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 진

 

처음 우리가 모였을 떄, 왜 '여성' 운동을 사고하게 되었었는지 떠올려 본다. 우리는 '타자로서의 여성'을 이야기했다. '타자'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어야만 유지되는 그러한 질서를 거부하고, 소외되고 배제된 자들의 삶과 경험을 긍정적으로 재구성하는 운동을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타자인 '여성'을 이야기 하게 된 것은, 이 사회의 배제와 소외의 구조가 성모순과 가부장제로 환원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마도 우리가 `여성'에 처음 주목하였을 떄는, 이것이 그 어떠한 것 보다도, 매 순간 우리를 떠나지 않는 우리의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우리가 아버지의 밑에, 오빠의 뒤에, 어머니와 함께 있는 딸들임을 알았다. 우리의 위치는 언제나 정점으로부터 매겨지는 서열에서 '비스듬히 비껴간 아래쪽'의 자리였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가부장제의 질서에서 딸들은 주변부의 빈구석에 위치지워져 왔다. 딸들은 어느 가장의 딸에서 어느 가장의 아내로 또 어느 가장의 어머니로 이동하지만, '어느 가장의'라는 설명이 없으면 누구인지 드러낼 수 없도록, 주변에서 주변으로만 이동한다. 서열에 따라 분산되지만, 결국 가장으로 집중되는 권력, 이 권력의 직접적인 내리받이의 과정에서, 아들은 '어느 가장의' 아들이지만, 곧 그는 어느 가장이 되어 그 아버지의 위치를 차지하고, 수평적 동등함보다 수직적 순서가 중요한 이러한 질서에서, 가장 의 자리를 아들에게 넘겨준 윗 세대 역시 현재적 권력에서 배제된다. 한국사회라는 커다란 가정에서, 권력은 그 권력이 이어지는 수직적 라인 밖의 사람들을 배제하고, 그 권력의 정점을 지나간 이전 세대들을 배제한다. 가족에서 사회로 확장시켜 보았을 떄, 많은 여성들은 나이와 가족안에서의 위치를 막론하고, 예속적인 관계와 성숙하지 못한 이미지로서 '딸들'의 자리를 강요받는다. 우리는 앞으로도 우리가 사회로 진출하여도, 결혼을 한 이후에도, 이러한 질서속에서 '딸들'로 위치지워질 것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 '딸들'이라는 말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은 단지 그것이 우리를 표현하는 말이어서가 아니다. 아들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복수형인 '아들들'보다 단수형의 '아들'이 더욱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느 아들도 똑같은 아들은 없어야 한다는 것, 권력 계승의 질서를 위하여 명확하에 서열이 매겨져야만 하는 것, 그리하여 아들들 사이에는 더하고 덜함, 높고 낮음의 차별화가 계속 필요하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딸이라는 단어에는 복수형인 '딸들'이 더욱 어울린다는 것은 딸들의 관계는 혼자보다는 여럿과 수평적으로 맺는 관계이어 왔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자매애를 기반으로하는 딸들의 관계는 우열과 높낮이로서 맺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소통과 이해, 동질감과 함께 하는 집합적, 관계적 특질을 가진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어찌보면 수직적인 승계인 듯이 보이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또 다시 수평적인 딸들의 관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머니가 딸에게 이어주는 것은 한쪽이 가지면 다른쪽은 잃어야 하는 권력이 아니다. 딸이 어머니가 될 때, 어머니의 자리는 배타적이지 않으며 그 관계는 물려주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정서를 이해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혀가는 것이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수직적 이어짐이 수평적 연대감으로 전화하는 '딸들'의 관계이다. `딸들'의 개념으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긍정적인 `딸됨'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우리가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할 떄,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은, 똑같은 형태의 그 권력을 단지 저들로부터 가져오는 것이 될 수 없다. 세대가 바뀌어도 구조가 같은 형태로 존속하는, 그렇기 떄문에 끊임없는 배제와 소외를 만들어 내는 그러한 질서 자체를 거부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는 딸들의 의미로부터 찾는다. 수직적인 배제의 질서에 완전히 편입되지 않았다는 것은, 현사회에서 억압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관계맺기를 일구어 나갈수 있는 전망을 가지는 것이기도 하다. 딸들이 관계맺는 방식,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관계가 어머니를 배제하지 않고 함께하는 방식, 권위와 위계가 지배하지 않는 방식에서 우리는 가능성을 본다.

딸됨의 정치학은 다양한 지점들과의 수평적인 연대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딸들이라는 정체성은 좁게는 우리 자신을 설명하지만, 이 사회에서 '딸들'로 의미지워지는 사람들과 집단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딸들'이라는 개념은 성억압을 근본모순으로 사고하며 모든 생물학적 여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의 '여성'이라는 추상적인 의미를 거부한다. 우리는 딸들이 처한 다양한 처지들을 간과하지 않는다. 딸들의 개념은 여성들간의 차이를 인정하며, 동시에 모든 여성을 포괄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닫지 않는다. 모세포가 분열하여 그 자신이 딸세포가 되고, 다시 그 모세포인 딸세포가 모세포가 되듯이, 우리가 억압을 끊어내고 소외를 극복하는 양식은, 수평적 연대와 공존의 관계맺음, 쌍방향적인 소통에 근거한 확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