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같이 살면 안 돼?


별족

내가 '그 여자네 집'에 각별한 심사가 되는 건 순전히 내 개인적 정황때문이다.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 여기 저기 내비치는 줄거리며 작가의 말들에서 '이미 있는 것을 없다고 하지 않겠다'라고 작가가 말하던 것은 동거였다.

드라마는 초반부에 결혼할 생각은 없이 동거-주말에만 하는 거였지만-하고 있는 영욱과 태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그 장면을 본 것은 여행지 민박집에서였는데, 나의 일행은 결혼없이 같이 살기로 한 사람이었다. '살아보고 결혼하겠다'고 공표하는 여자연예인도 있는데, 대사회적 인지도도 떨어지는 내가 같이 못 살게 무어냐, 하는 바람에 일이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같이 처음 간 여행지 민박집 텔레비전 안에서 영욱이가 태주와 같이 먹을 저녁거리를 사면서 '엄마, 응 선배언니네 집에서 자고 갈께'라고 전화하고 있었다.

'어, 어, 우리 엄마 주말연속극 볼텐데.'

뭐 거짓말을 할 생각은 아니고, 단지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부모님의 상상력은 얼마나 제한적이고, 자식에 대한 믿음은 얼마나 견고한지 닥치는 의혹들도 가뿐히 무시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위험하다! 하나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에야, 가능성 없던 아니 무궁무진하던 그 때 왜 '나 결혼 안할래' 혹은 '내 결혼이 늦더라도 뭐라 그러지 마'라는 식으로만 내 의지를 공표했을까, 왜 좀 더 상세하게 '결혼없이 애를 낳아 내 성을 물려주면 어떨까?', 혹은 '살아보고 결혼하면 어떨까?' 혹은 '내가 어제 만난 남자랑 오늘 결혼한다면 어떡할래'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후회한다. 가정에만 속하던 엄마에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반역은 단지 '비혼'이었던 걸까, 왜 난 다른 상황을 부모님께 대비시키지 못한 걸까? 정작 다른 딸을 기대하는 어머니에게 배신은 '결혼'이고, '동거'고, '이른 출산'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결혼이 여전히 너무도 견고해서 모두 말해버리면 등 떠밀려 결혼하게 될까봐 말할 수 없던 것 뿐이다. 게다가 난 알고 있다. 부모님에게는 결혼의 실패나 늦은 결혼만큼 결혼 전의 성행위도 너무 심각한 문제다. 대비책은 하나도 없이-살아보고 하는 것도 안 되고, 이혼도 안 되고-, 단 한 방의 완전무결을 원한다.

딸에게 '살면서 오직 한 사람과만 섹스하라'고 가르치려 하는, 그건 너무 노골적이라서 조심한다고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말라'고 되려 진짜 이상하게 말해버리는, 아예 성에 대해 말할 줄 모르는 부모님은 진짜 걱정스러워 '너 동거하는 거 아니니?'라고 확인조차 못 한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성교해서 낳았으면서, 아예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결혼하지 않은 딸이 성교한다는 건 확인하기에 무서운 사실인데, 이 정신나간 딸은 '하지?'라고 물으면 '응'이라고 대답할 것 같아서. 사실 나도 부모님이 그렇게 물을까 겁내고 있다.

이건 진짜 비극이다.

티비 부인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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