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에 대한 성폭력

- 붕구리

서운년, 우스운년, 발랑까진년 등등 우리는 다 큰 여성이 세상에서 어떻게 보여질 수 있는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인식되기도 전에, 그저 장난감처럼 혹은 화풀이 대상처럼 당하고 있는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 를 해야 할 것 같다.

동학대실태를 보면 어른들에게 과연 '푸르른 5월은 어린이 세상'이라는 노래를 만 들 자격이나 있는지 의심 스럽다. 특히 어린이(7∼13세)와 유아(7세 미만)에 대한 성적학대는 심각성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2564건의 사례 중 아동에 대한 성학대는 약20%(5 10건)였으며 강간 피해자의 11.4%인 136명이 아동이었다. 전문가들은 아동 성학대의 신고율이 3% 미만일 것 으로 추산하고 있어 실제 피해는 막대하다고 볼 수 있다.

◇ 친족, 특히 친부에 의한 성적학대

P 양(17)의 어머니는 96년 초 외출에서 돌아와 딸이 피투성이가 돼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친아버지 P씨가 7년여간 딸 P양을 성추행해오다 그날 강간한 것. P씨는 다시는 그러지 않 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딸을 강간했다. 지난해 5월 P양과 어머니는 서울여성의전화를 찾았다 . 어머니는 P씨를 고소하 고 이혼했다. P씨는 지난해 말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 올초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아동 강간 중 친족에 의한 것은 약 40%이며 절반 이상의 가해자가 친아버지다. 백명자상담국장(41·여)은 "친족 성폭력은 임신 등의 경우가 아니면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고 장기간 지속되며 성추행에서부터 강간까지 점차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고 "피해아 동을 보호하고 조치를 취해야 할 가족이 바로 가해자이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가해자인 친부에게 친권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아 여전히 보호자로서의 권리를 갖게 된다는 것. 아동은 피신이나 전학 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보호자 승인이 없다고 학교측에서 전학을 시켜 주지 않는것. 피해 아동과 어머니를 가해자로 부터 격리 보호할 시설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상담소는 '열림터', 서울여성의전화는 '쉼터'라는 단기보호 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6개월 이하의 기간만 이용할 수 있고 그마저도 수용인원이 10여명에 불과하다. 결국 다시 갈곳이 없어진 아동은 집, 즉 가해자의 품으로 들어가게 되고 동일한 피해를 또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 아동 성학대 후유증의 잠복기

동 성학대의 후유증은 긴 잠복기를 갖는 경우도 많다. 그 당시에는 아이가 성적 접촉의 개념을 몰라 피해당한 것을 아예 인식하지 못하거나 금방 적응을 잘 하는 것 같다가도 수년 혹은 수 십년 후에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깨닫고 충격을 받으면서 심각한 정서적 후유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제도적인 대책은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현재 25세인 A씨는 초등학교 5학년때 사촌오빠에게 몇차례 강간을 당했다. 부모는 그 사실을 알고 마음아팠지만 일을 크게 만드는 게 A씨에게 더 안좋으리라고 생각했고 A씨의 상태도 그리 심 각해 보이지 않아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A씨는 점점 내성적이 되고 말이 없어지더니 약 2년 전부터는 전 혀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정도의 대인기피증과 우울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초 A씨의 부모는 한국성폭 력상담소에 상담을 의뢰했지만 상담도 정신과 치료도 큰 효과가 없었다. A씨의 부모는 지금이라도 가해자를 형사 처벌하기를 바라지만 명확한 증거나 가해자 진술 등을 요구하는 현행법상 어쩔 수 없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걸려오는 상담 전화의 10%가량이 수년 혹은 수십년 전에 당한 성적 학대에 대한 내용이다. 이제 40대나 50대가 된 여성들이 수십년전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생각할수록 끔찍하 고 그 가해자들이 너무나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니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는 것. 이들은 지금이라도 법적 절 차를 밟고자 하지만 공소시효 10년이 지났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제출할 증거가 없어 방법이 없다.

◇ 사회통념과 보호자 태도의 문제

울여성의전화 남지향간사(30·여)는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가 성적학대를 당하면 남모르게 넘어가고 아이에게는 빨리 잊으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한국사회에서 그런일이 집안 망신이라고 여겨지거나 아이의 장래를 망칠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남간사는 "피해아이들은 명확하게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른의 잣대로만 일을 수습하려고 아동의 말을 무시하거나 아동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하게 해 더 큰 후유증을 낳을 수도 있다"며 "아이의 말을 신 뢰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아이가 처음 부모에게 성적학대 사실을 이야기 할 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다. 나이가 어린 아동의 말이라도 하나의 인격체의 말로 존중하고 진지하게 들어준다면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초기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사법절차상의 문제와 개정 아동복지법

행법상 아동에 대한 성학대는 형법과 성폭력특별법에 의해 처리된다. 이 법이 아 동의 특수성에 맞게 설계되지 못한데서 오는 문제점이 있으나 전문가들은 올 7월13일 시행될 개정 아동복지 법이 어느정도 그 문제점을 보완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재는 거의 예외없이 법정에서 피해자가 진술하도록 요구받는다. 당황한 아이가 올 바로 진술을 못하거나 너무 어려 표현력이 떨어지는 경우 재판이 성립되기 어렵다. 외국의 경우 심리치료사 나 상담가가 아이와 단독으로 상담하는 내용을 녹음해 그것을 법정에서 그대로 증거로 채택하는 등의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개정 아동 복지법에서는 대리자 진술 인정의 폭을 넓혀 어느 정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동학대에 성적학대를 명시했으며 신고의무자 지정, 응급조치 의무조항, 아동보호 전문기관 직원에게 현장 조사권 부여 등 아동 성학대를 실질적으로 감시,조사, 사법처리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통로를 마련했다는 것도 발전된 측면이다. 또 각 시도에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설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아동보 호기관을 점차로 늘려갈 계획이어서 장기보호시설이 없는 문제를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아동학대예방협회 사무국장 이광문씨(35)는 "법제도의 마련도 중요하지만 결국 필요한 것은 이러한 제도가 운용될 수 있는 사회복지적 인프라"라며 "아동 학대에 대한 처리를 단순히 가해 자의 처벌과 피해 아동의 상담으로만 볼것이 아니라 아동 복지를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확충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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