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보는 대신에


별족

쉬는 주 토요일 아침이었다.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았고, 티비를 보고 있었다.
채널은 별 뜻 없이 고정되어 있었고,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아침드라마 '새엄마'가 끝나고, '아침마당'의 로고송이 나오는데 갑자기 '집에서 엄마, 아빠도 지금 이걸 보고 있겠네' 생각했다. 그 다음부터는 고향을 그리면서 달을 보는 심정으로 '아침마당'을 본다. 남편의 바람기를 참을 수 없어 하는 커다란 검은 모자를 쓴 아줌마를 봤을 수도 있고,경쟁적으로 경험을 털어놓는 산파나 커플 매니저를 봤을 수도 있고..

정작 누가 나와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똑같은 장면을 보고 있다는 것으로도 비슷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구나,
달을 보며 그리워하는 심정이란 이런 것인가, 그런 것들, 갑자기 감상적이 되는 것은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무릎이 시큰거려'라고 말하는 엄마한테 '시큰거리는 게 어떤 거야'라고 물었었는데, 자라고 어느 날 갑자기 깨닫는 기분같은 거.

결혼이 부모님과 나 사이의 주제가 되면서 새삼 깨닫는 게 많다.
고등학생인 어느 날 나를 앉히고 '학비가 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낼 수 없어'라고 대학을 선택할 기준을 제공하던 아버지는 막내가 그 즈음이 되었을 때 이제 아들 하나만 졸업시키면 된다시며, 자신의 바램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과가 여기라면 어디건 가라'고 하셨다.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막내라서란 말을 나, 순진하게 믿었었던 모양이다.
그건 일면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결혼에 닥친 부모님의 태도는 너무 상투적이다. 예단이니 예물이니 없기로 했고, 회사의 집이니 가구는 같이 사기로 했다고 했을 때, 내가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나의 저축을 유지하기로 했을 때, 변한 것 없는 데도 이제껏 부모님의 재산이었던 것이 다른 집의 재산이 되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함께 집에 갔을 때 아버지는 '난 저 애를 남자처럼 키웠네'라면서 나의 '예의없음'과 '살림에 대한 무능'을 미리 밝혀 용서를 구했다. 그런 것이다, 인계하는 아버지. 나의 독립은 실재했던 게 아니다.
엄마가 아빠와 결혼할 때 '딸들도 대학을 보내야한다'고 다짐받은 것처럼, 난 내가 지금까지와 같이 이러저러한 일들을 할 것임을 이미 밝혔다. 내 딴에는 함께 사는 것처럼 결혼도 다른 관계를 바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큰 명절 둘 중 하나는 나의 집에 갈 거라고 했고, 당신의 성이 우리 엄마의 성과 같기 때문에 아이에게 그 성은 외할머니의 성이라고 말해주겠다고도 했다. 물론 내 성도 부치고 싶다고 말해 두었다.

그런 데도, 직면한 현실은 이런 것이다.
"엄마, 나 추석에는 여기 올 거예요"
"어? 동기간의 우애도 생각해야지. 나 작은 엄마 일찍 친정간다고 나서는 거 보면 솔직히 밉더라."
깜짝 놀란다.

달을 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사가 되는 것은 단지 거리 때문이 아니다.



티비 부인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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