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딸 :
밑에 있다 시피 장여경씨가 번역한 수잔헤링의 논문입니다.
이번호에선 수잔헤링의 글이 2편 소개되는데요.
그중 더 많이 읽힌(?) 글인 것 같아요.
두 글을 읽고 그 글들에서 분석되고 조사된 형태와
달딸 게시판에서 나타나는 게시판 논의 형태의 유사성이 눈에 들어오실 겁니다.
이 수잔헤링의 글은 이미 몇년이 지난 것이고, 그녀가 조사하고 분석한
통신 공간이 우리의 공간과는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것 같았던 우리에게는
그 유사성이 참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이 두편의 글에 언급된 행동양상들을 달딸게시판의 모습에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하게 적용할수는 없겠지만,
그 유사함으로 인해 헤링의 글은 그동안 게시판의 논쟁들을 보면서
우리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자 :
여성의 온라인 이용행태에 대한 에세이를 번역할 기회가 마침 생겨서 소개합니다.
짧은 영어실력을 용서해 주시고,
관심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원문은 다음의 책에서 가져 왔습니다.
Susan C. Herring, "Gender and Democracy in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in Rob Kling(ed), Computerization and Controversy, V-C, pp.476-489 (1996).




■ 컴퓨터 커뮤니케이션(CMC)에서의 성과 민주주의


장여경    

Susan C. Herring

민주화에 대한 요구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성차를 드러내는 연구들이 상당히 진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CMC에서의 성차에 대한 질문은 최근 막 제기되었다. 이는 새로운 기술 을 둘러싸고 있는 전반적인 낙관주의적인 기류에 상당부분 책임이 있는데, 이를테 면 특히 CMC는 본래적으로 다른 매체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라는 믿음 따위가 그것 이다. 그래서 철학자나 사회이론가들은 CMC를 그 덕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정보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으로 보았으며, 궁극적으로 좀더 민주적인 사회로 이끄는 것으로 보았다. 교육자들은 컴퓨터 네트워크가 학생 간의 창의성과 협동을 기르며 학생과 교사 간의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장벽을 걷어주는 데 도움 이 될 것이라고 점쳤다. 페미니스트들조차도 성이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단서 의 부재로 여성과 남성 간에 좀더 평등한 커뮤니케이션이 보장될 것이라는 점에, 그리고 여성들이 스스로 전자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새싹을 키울 수 있는 기회 라는 점에 고무되었다.
   민주주의란 개념은 두 가지 핵심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에 대한 접근권과 신분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 개념들은 하버마스가 진정한 민주주의 담화를 위해서 관철되어 야 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바 있는 형식적인 '이성의 법칙'(rules of reason)에 나 타난다.

1. 말하고 행동할 능력이 있는 모든 주체들은 담화에 참여할 수 있다.
2a. 모든 사람은 어떤 주장에라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2b. 모든 사람은 어떤 주장이라도 담화 과정 속에 소개할 수 있다.
2c. 모든 사람은 그의 태도, 욕망, 요구를 표현할 수 있다.
3. 어떤 발언자도 내부의 혹은 외부의 강압에 의하여 (1)이나 (2)의 권리를 제지 당할 수 없다.

   하버마스의 세 번째 법칙은 사회적 차원의 중요성을 제기한다. 진정 민주적인 담 화에서라면 검열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개방을 추구하는 한, 평등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민주화의 가능성이 보인다.
   CMC가 배태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민주성을 촉진할 것을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나 이용자들은 CMC의 몇 가지 특성을 주장해 왔다. 그중 하나는 접근가능성 (accessibility)이다. 대학이나 다른 기관들을 통해서, 매우 저렴하거나 무료의 비용으로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권을 획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접근권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온라인 도서관 카탈로그, 공공DB(Public domain databases) 등 과 같은 정보의 취득을 용이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의견을 개진하고 동호회나 토 론 등 전자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 다. 이론적으로,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CMC의 두 번째 특성은 사회적 탈맥락화(social decontextualization)이다. Graddol과 Swann(1989), Kiesler 외(1984)에 의하면, 이용자(contributors)의 정 체성은 실제 이름, 성별, 거주지와는 관련없는 로그인한 아이디와 회신처(return addresses) 외에는 드러날 필요가 없다. 심지어 CMC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메세지에 담기는 사회적 지위에 관한 단서들(액센트, 필체나 목소리의 품위, 성 별, 외모 등)을 숨긴다. 이런 특성이 이 미디어를 덜 개성적으로 만드는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전통적으로 낮은 사회적 지위의 개인들이 다른 이들과 똑같이 참여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이는 즉, 다소간 익명으로, 메세지의 형태나 송신자의 정체성보다는 메세지의 내용 자체에 방점이 찍힌다는 것을 뜻한다.
   세번째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담화형으로서, CMC는 협정에 의한 합의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상의 합의(conventions of use)를 수립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로 이용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과장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에게 대단히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게 한다. 이런 특성은 Bolter(1991), Landow(1992), Nelson(1974)와 같은 하이퍼텍스 트 이론가(hypertext theorists)들이 CMC를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위계적인 패 턴을 파괴할 가능성이 있는 '민주적'이고 '무정부적'인 것으로 보게 했다.
   네 번째는 전자 네트워크에서의 명백한 검열은 아직 드물다는 것이다. 검열은 대 체로 내용보다는 비속어(vulgar)를 선별적으로 차단하는 것에 더욱 신경을 써 왔 다. 어떤 온건한 토론실에서도 모든 주장을 수용한다. 이론적으로 모든 개개의 이 용자들은 남자건 여자건 다른 이들이 그들의 메시지를 읽거나 응답하는데 공평한 기회를 가지고 있다.(하버마스의 세 번째 '이성의 법칙')
   이상의 특성은 모두 함께 CMC의 민주적인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 네 트워크 상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은 얼마나 민주적인가? 특히, 이는 Graddol과 Swann(1989)이 주장하듯 성평등의 증가를 보여주는가?

연구 결과의 요약

   이 연구는 우선적으로 지난 몇 해 동안 어학 포럼(LINGUIST, 어학관련 주제토론 실)과 MBU(Megabyte University, 컴퓨터와 글쓰기에 관한 비공식적 조직)라는 학 술 포럼에서의 남성과 여성 참가자들에 관한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Herring(1992), Herring(1993), Herring,Johnson, and DiBenedetto(1992) 참조)
   어학 포럼과 MBU에 대한 참여 연구에는 세 가지 방법이 쓰였다. 첫 번째 것은 민 속학적 관찰로, 연구자는 직접 등록하여 일년 정도를 활동하면서 이용자, 최근 논 의되는 이슈, 그 밖의 관련 배경 등 정보를 알아 나갔다.(CMC는 특히 이런 형태의 데이타 수집에 아주 좋은데, 관찰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관찰자의 패러독스'를 피할 수 있다.) 둘째, 각각의 포럼에서 두 가지 주제 토론에 올라온 텍스트들에 대해 문법이나 문체의 패턴에 관한 담화 분석(discourse analysis)을 수행하였다. 다음에는 그 사용 패턴을 이용자의 성별과 연관을 지었는데, 여기서 이용자의 이 름이 서명이나 패스에 드러나 있는 경우에는 이름과 성별을 그대로 매치시키고, 드러나 있지 않은 경우에는 회원 명단을 조회했다. 마지막으로, 연구자는 각각의 포럼에 두 가지 전자적 분석을 수행했는데, 첫째로 이용자들에게 그들이 가입해 있는 포럼에서의 특정한 토론에 대한 반응을 요청했고, 그들의 성별, 직업, 컴퓨 터 친화/능력 정도와 관련한 배경 정보를 요구했다.
   이렇게 취합된 정보는 양적, 질적으로 분석되었고 그 결과는 남성과 여성 이용자 간의 의미 있는 차이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용의 양

   학술적인 CMC에서 가장 크게 나타나는 성별상의 불균형은 남성 이용자가 여성 이 용자들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여성 회원은 어학 포럼에서 36%, MBU에서 42%이 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치보다도 훨씬 적은 비율로 참여했다. 분석을 행했던 두 가지 주제토론 중에서 한가지는 성차별과 관련한 주제였고 다른 한 가지는 광범위 하게 이론적인 주제였는데 '성차별' 토론은 다른 주제보다 훨씬 더 여성들의 참여 율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참여는 30%에 불과했고, 이론 토론에서는 16%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평균적으로 여성의 글은 남성의 글에 비해, 성차별 토론에 서는 한배나 한배 반 정도, 이론 토론에서는 두 배 정도 그 길이가 짧았다. 짧은 글은 송신자의 성별을 꼭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긴 글은 틀림없이 남성의 것이었 다.
   이런 불평등이 무엇을 말하는가? 남성 이용자가 여성의 이용을 방해하고 있는 것 은 아니며 MBU에서는 오히려 여성의 참여를 촉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성 이용 자가 자신이 올리는 글에 대한 반향에 있어서 참여를 꺼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 다. (인터넷과 같이) 여럿의 참가자가 거의 동시에 의견을 올리는 미디어에서 (자 신의 글이)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이용자들의 인정이나 반응에 달 려 있다. 여성이 올리는 글은 남성의 글에 비해서 평균적으로 일관되게 더 적은 횟수의 반응을 받았는데, MBU의 성차별 토론에서는 여성들이 70%의 반응을 받았던 데 비해 89%의 남성의 글이 반응을 받았고 어학 포럼에서 그 격차는 더욱 컸다. 흥미로운 것은 남성에 대해 반응하는 사람은 남성 만큼 여성도 많았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여성의 반응은 전체 반응 중 가장 적은 비율을 차지했는데, 여기서 함축하고 있는 사실은 아마도, 포럼 안에서 남성의 더 우월한 위치일 것이다. 반 응의 불평등한 비율을 유지한 채로 여성이 시작한 주제는 전체적인 토론으로 끌어 올려지지 못했고, 그래서 여성은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발언을 포럼에 제 기하는 데 어려움과 좌절을 경험한다.
   연구 기간 동안 여성의 참여가 활발했던 경우는 세 번 있었다. 한번은 MBU의 성차 별 토론 중에 '남성의 문학'(Men's Literature)을 특별 코스로 제정하는가를 두고 남성과 여성이 양분되었던 것이었고, 두 번째는 어학 포럼에서 로드니 킹 구타 사 건에 대한 Souljah 수녀의 발언에 대한 해석에 대한 토론에서였고, 세 번째는 어 학 포럼의 성차별 토론 중에 'dog'라는 단어가 우선적으로 여성과 관련이 있는지, 아니면 양성 모두에게 불쾌한 사람에 대한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었다. 이 모든 토 론에서 하루 이틀 사이에 전체 참여자가 50%에 이를 만큼 여성 이용자의 참여가 동일하게 증가했는데, 이런 증가에 대한 반응 또한 동일했다. 소수의 남성들이 토 론에 대해 비방하고 몇몇은 탈퇴하겠다고 윽박질렀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여성들 의 참여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없었다. MBU에서는 토론의 톤이 너무 '악의적 '이라는 것이었고 어학 포럼에서는 주제가 너무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다. 중재자 들이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토론은 갑작스럽게 죽어버렸다. 물론 남성들이 여성들 의 참여 빈도보다 내용에 반응했을 가능성은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역시 연구의 나머지 기간 동안 여성들은 남성 만큼 참여하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이후 탈퇴하 겠다는 소리를 공개적으로 꺼내지 않았다. Spender(1979)는 이를 두고 여성들이 대화에 반 정도 참여하면 남성들은 불편함이나 위협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남성 들은(혹은 적지만 여성들도) 여성이 대화 시간(the time)의 30% 이상을 말하기 시 작하면 남성보다 많이 말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런 현상은 Spender나 CMC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적 상황(public settings)에서의 남녀 혼합 대화에서 좀더 일반적이다.
   이런 해석은 몇 달 뒤 MBU에서의 남성 문학에 대한 조사 결과가 뒷받침해 준다. 여성의 일시적인 참여에도 불구하고, 남성 문학에 대한 논쟁에서 남성들이 훨씬 더 성공적이었다. 남성들이 더 많이 의견을 개진했고 더 많이 반응했으며 토론에 서 더 좋은 주제들을 제안했다. 뿐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도 그들의 주장이 궁극적 으로 관철되었다.('남성 문학' 코스가 생겼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중에 MBU 회원 들의 토론 참여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을 때, 남성 참여자들은 여성참여자보다 훨 씬 더 불만족스러워했으며 여성이 논쟁에서 '승리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반면에 여성들은 어느 편도 이긴 것이 아니라고 했다. 여성이 비율상의 평등을 시 도할 때 남성의 불만이 발생하고 토론이 붕괴하는데, 여기서 여성들에게는 좀 적 게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한다. MBU의 사건이 있은 뒤에 여성의 참여는 전체의 15%로 다시 떨어졌으며 토론은 계 속되었다. 다소 우울한 결론은 여성들에게 '정상적인' 것은 남성보다 적게 참여하 는 것이며 실질적인 평등의 방향으로 (참여수가) 증가하는 것은 자유로운, 심지어 학술적인 부문에서도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주제

   여성은 토론의 어떤 주제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참여하는데, 이는 특히 추상 적인 이론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어학 포럼에서 불특정한 2주간, 서로 다른 주제의 참여 방법에 대한 선호도 순위를 매겼을 때, 남성은 주제의 토론에 가장 집중했고 다음은 정보의 습득처, 그 다음에는 질의나 개인적인 토론이 뒤따랐다. 한편 여성은 어학이 아니라 어학자에 대한 이야기 등의 개인적인 토론에 가장 집 중했고 그 다음이 다른 이들에게 조언이나 정보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런 주제 형의 선호도 순위는 도식적으로 아래와 같이 나타낼 수 있다.

남성 : 주제 > 정보 > 질의 > 개인
여성 : 개인 > 질의 > 주제 > 정보

   이론적인 주제에 대한 토론을 선호하지 않는 것은 MBU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여성학 포럼(WMST : Women's Studies List)은 여성이 운영하고 회원의 88%가 여성 이었는데, 여성들이 서로간에 거의 배타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토론은 배 제되었으며 조언이나 정보를 구하는 메시지가 지배적이었다. 개인적인 토론 보다 도 훨씬 더 학술적인 전문성에 관심들이 있었다. 질의에 대한 답변은 나중에 공개 화가 되더라도 일단 개인적으로 보내질 것이 요청되었고, 포럼을 정보에 대한 토 론을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정보의 제공처'로 여기는 운영자에 의해 토론은 금지 되었다. 참여자들은 메시지보다는 질의의 형태로 참여함으로써 여성학 포럼의 규 율에 따라갔고, 회원이 꾸준히 증가하는 활발한 포럼으로서 여성학 포럼은 많은 여성들이 CMC에서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정보를 구하는 데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 는 것을 증명한다.
   동시에 이는 여성이 주제 토론을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피해 가는 것 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주제 토론은 여성학 포럼에서 정기적으로 발생했는 데 운영자나 자원자들이 그때마다 제한했다. 몇몇 회원은 재미있는 주제들이 검열 당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운영자는 제한적인 토론을 피하고 "고상하게 상 정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토론이 논쟁을 하고 싶어하는 반갑지 않은 사람들을 부를" 공포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장에서는 이런 공포가 생뚱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참여 방법

   여기서 분석한 모든 CMC는 학술적 담화에서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성차가 나타났으며, 수사학이나 언어전략 상에서만도 어떤 메시지를 남성이 썼는가 여성이 썼는가가 종종 드러났다.
   나는 어학 포럼에서 관습적으로 '남성 언어'에 대당하는 것으로서 '여성 언어'로 여겨지는 문체들을 특성화한다고 가정되는 몇 가지 특성들을 규정했다.

(Table 1)
여성의 언어 / 남성의 언어
------------------------------------------------------
약한 주장 / 강한 주장
변명 / 자기 홍보
명백한 정당화 / 전제
질문 / 수사적 질문
개인 근거 / 권위적 근거
타인에 대한 지원 / 타인에 대한 도전, 유머, 빈정거림

   성에 따른 이용자들의 이런 특성을 수량화하기 위하여 나는 어학 포럼의 두 가지 주제토론에서 261개의 메시지를 분석했고 각각의 메시지를 Table 1의 특성의 발생 에 따라 코딩하였다. 그 결과는 여성의 언어 특성은 실제로 여성에 의해 많이 수 행되고 남성의 것은 남성에 의해 많이 수행된다는 것이었다. 여성들의 글의 68%가 여성적 언어의 특성 중 하나 이상을 포함했고, 남성은 31%를 포함했다. 반면 남성 적 언어의 특성은 남성들의 글에서는 48%가 드러났으며 여성들의 글에서는 18%에 머물렀다. 대다수의 여성들의 글(46%)이 남성적 언어와 여성적 언어의 혼합이었지 만 남성들의 글은 14%만이 혼합적 성격이었다. 이는 남성들이 여성보다는 뚜렷한 특성(남성인지 여성인지 혹은 중성인지)을 유지하고 때에 따라 구사하는 것이 더 욱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참여 방법에 관해서도 말해주는 것이 있다. 각 토론실에서의 토론은 자신들 에게 주의를 집중하기 위하여 남성적인 언어를 남용하는 소수에 의해서 주도되어 가는 경향이 있었다. 내가 '당사자적 수사'(adversarial rhetoric)라고 부르는 이 런 남용은 지식의 과시로부터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이를 제압하기 위한 강력한 주장에 이르기까지를 포괄하고 있었다. 어학 포럼에서의 두 토론실을 분석했을 때, 참여자의 4%와 6%가 상당히(한 사람을 빼놓고는 남성) 지배적인 당사자적 수 사를 발생시켰다. 이 4%와 6%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글들을 썼으며(전체적으로 33% 와 55%, 참여자 평균의 8배 이상) 결과적으로 참여 방법에서 뿐 아니라 참여의 양 도 지배했다.
   McCormick과 McCormick(1992)이 행한 지역 네트워크에서 75%가 남성인 재학생들의 전자우편 이용에 관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발견되었다. 4.7%가 네트워크와 전자우편의 주이용자였다. 이런 상황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의 내용과 목적이 전문 학술 토론실에서의 것과 상당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소수자가 담화 전반에서 이런 스타일을 관철하는 것이 보인다.
   지배적인 소수에 의해 부정적으로 영향받는 다른 참여자들의 범위(그들이 누구인 가 하는 점)는 그들의 성에 달려 있다. 어학 포럼 회원들은 '주제' 토론 이후에 양성에서 각각 73%가 토론에서의 당사자적 톤에 위협감이나 짜증을 느꼈다고 대답 했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은 이런 부분에 있어 다르게 반응했다. 남성들은 학술적 인 의사 교환으로 생각하고 넘긴 데 반해 많은 여성들은 깊은 혐오를 드러내고 이 런 류의 의사 교환을 피하고자 했다. 여성학 포럼의 운영자가 신랄한 의사 교환을 피하려고 했던 이유가 여기서 나타난다. 어째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당사자적 의 사 교환에 대해서 더 깊은 혐오를 나타내는 것일까? Sheldon(1992)는 이런 혐오가 어린 시절부터 주입된 성역할의 문화적 규범으로 설명된다고 한다. 남아들이 직접 적인 대결을 하도록 격려되는 반면 여아들은 '예의바르고' 양보하도록 배운다. 그 결과로 언어적인 적극성은 여성들에게 남성들과는 다른 의미를 띄게 된다. Coates(1986)에 의하면, 여성은 남성이 대화의 상황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 개인 적으로 화를 내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결론

   그 민주적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학술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남성과 여성은 학술 적인 CMC에 평등하게 참여하지 않았다. 그보다, 소수의 남성들이 자기 홍보와 당 사자적 전략을 통해서 담화의 양이나 수사를 지배하였다. 게다가 여성이 공평하게 참여하려고 할 때, 그들은 그들을 무시하거나 참여를 비정당화하려는 남성들의 반 응에 검열당할 것을 각오하여야 한다. 여성이 직접적인 대립에 불편함을 느끼도록 하는 사회적인 조건 때문에 여성은 이런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고 결국 참여를 회 피하게 된다. 그래서 하버마스의 민주적인 담화를 위한 조건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미디어가 모든 이들에게 네트워크에 있어 참여하고 발언할 접근권을 평등하게 허용한다고 하여도, 참여자들이 속해 있는 거대한 커뮤니티는 명백하거 나 암묵적인 검열로 그 가능성을 막는다. 학술적인 CMC는 민주적이라기 보다는 권 력과 위계질서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컴퓨터 커뮤니케이션 기술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이는 이 사회 전체에 보다 전반적으로 지속되어 온 위계질 서의 패턴과 남성 지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좀더 민주적이 될 수 있을까? 익명성으로부터 연유한다는 사회적 지 위로부터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의 메시지가 서명을 담고 있거나 그의 아이디를 통해 성별에 대한 유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성립하지 않는 조건이다. 이런 'genderlects' 하에서, 익명성을 유지한다고 성차별이 사라질 것인가는 의문 이다. 대학 총장이나 수위의 사회적 지위는 그들의 무의식적인 스타일이나 말씨의 선택 속에서 커뮤니케이션되는 것이고, CMC 또한 참여자의 성에 대한 미묘한 내포 를 포함한다.
   둘째, CMC에는 이용상의 조건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므로 좀더 무제한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CMC의 비인격적인 (관계적) 성향에 의한 것인 듯 하다. 그러나 이 런 가정은 쉽게 도전 받는다. 관찰에 의하면 학술 포럼 회원들은 낯선 이들을 목 표로 글을 올리지는 않았다. 그들은 직업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거나 그런 관계를 발전시킬 생각이 있는 이들과 교류한다. 이는 무제한성을 감소시키기 보다는 증가 시키는 것 같은데, 그들의 직업적 명망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 면 여기서 다루고 있는 CMC는 Kiesler 등이 실험적 상황에 한정했던 CMC와는 다르 다. Kiesler 등의 실험 설계에서의 세 가지 요소 - 익명성, (메시지의) 동시성, 동시적인 회합 - 는 이 연구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았고, 이는 이 연구가 대상으로 삼았던 대상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검열의 문제로 돌아온다. 외부적인 검열이 존재하지 않는 것 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CMC에서의 여성 참여자들은 외적 내적으로 억압받는다. 외 적으로는, 위협적인 전술로 담화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남성 이용자들과, 여성들이 평등한 비율로 참여하려고 시도할 때 여성들의 참여를 무시하고 훼손하는 남성 이 용자들에 의해서 검열 받는다. 그보다 덜 외적으로는, 당사자적이지 않은 남성은 같은 취급을 받고, 결국 폭력적인 방식으로 참여하는 사람을 아무도 제지하지 않 는 상황에 의해 검열 받는다. 당사자성이 검열의 파괴적인 형태가 되는 것은, 여 성은 적게 말하고 적게 논쟁하고 단정적이지 않은 태도를 유지하라는 내면화된 문 화적인 기대들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조사의 촛점은 아니었지 만, 여성들은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주로 남성 지배의 영역이라는 기대로 인해 CMC 에 참여할 용기를 더욱 잃는다. 어학 포럼과 MBU에서 "컴퓨터 테크놀로지에 대해 얼마나 편안히 여기고 활용 능력을 발휘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여성 응답자들 은, 남성 이용자들과 같은 햇수의 사용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컴퓨터 사 용에 대해 자신 없어 했다. 이런 류의 검열의 내면화는 좀더 깊은 사회적인 병리 를 반영하며, 기술이 그 자체로 이를 치유할 것이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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