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 참을 수 없는 역겨움! - 드라마 푸른 안개


꼽사리 TV 부인 리건

0. 사전 설명
혹시 이 드라마 내용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봐 간단한 설명을 붙인다. 46세의 성공한 기업 이사이자 사랑스러운 딸의 자상한 아버지, 우아한 아내의 다정한 남편인 이경영이 어느날 느닷없이 부성애 결핍과 모친 혐오를 품고 사는 23세의 아리따운 스포츠 댄스 강사 이요원을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져버린다. 둘은 아내 김미숙과 남자친구 김태우의 고통, 그리고 쏟아지는 비난을 눈감아버리고 사랑을 쟁취하려 했으나, 긴긴 고뇌 끝에 이요원은 이경영 딸이 자신의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부친을 잃게 될까봐 사랑을 포기한다. 이경영은 빵빵한 처가에 눌려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렸던 상황에서 사랑을 통해 지위와 명예를 버리고 순수와 열정을 되찾는다. 한 비평(씨네21, 6월7일)은 이 드라마를‘불륜의 딜레마에 빠진 가련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며, 소유욕이 탄생시킨 결혼제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고, 사랑의 유무에 대한 가슴아픈 실험'이라고 감싸던데......

1. 간단한 변명
이 글에서 평하려고 하는 건 대본의 짜임이나 드라마의 완성도나 절묘한 화면 구성이나 배우들의 연기나 배경음악이 아니다. 그런 건 평할 능력도 없다. 다만.... 46세 유부남과 23세 아가씨의 사랑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즉각적이고 즉물적인 구토감이 느껴졌는데(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겨웠고 욕지기가 치밀어올랐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스스로 연애에 대해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의외의 반응에 대해 설명을 찾고 싶었다. 그 구토감의 원인을 찾아 헤매는 여행이 이 글이다.

2. 로맨스 그레이?
오호라. 저 멋지게 그려지는 아죠씨. 이경영은 아죠씨들의 이상형이 아닐까? 배가 좀 나온 거 빼면 인물 준수하고, 성격 자상/침착하며, 미모의 교양떵어리 아내와 귀여운 딸과 사이도 좋은 편이고, 빠방한 재산과 지위 또한 겸비하고 있다.
'로맨스 그레이'란 저런 아저씨를 두고 하는 소리? 그런데, 그런데 말이에요.... 내가 주위에서 두고 보는 아저씨들은 대체로 1년이 지나도 책 한 권 안 읽고 씨디 한 장 안 사며 영화 한 편 안 보는 철두철미한 無교양인이라서 도무지 도무지 대화가 통할 것 같지 않던데. 내 친구들이 마주치는 아저씨들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양복 바지 걷어올리고 다리는 있는대로 쩍 벌린 채 술냄새 술술 풍기며 자고 (여기까지는 그냥 매력없을 뿐, 무해하지만) 음흉한 눈길과 손길을 수시로 뻗쳐 와 피곤한 하루를 더 피곤하고 짜증나게 만들던데. -아마도 한적한 밤거리에서 술취한 아저씨가 맞은편에서 다가올 때 공포감을 느끼지 않는 여자 없을걸!-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연애는커녕 사무적인 인간관계조차 맺고 싶지 않은, 고압적이고 권위적이고 속물적이고 꽉 막혔으며 가부장질이나 일삼고 다니는 아저씨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나만 그런가?

3. 상투적이야-1
이 드라마에서 남성의 매력으로 제시되는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갖추게 되는 중후함, 안목, 부성애, 포용력, 어른스러움, 부티, 돈씀씀이가 뒷받침되는 마음씀씀이,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자상함 등등이다. 반면 여성의 매력으로 그려지는 것은 싱그러운 젊음, 상큼, 발랄, 깜찍, 천진, 순수, 바람 타고 흐르는 반짝반짝한 긴 생머리, 재즈 댄스를 출 때 같이 춤추는 듯한 땀방울 등등이다. 그리하여 중년의 남자와 젊다못해 어린 여자는 아주 잘 어울리는 짝패가 된다. 단적으로 여자를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중후하게 성숙한' 남자와, 남자에게 소유될 수 있을 만큼 '싱싱하게 성숙한' 여자가 대비된다. 성별 위계와 나이 위계와 권력 위계가 서로 맞물릴 때, 보편적이고 편안한 관계라고 인식되는 것이다. 반면에 여자 쪽의 나이가 약간이라도 많을 경우에는? 이 드라마에서 이경영의 아내로 나오는 김미숙을 상기하라. 그가 '사랑'이란 드라마에 장동건과 연인으로 나왔을 때, 극중에서 겨우 여덟 살 차이였는데도 김미숙이 암으로 죽는 것으로 처리하고, 난데없이 최지우를 장동건의 새 파트너로 등장시켰다. 남성의 시각에서는 성별 위계와 나이 위계와 권력 위계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서로 상치될 때 -여교수와 남학생, 여자 상사와 남자 부하, 연상의 아내와 연하의 남편, 젊은 사람의 초고속 승진 등- 불편함을 참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 이런 헛소리를 하던데,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익과 같아서 25 전까지는 불티나게 팔리다가 25를 넘기면 헐값으로도 팔리기 힘들다고! 물오른 버드나무가지처럼 연하고 부드러운 몸을 가졌고 귀밑 솜털이 뽀송뽀송하며 얼굴에는 잔주름 하나 없이 해맑은 상태, 또는 안간힘을 다해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젊은 여자들만을 이 사회의 가치있는 구성원으로 인정하겠다는 것. 그리고 연상의 남자의 관점에서, 남자에게 소유될 수 있는 연하의 여자를 바라보는 것, 너무나 상투적이다. 만일 남성이 연하라면, 상큼하고 깜찍하고 순수한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그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연하임에도 불구하고' 어른스럽고 고독하고 속깊고 터프하고 내면의 상처를 간직한 '남자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연상의 남자의 위상을 획득해서 여자를 소유할 수 있다고 그려진다. (전형적인 드라마라면 이런 에피소드 하나는 꼭 들어간다. 그 남자 : 그 여자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빼어난 능력과 지혜로 명확히 상황을 파악한 후 달려가서 구해준다. 구해 주고 나서 고마워하는 그 여자에게 여유 있는 미소를 보이며 '이 정도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넌 내 여자니까.'라고 낮은 목소리로 힘있게 말한다. 그 여자 : 그 남자가 위험에 처한 자신을 구하러 달려 왔을 때 후줄근한 모습으로 있는 것은 말도 안 되므로 언제나 청초하게 꾸미고 있어야 하고, 그 남자가 자신을 안고 달려갈 때를 대비해 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몸무게를 가져서는 안 된다. 위험에서 구해 준 그 남자에게 '어떻게 하신 거예요?'라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존경을 가득 담아 말한다.)

4. 상투적이야-2
어린 시절의 부성애 결핍으로 나이 많은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 이요원의 과거는 그렇게 되어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설명? 첫사랑의 남자를 잊지 못해 첫사랑의 남자와 닮은 남자를 필연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아버지와 너무 친해서 다른 남자를 못 사귀게 된다, 애인이 자신의 가장 친했던 친구와 눈이 맞아서 떠나버렸기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마음에 문을 닫는 데서 더 나가면 홧김에 아무 여자하고나 결혼해버리고 그 여자를 학대하게 된다, 사생아로 태어난 열등감 때문에 성격이 삐뚤어졌고 배다른 형제에게 복수를 하게 된다, 등등. 이런 '드라마같은' 설명은 진부할 뿐 아니라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인간이 그렇게 단선적인 경로를 따라 성장하게 되는가? 인간이 자판기 커피처럼 누르는 대로 결정되며, 주어진 조건대로 반응하는 존재인가?
한 사람이 성장하는 데 '부성애'든 뭐든 꼭 필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만일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자아를 가지게 되는 셈인지.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친아버지와 하나의 친어머니, 그리고 그들 모두와 함께 하는 양육되는 성장기가 주어질 수는 없다. (그리고 결손 없는 가정이라 해도 반드시 사랑으로 충만한 것도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편모, 편부, 또는 두 명의 여성, 두 명의 남성, 양모, 양부, 혈연관계 없는 어른에 의해 키워지는 것이 현실인데, 소위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다고 온전한 자아를 가질 수 없다고 설정하는 것은 어리석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게다가 아버지 부재의 모티프는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써먹어서 진부하다. 그 진부한 모티프를 이 드라마에서는 두 번이나 반복한다. 이경영 딸도 역시 아버지 부재에 공포와 분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요원을 만나서 아버지랑 헤어져달라고 말하기까지 하다니. 이 드라마의 작가는 딸들이 다 엘렉트라로 보이는가? 바람피우는 아버지에 대해 일단 실망하고 분노하는 것이 더 그럴 듯한 딸의 모습이 아닌가? 좀더 냉소적인 딸이라면 '나도 아빠같은 아저씨랑 연애할래'하고 대들 터이다.
친부와 함께 지내지 못했기 때문에 중년의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 라고 설명하면 굳이 그런 어색한 설명을 붙이지 않고서는 어떻게 드라마를 만들었을지...

5. 상투적이야-3
이 드라마를 불륜이라기보다는 일부일처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문제해결과정과 40대의 공허함과 사랑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라고 하는데, 나는 다른 평범한(통속적인) 불륜드라마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아무래도 모르겠다. 이요원이 예쁘고 날씬하지 않았다면, 이경영이 말단 평사원에 만원버스와 지옥철에 시달리는 빈티 나는 아저씨였다면 드라마가 성립했을까? 그럼 그 흔하디 흔한 '불륜' 맞잖아? 고차원적인 드라마의 화두,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꼼꼼하게 투시를 해서 보라는 말인지, 또 그렇게 작가와 PD의 의도대로 읽어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난 정말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이요원과 이경영 사이에 스킨쉽이 거의 없었고 섹스는 전혀 없었다는 정도가 다른가? '플라토닉 러브'를 그려서 사랑의 순수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영계 밝히는 현실의 40대를 생각해봤을 때, 저 점잔빼고 있는 이경영은 얼마나 속으로 애가 탈까 싶어 쓴웃음이 나왔다. 재즈 댄스 강사로 나오는 이요원의 육체는 훔쳐보듯 화면에 전시된다. 이는 "갓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싱싱한"(드라마 출연진 소개에 나오는 표현이다) 그의 젊은 육체를 욕망하는 이경영의 시선을 의미한다. 이렇듯 중년 남성의 욕망의 코드는 그대로 사용하면서, 도덕적인 잣대는 건드리지 않고 논란을 무사통과하기 위해 둘은 뽀뽀(키스도 아니다) 한 번만 하고 끝끝내 안 잔다. 둘만의 공간이 있고 서로 갈구하고 있는데도 안 잔다는 건 지독하게 비현실적이며, 드라마를 안전하게 소비시키기 위한 상업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싶었으면 결혼의 진짜 본질-가부장제 존속과 남성지배의 기반-에 대해 언급이라도 하고 지나가야 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남성의 불쌍함과 초라함에만 초점을 맞추었을까? 실제로는 가정에서 여성들이 훨씬 희생하고 고생하고 구박받고 구타당하고 자아를 잃어간다. 그러므로 현실과 비교하면 균형감각이 한참 떨어지는데 이 점을 슬쩍 넘어가기 위해 김미숙을 키워준다. (바로 아래의 교활한 설정-1과 연결된다.) 어쨌든 중년 남성들의 시청률은 꽤나 높았다고 한다. 그만큼 뭔가 그들의 삶이 공허하며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고 싶은 것은 맞다고 치자. 그 잃어버린 열정이 왜 꼭 젊은 여성과의 불같은 사랑으로만 표출되지? 어째서 다양한 가능성이 모두 하나의 길로 수렴되는가? 개인적 열정이 곧장 낭만적 연애로 치환되는 이것이야말로 常套 그 자체 아닌가!

6. 교활한 설정-1
탄복스러운 것은 교묘한 집안 설정이다. 김미숙의 집안이 빵빵하여 데릴사위처럼 들어간 이경영이 쫄아 살았다는 설정. 반대로 이경영 집안이 빵빵했거나, 아니면 두 집안이 비슷비슷했다면 어땠을까,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다. 이경영은 당장 불쌍한 조강지처와 딸을 버린 못된 놈, 나쁜 놈으로 공격받게 된다. 김미숙은 안 그래도 비참해지는데 원래 별볼 일 없었다면 얼마나 더 비참해 보이겠는가. 김미숙의 집안을 키워 주어, 이경영과 균형을 맞추어 줌으로써 이경영을 덜 나쁜 놈으로 만들고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중년 남성들에게도 마음 편히 시청할 여지를 주는 효과가 생긴다. 김미숙을 너무 비참하게 만들면 보는 사람들도 불편할 테니. 또한 '그래, 나 불쌍해. 마누라에게는 쥐어 살고 경제권은 빼앗기고 남자의 자리는 좁아져만 가고 이리저리 눈치봐야 하고. 아, 나의 갈 곳은 어디인가' 하는 남자들의 나르시시즘을 편안하게 이입할 수 있게 한다. 실제로 그들의 마누라는 불철주야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바쁜 애달픈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알량한 경제권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알뜰살뜰 쓴다는 전제가 있어야 비로소 주어지고, 조금이라도 '주부'의 본분에 어긋나게 돈을 쓰면 당장 비난과 함께 회수되는 꼭두각시 경제권인데 말이다.

7. 교활한 설정-2
이요원 나이가 스물 셋이라는 설정도 교묘하긴 마찬가지이다. 두 살만 어려도 미성년자잖아. 중학교 3학년도 고등학교 3학년도 아닌 대학교 3학년은 나이로는 성인임이 확실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원조교제'가 아니라고 시치미를 뚝 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앳되어 보이고 소녀 티를 벗지 못했지만 성인은 성인이라는 것이다. 글쎄, 미성년에서 살짝 벗어난 나이만으로 정말 성인일까. 이런 식으로 삐딱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남한 사회에서 중고등학생들은 입시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을 일단 미루도록 강요받고,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유예된 사춘기를 맞게 된지 않던가? 모친을 증오하고 부친을 그리워하던 어린 시절로부터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한 이요원은 더더욱 심성은 미성년자 아닌가? 흥, 과천국립현대미술관 가면 스물다섯까지는 청소년 요금 받는다!
나는 미성년자는 연애를 해서는 안 되고 보호받아야만 하는 존재이며 스물 셋도 사실상 미성년이기 때문에 이경영은 나쁜 놈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요원도 그랬다. "아저씨, 저 어린애 아니에요."라고. 하지만 어쩌랴? 드라마 속에서는 앳되게만 그려지는걸. 이경영이 회상하는(=뇌리에 남은 사랑스러운) 이요원은 천진난만하고 귀엽고 투명하고 청순한 모습이다. 마냥 어리게 그려놓고 어린애 아니라니. 또한 젊은 여자들을 애 취급하는 고정관념을 그대로 투영한 것 같아서 불쾌하다. 그들이 나나 내 친구들을 어리게 볼 때 이경영처럼 사랑스럽게 봐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자마자 반말을 쓴다든지, 진지하게 논쟁을 해도 귀엽다며 재잘거림으로 받아들인다든지, '아가씨 말고 어른 나오라고 해'라고 완전히 무시한다든지 하는 상황을 자주 겪는 것이다. 여자가 젊다=어리고 만만하다!

8. 확인 사살?
이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 나는 병원에 입원 중이었는데, 같은 병실에 입원 중이던 아줌마들의 남편들, 그 아저씨들이 나누던 대화는 마치 확인 사살과도 같았다. "저걸 보니까 우리도 (영계와 연애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더구만, 허허." 라는 말은 내가 처음 느꼈던 무의식적인 구토감이 근거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래, 저건 로리타 콤플렉스야.
나는 이요원처럼 예쁘지도 않고 풋풋한 젊음을 발산하고 있지도 않지만 (내 20대 중반의 삶은 그저 구질구질하고 칙칙하기만 하다. 나는 인상만 쓰고 다닌다) 그래도 드라마 속에서는 같은 나이대인 이요원과 동일시할 수밖에 없었는데, 동일시하면 곧 이런 느낌이 드는 거다. 아니, 나를 저런 중늙은이와 엮으려고? .... 어쩌면 연하를 좋아하는 나 역시 나이 많은 사람과 사귈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저렇게 일방적으로 욕망의 대상으로 제시되는 건 절대 사양하겠다. 확실히 20대 여성의 시청률은 바닥을 기었다고 하니,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가보다. 모든 설정을 약간만 비틀어도 이 드라마의 스타일 구겨진다. 이경영이 폼 나는 아저씨가 아니라고 하면 사랑에 빠질 리 없게 되고, 이요원이 스물 셋보다 적으면 원조교제가 되어버리고 스물 셋보다 많으면 풋풋하고 싱그러운 매력이 사라진다. 이요원이 뒤틀린 과거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사랑이 성립되지 않고, 김미숙의 집안이 부자가 아니었더라면 몹쓸 불륜이 되어버린다. 세련된, 그러나 진부한 불륜을 위해 교묘하게 탈각된 공간에서 그들은 사랑을 꿈꾸지만, 그러나 안개를 걷고 보면 들여다보이는 속셈이 나에게는 역겹다.

(이 글은 많은 고마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티비 부인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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