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젠더, 그리고 여성의 해방




: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항하는 주장     


-----------------------------------------------------------------------Ann Oakley

개요

   현대의 많은 페미니스트 담론에서, "과학"과 "젠더"의 개념은 여성의 상황을 분석하기 위한 도구로서 그리 믿음직하지 않다.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논의는 지식을 "양적"이고 "실험적" 방식으로 찾는 "과학적 접근법"을 강조하는 실증주의적 성과 전반을 비판한다. 개념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구분과 구별되는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젠더 역시 포스트 모던 이론에 의해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이 글은 페미니스트 담론 내에서 과학과 젠더 개념을 복원(rehabilitating)하는 것이 여성의 실질적인 해방을 위해 바람직한 것임을 주장한다. 여성의 건강에 대한 우려와 관련된 두가지 현재적 문제 - 자궁경부암 검진(cervical cancer screening)과 호르몬 대체 요법 - 가사례연구로서 조사된다.

서문

   "과학"과 "젠더"는 페미니스트 담론 내에서 어떤 적절하거나 유용한 지위도 갖지 못했던 개념들이다. 과학은 젠더 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동안 페미니즘적 개념으로서 그 유용성을 의심을 받아왔다. 현대의 페미니스트 논쟁 내에서, 과학과 젠더라는 '낡은' 관념들은 다른 방식으로 - 예를 들면, 생물학적 성차(e. g., Irigaray, 1985)나 인식론(e. g.,Code,1991)과 관련된 이슈에서 - 다시 재구축되고 있다.
   이 글은 과학과 젠더 개념의 복원이 페미니즘과 여성을 위해 중요한 진전의 계기를 제사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두 개념이 가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드러나는데 : (a) 우선, 여성의 실질적 해방에 기여하는 제 2세대 페미니즘의 본래적인 의제를 부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며, (b) 이 개념들이 이데올로기적 구조로서 젠더와, 지식 그리고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학문적 접근법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과학과 젠더에 대항하는(against) 현대 페미니스트 논쟁의 배경과 맥락에 대해 논한 후에 이 개념들이 여성에게 지속되는 억압적 특성들을 대하는데 있어서 그 유용성이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조망하기 위해 여성의 건강에 관한 사례를 검증해 보도록 하겠다.

과학

    제 2세대 페미니즘은 사회적 집단으로서의 여성의 이해에 그리 부합되지 않는 과학에 대응하며 이어져왔다.(Rose, 1994). 더욱이 이것은 페미니즘의 정치적 가치, 그리고 특히 여성에 관한 것 이라기 보다는 여성을 위한 것이 되고자 하는 페미니스트 "사회" 과학 구조와 동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양화", "객관성", 그리고 "통제"를 강조하는, 논리적 실증주의와 깊이 관련되어 왔다.
   페미니즘과 과학 사이의 적대 관계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것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변증법적 관계, 그리고 지식과 다른 방법론적 전통의 위상에 대한 오랜 논쟁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과학이라 부르는 것은, 우선, 인간세계, 우주, 그리고 신에 대해 알기 위한 시도들 중 오랜 전통을 지닌, 이성, 경험, 이론, 논쟁을 사용하는 합리적 연구(enquiry)의 산물이다. 18세기에 철학과 과학은 경험을 넘어서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는 흄 학파와 칸트 학파의 주장의 영향 하에 서로 분리되어 버렸다(Manicas, 1987). 그 후, 연구실에서 흰 가운을 입고 실험을 하는 남성의 이미지와 결합되었음에도 과학은 점차로 경험적이고 체계적인 것으로 제한되었다 (Schiebinger, 1989).
   사회과학은 한편으로는 과학적 방법 및, 과학의 이미지 다른 한편으로는 실질적인 과학자들의 실천을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Lepenies, 1988). 여타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도 특정한 사회적, 물질적 맥락 내에서 작업하고, 지식을 얻기 마련이었다.(Gould, 1981: Kuhn, 1962). 그러나, 사회과학이 과학과 허구(fiction) 사이에서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투쟁하고 있는 동안, 과학적 접근 방법은 체계적이고 경험적으로 뒷받침된 연구라는 단일화된 특성을 갖게 되었다. 과학이 여타의 것과 구분되는 것은 주제가 아니라 방법론에 있어서 였다. (Pearson, 1892 : see also Cohen, 1994). 사회과학은 사회의 자연과학이었다. 많은 사회 과학자들은 또한 자연과학자였고, 그 역도 성립되었다. (McDonald, 1993).
   학문적 접근법 상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이러한 인식론적 상호작용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자연과학의 연구 방법 특히, 윤리적으로 의문이 제기되는 동물과 인간 실험은 과학과 집단으로서의 여성 간의 이해 관계 상 대립을 시사했다. 19세기 후반까지, 연구실에서 남성이 인간과 물질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고 행하는 실험적, 수량적 방법이라는 의미에서의 과학은 명백한 여성의 적으로서 출현하였다. 여성과 자연은 남성적 과학적 응시(gaze)의 대상으로서 동일시되어 왔다.(Jordanova, 1989). 그리하여 과학은 여성의 신체와 정신에 대하여 "억압적 허구"를 전파시키는 주류 문화의 작인으로서의 현대적 특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페미니즘과 과학사이의 관계는, 제 2세대 페미니즘의 학문적 발전에 따라, 그리고 샌드라 하딩(1986), 낸시 하트삭(1987), 힐러리 로즈(1994) 와 같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적 관점의 존재, 그리고 이것과 그들의 작업 속에 세계에 대한 여성의 지식의 기초와 타자들(others)을 위한, 타자에 대한 애정을 중요시하는 과학의 필요성을 주장함에 따라 더더욱 복잡해졌다. 과학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사회과학의 인식론적 기초인 실증주의에 대항하는 일련의 다른 입장들과 결합하게 된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 이래로, 이러한 대안적 입장들의 중요성은 커지게된다. 그 결과로 서로 反한다기 보다는 논쟁 상 경쟁 관계에 서게되는 두 개의 방법론적 패러다임이 성립된다(Guba, 1990). "질적" 패러다임에 따르면, 진실한 사회과학은 오직 다양한 주관성을 존중할 수 있는 상대적이고, 성찰적인 학문적 접근법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반면, "양적" 패러다임은 타당성, 신뢰성, 객관성, 그리고 진실이라는 前 포스트모던적 사상을 주장하고 있다. (Bryman, 1988). 방법론에 대한 페미니스트 논쟁은 질적 방법론에 권위를 부여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페미니스트 사회과학 연구에 있어서 헤게모니적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페미니즘 양자는 근본주의(foundationalism), 즉 과학적 방법의 보편성과 유일성을 거부한다(Curthoys, 1997). 실제로는, 지식 그 자체가 포스트 모더니스트와 페미니스트 비판 상의 쟁점이다. 대부분의 현대 페미니스트 인식론에서는 지식은 항상 "지엽적이고 열려있으며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Luke & Gore, 1992, p.7). 페미니스트 이론은 낸시 프레이져(1995, p. 157)가 "정신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인식론적 문제를, 문화적으로 구조화된 사회적 의미들은 동등한 비중과 중요성을 지닌다"는 담론상 문제에 적용시켰을 때 방향이 전환되었다. 이것은 연구에 있어서, "영구적으로 중립적인 기반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효과적인 의문"을 던진다 (p.157).
   이런 방법론적 패러다임의 충돌의 이면에는 방법론 그 자체가 젠더화된 데 따른 길고 복잡한 역사가 놓여있다. 즉, 질적 그리고 양적/실험적 패러다임과 이들과 여성/페미니즘 그리고 남성/가부장제와의 각각의 결합이라는 이원론은 해명되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지식과 학문적 접근법의 젠더화는 페미니즘이 공격할 사례 - 과학, 양화, 실험법을 주요한 적으로서 확인하는 계기들 - 를 제기한다 (Oakley, 1997a).
   다시 말하면, 과학, 사회과학, 방법론의 역사를 가부장제 그 자체를 생산해 내는 문화적, 물질적 과정과의 관련선 상에서 이해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권력을 제도화하는 체계적 방식과 관련된 관념적 표상들로서 만들어지고 유지된다는 사실도 이런 이해의 틀 안에 있다. 이는 젠더라는 개념이 여성학에 있어 유용한 분석적 도구가 되는 다양한 방식 중의 하나이다.

누가 젠더를 필요로 하는가?

   모든 혁명적 운동은 그 자체의 정치적 언어를 생산해 왔고, 젠더는 제 2세대 페미니즘을 위한 핵심적인 정치적 개념을 제공하였다(Franklin, 1996 ; Oakley, 1997b). 젠더라는 개념은 문법 속에서 그리고 생물학적, 사회적 성(sex)을 벗어난 사람들의 생활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술적 언어를 필요로 했던 1960년대 후반 미국 정신과 의사들의 작업에서 시작된다(Stoller, 1968 ; see Oakley, 1972). 비슷한 시기에,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새로운 개념적 언어의 필요성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젠더 개념이 착안되고 그것을 생물학적 성과 구분짓게 되면서, 베티 프리단이 말한 "이름 없는 문제"가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여성다움의 사회적 구성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Friedan, 1963). 사회과학에서 "젠더의 차이"는 잠재적 기능주의, 생물학적 결정주의 (biologism)와 통하는 용어인 "성 역할sex roles" 그리고 "사회화"를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초반부터, 페미니스트 사회과학자들은 여성에 대한 사회생물학적 주장에 반대하는 실질적 문헌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문헌은 성(sexes) 사이의 예방적(preventable) 차이를 확고히 하고 그리하여 효과적으로 억압과 차별의 문을 열도록 강제할 수 있게 하는 자연/문화의 이원론으로서의 섹스와 젠더에 대한 반대에 이용되었다. Hausman은 "...분석을 위한 페미니즘의 범주로서 '젠더'의 헤게모니는, 그것의 사용이 페미니스트들에게 여성의 불평등이 사회적 구성물임을 (그리하여 그것의 수정이 가능함까지도) 주장할 수 있게 하는 한, 부정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Hausman, 1995, p.8)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이래로, 사회적 지적 발전이 급격히 이루어져 섹스와 젠더 그리고 페미니즘간 관계가 점차로 복잡해지게 된다. "여성"과 "젠더" 는 흡사 동의어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여성이 젠더가 되었던 반면, 남성은 여전히 섹스로 남아있었다. 이것은 또한 여성학이 젠더 연구(gender studies)로 재구성됨을 의미한다.(Kessler-Harris, 1997), 연구에서 "젠더"는 "여성women"을 대체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여성의 학문적 접근 방법을 통해 여성을 연구하는 것보다 (Belenky, Clinchy, Goldberger, & Tarule, 1986) 남성의 존재 방식(McLean, Carely & White, 1996)을 이해하는 목표에 보다 적합했기 때문이다. 좀다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가 발전되면서 우리는, 돌이킬 수 없게 파편화된 주체들로, 후기 자본주의 문화는 모순적이고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으로 인식된다. 언어, 사물, 사람들 그리고 학문적 접근법 모두가 유약하고, 일시적이고, 의심스러운 것으로 재구성된다 (Fraser, 1995 ; Latour, 1993). 과학과 기술 상의 특정한 가공물들이 서구 형이상학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전지구적인 조건과 부분적인 한에서만 관련된다(Smart, 1993).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아비판을 하고 해체한다. 모든 것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여기에는 푸코, 데리다, 라깡, 하버마스, 바흐친, 부르디외와 같은 거물들의 이론들을 끌어들여 실질적으로 재구성된 페미니스트 담론이 포함된다. 결국, 젠더는 "지식" 범주의 유동적이고 맥락적인 본질을 드러내는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고정된" 범주들은 유용하지 않고, 낡은 스타일의 실증주의도, 보다 현대적인 경험주의도 사회과학을 위한 타당한 모델로서 기능하지 못함을 주장하는 사회과학 내의 이론적 발전상을 보여주고 있다(Manicas, 1987; seePhillips,1992).

반동(backlash), 젠더, 그리고 페미니즘

   현대 사회과학과 포스트모더니티의 이론은 섹스와 젠더의 정치학에 대한 개인적인 혹은 전문적인 흥미를 지닌 많은 이들을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북미와 많은 유럽 국가는 이데올로기적 표상에 있어서, 페미니즘에 반대했던 과거에 그랬듯이 페미니즘과 여성성을 적대적으로 강요된 것으로 설명한다(Oakley& Mitchell, 1997a). 페미니즘에 대항한 이런 "반동" 속에서, 성별화가 확고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나타난다. 페미니즘이 젠더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이래, 反페미니즘은 그것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다. 젠더를 섹스로 재정의하려는 계획은 반동 내의 두 가지 중심적 이데올로기 책략 중 하나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여성을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책략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여성성이 억압적 조건으로서 사회적으로 구축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왜 여성이 결국에는 가정에 속해있어야 하는가를 주장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두 주장 사이의 연결고리는 "가정을 덮친 전쟁 War Over the Family"과 같은 텍스트에서 발견된다(Berger&Berger, 1983). Berger & Berger는 "가족이 문제다"라고 단언하고, "젠더 역할"이라는 개념이 단지 "여성들의 투정 femspeak"- 가족내의 역할 분배가 불합리하고, 여성복지 향상을 위해 그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위한 테크닉-일 뿐이라고 기록하였다(Berger&Berger, 1983, p.64). Berger & Berger는 자연적인 차이를 부인하는 것은 가족의 민주적이고 보호적인 기능을 침식한다고 말하였다.
   관념 상의 가족을 구체화하는 것은 극단적인(hard-core) 反페미니즘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개인보다 가족에 귀속시키는 것은 여성의 권리를 박탈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의 하나다. 다른 反페미니스트들의 주장도 마찬가지로 단순하다. 요즘 들어 젠더의 차이는 유전자와 뇌세포, 그리고 모든 종류의 다른 신체부분에서 발견된다(see Oakley, 1997b). 최근의 사회생물학은 가사일과 같은 분야에까지 영역이 확장된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섹스/젠더의 차이에 관한 "과학적" 발견들은 과학 저서 뿐 아니라 대중매체를 통해 매일 우리에게 전달된다(see e. g., Pool, 1993). 젠더(Davidson, 1988)와 섹스(Paglia, 1992)에 관한 이슈는 페미니스트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하다고 주장된다. 파글리아는 섹스를 페미니스트에게 맡기는 것은 '당신의 개를 박제제작자의 집에서 휴가를 보내도록 하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Paglia, 1992, p.5). 그녀에 따르면, 페미니즘 학계는 사회적 구성주의의 모호성 속에서 그 자신을 잃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젠더의 소멸이 反페미니스트와 페미니스트 모두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일부 페미니스트에 의해 제기된 젠더에 대한 주요한 비판은 젠더의 평등이라는 정치적 목표가 여성 해방의 목표와는 다른 사회적 결과들을 생산할 수 있다는 주장에 기인한다 (Florin & Nillsson, 1997). 젠더는 권력을 숨기기 위해서 작동할 수 있다. 왜냐면 그것이 여성성과 남성성이란 평행 관계의 이데올로기적인 표상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위계적으로 체계화되어 있다고 해도 - 젠더는 권력에 관한 것이다 - 권력 차원은 우리가 계급에 대해 말할 때와 같은 방식처럼 즉각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가족과 같이, 젠더는 민주주의를 암시한다. 그러나 양쪽 경우 - 가족과 젠더 - 에 있어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가부장적인 논리를 따른다. 이런 관점으로 인해 캐서린 맥키넌과 같은 몇몇 이론가들은 젠더가,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평등을 단지 성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한다고 반대한다. 맥키넌은 '차이'가 젠더와 불평등의 개념적 도구이기 때문에 "즉, 그것은 가장의 가정을 해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차이가 그 가정을 건설해 왔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Mackinnon, 1990, p.214). 젠더만을 가지고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분석하는 것은 맑시스트 분석이 가진 유물론적 기반의 결여를 가져올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맥키넌의 이런 주장은 하트만, 아이젠슈타인 같은 이원적 체계 이론가들의 주장에 의해 부분적으로 지지된다. 그리고 다소 다르게 델피와 레너드 같은 유물론적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제공된 젠더를 "젠더 계급"으로 재구성하는 것도 지지된다. 한가지 핵심적인 것은, 물론, 계급처럼 권력도 그 자체가 젠더화된 개념이라는 것이다(Gatens, 1992).
   최근 사회학과 문화연구 상의 많은 페미니스트 문헌은 젠더를 섹스의 동의어로 사용한다. 그 이원론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되는 또 다른 장치는 - "섹스-젠더 정체성" 또는 "섹스/젠더 체계"와 같이(Rubin, 1975). 그것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후기 구조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영향 하에 페미니즘적인 사고를 하는 다른 계파(brands)는 "성적 차이"(sexual difference)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창조함으로써 섹스와 젠더 양자를 섹슈얼러티의 뒷면으로 감추기를 좋아한다(see e. g., Adams & Cowie, 1990). 푸코를 따라서, 쥬디스 버틀러 (1992)와 다른 이들은 섹스와 젠더 양자가 하부학적인 지식 체계와 사회적 계층화를 존재론적 사실로 일체화하는 "테크놀러지들"이자담론적 개념들"이라 주장한다. 섹스가 "본질주의적" 구분이기 때문에 젠더가 더 선호된다. 일단 데리다, 라깡, 푸코 같은 사람들이 사회적 육체가 구성되는 방식에 대해 말했던 것을 이해하면, 생물학과 사회사이의 어떤 구분도 주장하기가 어렵게 된다(Hood-Williams, 1996). 섹스가 일차적 조건이고 젠더가 이차적으로 첨가(부가)된 것이라기보다는, 섹스라는 관념 자체가, 젠더의 개념화 그리고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찰될 수 있는 차이를 '생산하는' "발생시키다 engender"의 의미에서의 젠더에 의해, 매개된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섹스가 젠더처럼 같은 사회적 구성 과정과 표준적인 육체를 창조하기 위해 과학과 기술이 공모하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로서 젠더의 예인 "성 전환 sex change"이라는 의학 산업에 종속된 다른 것을 보여주는 육체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들과 성(sex) 호르몬의 고고학에 관한 최근 작업을 지목한다(Hausman, 1995). 이러한 이유로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어떠한 "매개되지 않은 육체의 자연스러운 진실"이란 없다고 주장되는 것이다(Oudshoorn, 1994, p.3).
   젠더를 신용하지 않는 것과 과학을 거부하는 것은 연결되는 데, 왜냐하면, 현대 생물학이 어떻게든 페미니스즘적 비판 작업의 대상이고, 이러한 과학이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이원론적 성에 관련한 신화 형성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Fausto-Sterling, 1993). 두 번째 연결고리는, 물론, 실증주의와 관련된 전반적인 논쟁이다. 이러한 범주로서의 여성이라는 관념 그리고 상대적으로 인식하기 쉬운 관계 속의 권력이라는 관념 또한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속에서 주관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의미들을 감춤으로써, 신용할 수 없게 된다(seee. g.,Haraway, 1991 : Hooks, 1981 : Kristeva, 1981). 가장 극단적 형태로서 이 주장은 여성의 젠더를 "억압적 허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폐기하는 결론에 이른다(Di Stefano,1990, p.65). 여성은 섹스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Wittig, 1981), "하나가 아닌 섹스"로 구성된다(Irigaray, 1985)고 제시된다. 이론적, 인식론적, 방법론적 입장의 다양성을 옹호하면서 페미니즘'들'이 된 페미니즘은 매우 매력적인 측면이 있다. 복잡성과 차이는 곧바로 反권위주의로 드러난다. 더욱이, 단일한 범주로서 여성, 젠더, 권력에 대한 단순한 계몽주의적 관점은 여성의 경험을 형성하는 요소로서 계급과 민족(ethnicity)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see,e. g.Jarrett-Macauley, 1996).

여성의 건강

   과학과 젠더를 재건코자하는 사례들은 수많은 전제들로부터 논의될 수 있다. 그 중 유용한 사례 연구는 여성과 건강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수백만 여성들과 나날이 직면하는 실질적인 문제들이 의학 담론상 집합적 여성의 문화적인 구축 문제에 직면했음을 논증한다. 반면, 이것은 동시에 여성의 몸과 정신, 삶, 그리고 '과학적' 지식이라고 간주되는 것에 대한 논쟁들과 생산적으로 연계된 실질적인 페미니즘을 요한다.
   여성의 문화적 재현과 물질적 위치는 그들의 건강과 상당면 관계가 있다. 직접적인 보건관련 차별조항(세계 보건 기구, 1994)과 물적 사회적 위치에 따른 보건의료법(Graham, 1986;Oakley, 1994)이 있으며, 보건의료제도는 여성 차별의 원천이 된다. 예를 들면 신장 이식을 하는 여성의 수는 남성보다 적다. 여성은 남성보다 신장 이식을 덜 받는 경향이 있다. (Kutner & Brogan, 1990) 그리고 폐암 검진을 받는 흡연자의 수도 여성이 남성보다 적은편이다. (Wells & Feinstein,1988) 심장 질환 증상을 나타낼 때 여성은 남성이 진단 받는 경우보다 덜 심각한 것으로 판명되기 쉽다. 또한 그들은 검사 받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더 오래 기다려야 하며 집중적인 치료를 받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적다. 그리고 심장 혈관 전문 외과의가 되는 사람도 적다. (Gijsbers van Wijk, van Vliet, & Kolk, 1996; Tobin, 1987) 이런 차이들 중 일부는 이미 잘 알려진 의사들의 여성 혐오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Birdwell,Herberts, & Kroenke, 1993) 그러나, 넬리 오드슘(1994)이 성호르몬에 관한 연구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호르몬 제조 산업은 여성(또는 암컷) 호르몬을 기반으로 세워졌는데 이는 환자로서는 여성이 훨씬 접근 용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을 상대로 한 이와 같은 산업체는 없다.
   선진국에서 여성 보건의 주여 부분은 의학 이데올로기와 기술에 의해 중층적으로 결정된다. 20세기에 과학, 의학 그리고 기술은 위험천만하다고 간주되는 영역에까지 광범위하게 확장되어왔다. 이와 관련하여 여성의 몸은 위험에 관한 최근 담론의 주된 장을 형성한다. 1967년에서 1991년 사이 기간에 발간된 의학 잡지의 제목 및 요약문에 '위험'이란 단어가 얼마나 나타나는지를 조사한 한 연구자료에 의하면 적어도 1967년보다 91년에 50배 이상 사용 빈도가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여성의 몸과 관련한 의학적 담론만을 따르는 산부인과 잡지가 최고치를 기록했다. (1995) 국민 검진 프로그램 상의 대상으로서, 여성은 의학적 감시의 주 대상이며, 산아제한 및 보호를 주관하는 영역에 있어서는 복합적인 의학적 간섭을 받는다. 여성은 취약한 정신 건강 상태로 인해 향정신성 의약품을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한다.(1993)
   "medicalisation" 은 여성의 암묵적으로 당연시되는 특성이 되었다. 페미니스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의사가 그들에게 요하는 지시사항의 대부분을 의문의 여지가 없고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여성 건강의 의료화는 그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입증 만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아래에 논의될 자궁경부암 검사와 호르몬 대체 요법(HRT: Hormone Replacement Therapy) 이 두가지 사례는 모두 여성의 일생에 있어 수많은 의학적 간섭이 비과학적이며 이용자에게 비친화적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이 정치적 범주로서 젠더와 재결합하고 과학과 이전되는 다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매우 강력한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자궁경부암 검사

   대다수 선진국 여성은 정기적으로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도록 권장한다. 의학전문지와 일반 문헌 모두에서 이는 일종의 의무로 제시된다. 영국에서는 여성이 25세에서 64세 사이 3년에서 5년마다 검진을 받도록 정책화하고 있다.
   자궁경부암 검사는 국민 보건 예방 프로그램의 한 예이다. 위험에 대한 담론에 있어서 그리고 남성 지배 의학에서 '환자'로서 그들이 지니는 위치로 인해 여성들은 "특히 예방 의학 상의 처방을 받기 쉽다."(1990) 의학적 개입은 윤리적 조건에 의해 통제 받는 반면, 예방 프로그램은 역사적으로 이런 차원에서 예외가 되어왔다.(1990) 정기 자궁경부암 검진은 이런 검진이 예방의 차원에서 효과적인 수단이고, 자궁경부암이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두 가지 논점에 의해 뒷받침된다. 그러나, 이런 논지는 사실이 아니다. 35세 미만 여성 사망 원인 중 1순위는 교통사고로, 자궁경부암에 의한 사망률의 4배에 이르고, 자살 또한 이보다 3배는 높다. 또한 폐암에 의한 사망이 자궁경부암에 의한 것보다, 8배나 높으며(1996), 남성의 폐암 사망률이 줄어든 반면, 여성의 경우는 늘어나고 있다. (1995) 그 효과의 차원에서, 국민 검진 프로그램의 결과 자궁경부암에 의한 사망률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신뢰할만한 증거는 결여되어있다. 실제로, 검진 받지 않은 노력의 여성 사이에 사망률 저하가 나타났다.(1996) 자궁경부암 검진은 30년간 통제 받지 않은 실험으로 그 위험성과 효과 또한 불확실한 상태이다. 검진시 촬영에 있어 렌즈 소독 부실로 인한 감염, 검사와 양성 반응에 대한 불안 그리고 불필요한 비정상적인 대우 등을 포함한 위험성이 있다. 검사가 자신에 대한 침해라고 느끼는 많은 여성들의 반감(1995)은 일생동안 13번 또는 그 이상 자궁경부를 긁어대는 것 자체가 문제를 발생시킬 지 모른다는 우려로 확산된다. 자궁경부 검진의 주 문제점은 과잉 진단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과학은 객관적이고 엄정한 자료에 의거한 것으로 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과학적 결론은 최고 수준 연구자의 결론과 다를 바 없이 주관적인 것이다. '정상' 또는 '비정상'으로서 자궁경부 손상 정도를 분류한 것은 본질적으로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것으로, 개인 및 연구소마다 차이를 보인다. (1994). 촬영 검진 프로그램이 확산되자 양성 반응 비율이 높아졌다. 이는 '비정상'의 범위가 계속적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검진상 불가피한 문제는 발견되는 '비정상'이 검진 프로그램의 초점이 되는 질병보다 훨씬 일반적이라는 사실이다. (1996) 현재 영국에서는 검진이 없는 경우 수만명 분의 1 미만의 발병률을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10명 중 1명 가량의 젊은 여성이 양성 판정을 받는다. 브리스틀 지역 자궁경부암 검진을 세밀히 분석한 바에 의하면 1988년부터 1993년까지의 검진 결과 대략 만오천명 이상의 건강한 여성들이 위험하다는 부정확한 진단을 받았고 오천오백명 이상이 정밀검사를 받았고, "... 많은 이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병 때문에 치료를 받았으며, 암에 대한 계속되는 걱정, 생명 보험 가입의 어려움, 이후 생식 능력에 대한 그들의 치료 결과에 관계된 불안 등을 포함한 문제들을 떠안은 채로 방치되고 있다. (1995)
   여성의 경험에 대한 연구 조사는 자궁경부암 검진이 어떻게 남성(배우자와 의사들)에 의한 여성의 도덕 수준 검사로 성적 함의를 갖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양성 반응은 심각한 질환의 징후일 뿐만 아니라 성적 부도덕성에 대한 암묵적인 표시로써, 여성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궁경부암 검진 프로그램은 이런 식으로 위험하다고 분류되고 결과적으로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불쾌감을 지니게 되는 여성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의 차원에서 볼 때 이외에는 명확하지 못한 의도와 문제거리를 스스로 만들고 잇는 셈이다. 영국 검진 프로그램 구축에 관계했던 한 의사는 "심각한 질환이 심화될 위험에 처한 여성을 위한 고가의, 위험성이 있는 과정을 40이 가까운 여성들에게 밟게 하는 식의 촬영 검사를 실행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했다.(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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