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여성

---YH 여공 이야기

별족

 

지나간 일에 내가 얼마나 무심한지 생각한다. 어른들의 이야기

는 늘 너무 고리타분하고 삶은 어른들의 이야기에서보다 훨씬

모험으로 가득찬 듯하다. 살아가는 두려움보다 무모함이 지금

내 안에 크게 자리잡고 있음을 안다.

취직해서 연수원에서 하루하루를 쳇바퀴를 돌리며 살아가는

가운데, '역사 속의 여성'의 첫 주제로 ' YH '여공을 택한 것을

난감해 한다. 98년에 79년의 사람들에 대하여 말해야 하는 두

려움은 내가 무심히 흘려 들은 나이 든 사람들의 충고들 때문

에 커지고, 내가 그녀들에 대하여 갖는 생각들이 너무 현대적

이거나, 혹은 내가 너무 구시대적일까 하여 더 커진다. 사실

신문기사를 찾아 읽을 때, 나의 포부는 참으로 원대하였다. 이

들의 삶이 어쩜 지금과 이리도 닮았을까? 내가 하려던 말들은

어쩌면 가장 시대에 부합하면서도 감동을 자아내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79년 오일파동으로 들

썩이던 우리나라를 보고 질질 끌려나오는 여공의 사진을 보고

숨져버린 여공의 사진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나를 벗어나질

못한다.

79년 여름의 신문들은 97년 겨울의 신문들 같다. 물가가 뛰고,

실직자가 늘고, '설마 주가지수가 160을 깨기야 하겠는가'라는

대목에서는 어이없게도 웃음이 터진다. 이유야 다르고 전개는

더더욱 다르겠지만, 79년 여름에는 97년 늦게까지 우리를 괴

롭힌 추위의 몫을 더위가 했겠구나 싶다. 체불임금, 정년단축,

부당해고, 노동자에게 더없이 예리한 칼날이 있었다. 너무나도

닮은 과거에 나는 곧 시대를 혼동하고 만다.

고용주의 자진폐업으로 순식간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공장의

여공들이, 그리고 그 폐업이 더없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택한 것은 철야농성, 으레 있을 법한 사건이 크게 기억되는 것

은 이들이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사에서 그 투쟁을 벌였고,

이것이 당시 정권에 의해 무자비하게 탄압되면서 독재정권의

야만성을 무자비하게 드러냈기 때문일 거다.

새벽 두시에 난입한 경찰들에게 두 팔과 다리를 내맡기고 끌

려나가면서 그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집착하거나

설명하고 싶은 것이 그녀들 투쟁의 정당성이나 그 강인함, 용

기가 아니라 그때 느꼈을 감정들임을 알았을 때 나는 놀란다.

무자비한 진압과정에서 사인불명으로 숨진 여공의 이력에서

그녀가 남동생을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고향에 돈을 부치고

있는 국졸의 여공이라는 것을 읽거나, '3월의 귀향에서 혼수를

사두었다'는 대목에서 묘한 감상에 빠지게 되는 거다. '3월에

사 둔 혼수' 라는 대목에서 빠지는 감상은 '죽어버린 사람이

설계한 미래' 라는 데에서 오는 것하고, 혼수를 사 둔 시점과

그녀가 죽은 8월이 멀다는 데에서 오는 묘한 느낌이다. 무엇

때문일까? 살면서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여

자가 있어서 사 둔 것은 아닐까 하는 대목에서 생각이 미치자,

그리고 결혼이 그 시대 여공인 그녀에게 삶의 출구일 수 있다

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녀가 죽음을 각오하는 결심을 할 때

찾은 것은 온전한 자아는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다른 방

법으로도 존재할 수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을 거

라고 생각한다. 그녀들은 투쟁의 복판에서 어떤 느낌이었을까

상상한다. 죽음을 결의하며 고향의 남동생이나 혼수감을 생각

하지는 않았는지…그러나, 곧 남자형제를 위해 돈을 부칠 때보

다 모아둔 돈으로 혼수를 살 때보다 모여서 자신의 정당함을

소리높일 수 있을 때, 그들 앞에서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더욱 자신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죽어버린 그녀를 화장하는 자리에 조화를 보내는 YH 사장은,

미국에서 잘 해결되길 바란다는 기자회견을 하는 회장은 너무

부당해 보인다. 그러나, 딸 앞에 울고 있는 행상인 어머니나

고교수업의 하루를 비우고 그 옆에 서 있는 그녀의 남동생도

나에게는 그저 안타깝기만 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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