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옹 이

 

한국이라는 사회는 여성단체는 물론이고 반상회와 같은 여성모임까지, `집단'으로서의 여성에 대해서 혹독하기 이를데 없다. 이와는 반대로 개인으로서의 여성, 특히 어떤 분야에 대해 뛰어난 여성은 쉽사리 `여성 아무개 '라는 칭호와 넘쳐나는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에게 왕관처럼 쓰여진 `여성 여자 여류' 라는 호칭은 여성 `전체'에 대한 긍정과 찬사가 아니다. 단지 `임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했다'는 식으로 열등집단의 선구자들을 인정해주는 것이거나, `그래도 이들은 여류(女流)일 뿐이다.'라는 한계를 두르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여성'이지만, 보편적인 `여성'과 달리 출중한 `그녀'는 기본적으로 센세이셔널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녀는 여성을 대표하지 않는다.

여성 집단에 대한 외면은 일차적으로 `군중 - 집단'에 대한 사회적인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로마제국의 유태인 예배 탄압, 중세의 마녀사냥, 흑인 노예들의 회합 금지는 군중에 대한 공포가 폭력으로 드러난 예이다. 근 현대를 거치면서, 공포는 배제하고자하는 집단에 대해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개인 선호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의사소통이 단절된 정체성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우리'는 힘이지만, `나'는 쉽게 무시해버릴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이 전략을 적극적으로 공모하였다. 자본주의의 상업성은 개인에게서 소속감을 털어내고, 이들을 독특한 캐릭터 상품으로 이용해왔던 것이다.

집단을 `원자화(atomize)' 시키려는 전략은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유효하다.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그 지칭의 대상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의 정체성을 사회적인 문맥 안에서 바라볼 때만 성립하다. 이 단어 안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그득하게 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 사회는 페미니스트들을 개인주의적 담론에 가두어 두려고 한다. 그들이 책임지고 있는 모임이 무엇이며, 최근에는 어떤 사항에 대해 무슨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들의 옷차림 외모와 같은 이미지, 혹은 결혼과 이혼등의 개인사(個人史)를 추려 `그거 봐라'는 식으로 상업화한다.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스들에 대한 원자화 전략은 1920년대, 근대적 여성운동의 출발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1920년대 `신여성'에 대한 평가가 그 출발이다.

신여성에 대한 원자화 전략은 대단한 성공을 했다. 첫째, 성공의 주기는 굉장히 길었다. 그 당시 상당한 독자를 확보했던 비판적 지식인들의 동인지로부터 오늘날 그녀들에 대한 자서전적 영화나 여성지의 회고적 집필에 이르기까지, 신여성은 마치 당시의 억압적인 여성의 상황과 별 상관없는 센세이셔널한 존재로 줄기차게 묘사되어왔다. 성공의 파동 역시 컸다. 이제 신여성은 1920년대 동경유학까지 마친 고학력의 여성론자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혜석 콤플렉스'란 말은 신여성이 하나의 대명사로 정착되었음을 보여준다. 페미니스트 전부가 신여성으로 환치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는 현재의 상황을 뛰어넘고자 한다는 점에서 `신(新)' 여성으로 동일시된다. 따라서 추상계로 올라서버린 `신여성'과 더불어 신여성에 대한 사회의 대응전략 역시 보편적인 유형(stereo type)으로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여성에 대한 사회전략에서 페미니스트에 대한, 여성집단에 대한 공포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최초의 여성 소설가인 김명순(탄실)과 유화가인 나혜석 두사람을 살펴봄으로써, 신여성에 대한 사회적 전략이 어떠한 것이었으며, 신여성의 어떠한 특징이 `페미니스트 원자화 전략'을 가능하게 만들었는지를 밝히려는 글이다. `신여성과 신여성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하나의 역사적 유형으로 전사되어 온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초기의 전략형성과정을 중점적으로 살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