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물로 보지 마 ::

 

별 족

언제였을까, 마음이, 감정이, 이렇게 된 것은. 일전의 어느 순간에 나는 '당신은 그녀를 행복하게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부자 남자와 '그렇다면, 당신은 그녀를 꼭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해'라고 말하는 비통한 표정의 가난한 남자가 마주한 장면에서 '슬프고도 아름답군'이란 심상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장면을 보게 되면 '미친 놈들, 그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건 그녀 자신 뿐 이'라고 짜증을 낸다. 존재가 사라져버린, 공 튀기듯 넘겨지는 '그녀'라는 존재때문에 화가 나서는 허공을 퍽퍽치고 자다가 벌떡 일어난다.
그런 장면을 티비에서 보는 것은 지독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물'도 아닌 여자를 '물'로 보고 자기들끼리 '거래'를 마쳐버리는 미친 사내 놈들 틈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고 싫은 남자는 들러붙는 정말 돌아버리는 상황에 방치되는 여자를 맞닥뜨리는 거다. 그래도, 그 와중에도 그 여자가 '물'이 아니라서, '야! 나한테 물어봤어? 뭘 니들끼리 결정한 거야, 대체!'하고 소리라도 지르면 그나마 위안을 삼겠는데, 그렇지도 않으면 불쌍하고 가련한 시청자인 나는 맘 둘 데가 없어서 미워하라고 조작된 혹은 가끔 웃으라고 마련된 인물에게 정을 주어서는 보고 싶은 것만 모아 전혀 다른 드라마를 한 편 보게 되는 거다.

그 안에 지킬 게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존재다. 있지 않거나, 의사가 별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 존재. 모든 말을 시작할 때 첫머리에 '네 생각이 어떻든지 간에'라는 말을 앞에 숨겼지만 붙여서 대접받는 존재....
이미 끝나버렸지만, '진실'을 보면서 말한 대로라면 스무번도 더 죽고, 더 돌아버린 거다.


내 저기서 최지우가 이렇게 한다면 미칠거야, 정말. 하는 찰라에 그녀는 그렇게 한다. 마구 찡그리며 컨닝을 시켜줄 때, 이상한 안경을 쓰고 대리시험을 볼 때, 영락없는 스토커인 류시원을 좋아하게 될 때, 인사가는 정장차림으로 손지창의 승용차를 타는 걸 볼 때 난 이미 '그러면 미치지'라고 말해버린 다음이었다.
'바보냐'라고 말하고 말지만, 도대체, 뭐야. '(네가 뭐라고 생각하건) 보여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보여주고, '(네가 어떻게 생각하건) 대리시험을 봐줘'라고 말하면 대리시험을 보고, '(네가 어떻게 생각하건)난 너를 사랑해'라고 끈덕지게 말하면 또 사랑하고, '(네가 어떻게 생각하건)타'라고 말하면 타고... 막판에 '사랑하는 남자'라는 '물로 보인' 여자에게 거의 유일하게 허용되는 고집의 원인이 없었다면 어쩔뻔 했어? 그렇게 맥아리 없이 죽어버리던가, 용서하든가 둘 중 하나잖아.
그녀를 마구 헐뜯으려다가 내심 미안해져서, 상황이 이러하였다고 변명을 마련해주려다가 마는데, '고집'이란 게 없으면 물로 보이기 십상이고, 상황에 대한 변명이 많으면 즉 상황에 따라 꺽인다면 건 이미 '고집'이 아니라고 조금 모질게 연민을 쳐낸다. 정당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고집'을 만든 다음, 모질고 질기게 지키고 말하자, '날 물로 보지 마!'.



티비 부인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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