 있을 경우, 누군가 사고를 당했을 때 그 탓을 한 힘없는 개인에게 돌리는 광기어린 집단 왕따 같은 마녀사냥, 어떤 학자들은 이 배후에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종교적 갈등이 자리잡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희생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많았다는 점, 신앙 때문에 죽어간 수도사의 경우에야, 아마도 종교적 갈등이라 이야기 하기 쉽겠지만, 마을의 여기저기서 끌려온 마녀들의 경우는 다르다.

마녀의 최후

마녀로 지목된 그 여자들은 주로 '주인 없는' 여자들이었다. 당시 여성들은 신학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존재로 취급 받았는데, 결혼 전에는 아버지가, 결혼 후에는 남편이 그녀들의 주인이었다. 여자들은 과부가 되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황이 되지만, 사회적 지위는 이전 보다 낮아지기 마련이었다. 사회적으로 소외를 받는 그녀들은 동정을 받기 보다는 마녀로 지목 받곤 했다. 당시 지식인으로 행동했던 신학자들은 그녀들의 채울 수 없는 욕정이 악마를 불러, 그녀들은 악마와 관계를 맺고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마녀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들에게는 자위라는 간편한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삽입성교만이 여성에게 기쁨을 주며, 페니스 없이는 여성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당시 남성들의 믿음이란 정말 어처구니 없어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녀들은 주로, 마을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은 약초를 다룰 줄 알고, 아이를 낳는 일에 도움을 주거나, 민간 요법을 시술하는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적인 지식들을 전수 받은 그녀들은 마을공동체 내의 병의 예방과 치료에 관한한 어느 정도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그녀들이 지닌 지식이 악용될 수도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근대적 의학이 출현하기 전인 그 당시, 그녀들은 그들의 생존에는 신보다 필요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숭배자인 그녀들은 불세례로서 정화될 수 밖에 없었다. 전승된 경험적 지식과 주술적 힘에 대한 혼동은 약초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여인들을 마녀로 몰아갔던 셈이다.
신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미지의 힘은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그 공포의 싹을 잘라내기 위해, 그녀들을 신의 이름으로 불세례를 내렸다.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고체계, 다른 종류의 시각 등은 신의 종자들에게는 두려움이었고, 하나님의 권능을 의심하는 악마였다. 마녀와 마찬가지로, 프로테스탄트, 무신론자들이 마법사, 악마와 계약한 자 등의 이유로 죽어갔던 것은 같은 이유에서였다. 다른 시각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던, 교회는 스스로 붕괴했지만, 그 정신은 아직도 남아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는 그 정신은 아직도 살아있다. 교회는 스스로를 반성했지만, 권력을 지닌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마녀사냥은 지속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부정 축재니 비리니 하는 것을 수사하는 데서 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힘없는 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열 중의 아홉은 여성이다.

권력을 지닌 대부분의 남성들은 똑똑하다는 여자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 그들은 그런 여자들을 만났을 때, 그녀를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심판한다. 심판을 무사히 통과했다면, 그녀는 '명예남성'이라는 지위를 얻게 되지만, 실패했다면 그녀는 배제된다. 아니, 배제되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이유로든 박해 받는다. 그 심판을 통과하지 못하는 그 여자들은, 그 남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시각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녀들이야 말로 마녀사냥의 진정한 희생자일 것이다. 말 잘하는 여자, 기술이 있는 여자, 남성적인 권위를 의심하는 여자들을 이해는커녕 참아주지 못하는 사회는 당신 주위에 널려 있다.

단물은 다 빨리고, 결국에는 마녀로 몰려 능력을 무시 당하는 여자들은 흔하디 흔하다. 프랑스를 위해 싸웠지만, 프랑스 왕실에 의해 영국군에 넘겨진 후, 마녀재판을 받고 화형 당한 잔 다르크가 (500년 후인 그녀는 1909년에서야 복권되었다) 그렇고, 삼일운동으로 옥에 갇힌 채 죽어갔지만, 후세의 아이들이 위인전을 덮으며 '사실은 여우였다더라' 하는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유관순 언니가 그렇다. 군가산점 위헌 판결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일부) 남성들의 보복이야 말로 마녀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마녀사냥의 광기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얼마 전 효성카톨릭대 여성학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손덕수 교수님이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그 쪽 재단은 총장이 신부다, 박홍을 떠올려 보라)에 의해 해임된 적이 있다. 이상한 옷을 입고 다니고(개량한복을 입고 다니신 적이 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화장품을 팔았으며(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심지어 '컴퓨터 타수가 느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주민등록 주소지가 아닌 곳에 거주했고 출석을 잘 부르지 않는 등 강의가 부실하며 성적평가가 공평하지 못한 점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10여년간 언론매체나 강단에서 가부장제와 성차별을 비판하고 남녀평등과 여성해방 사상을 강연해 온 데 대한 보복 조처"였던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똑똑하게 여겨진다면, 몸조심해라, 혹은 생존을 위해서 벙어리가 될 것을 권유한다.

나의 이 충고가 당신에게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면, 여자친구를 만들어라. 주위의 여성들을 위해서 일을 해라. 똑똑한 그 머리를 여성들을 위해서 쓰라고 권유하고 싶다. 결국 2월 교육부로부터 '중징계 해임취소'란 승소판결을 받아내고 자매애를 실감하신 손덕수 선생님의 이야기로 내 충고에 대한 증거와 결론을 대신하겠다.

"99년 6월부터 시작된 제 투쟁을 여성신문이 제일 처음 보도하면서 한겨레, 한국일보 등 다른 언론들도 같은 톤의 목소리를 냈죠. 뿐만 아니라 전교조 여성국을 중심으로 한 여교사들과 한국여성학회의 90여 여교수들도 지지 서명운동을 전개해 큰 힘을 보태줬습니다. 여성신문을 비롯해 제 문제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주신 자매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제가 80년대부터 몸 담아온 여성운동이 참으로 많이 성장했고, 또 제가 덕택에 그 곶감을 따먹은 행운을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 출처 : 여성신문(2000. 3.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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